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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Mar 22. 2022

커리어 강의 들으면 전문가 되나요?

글쎄, 그 사람들의 커리어는 혼자 만든 게 아닐텐데?

왜 너는 책 안써?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이골이 난 질문에, 나는 항상 '게을러서 그래~ 애 엄마가 글쓸 시간이 어딨냐 일하기도 바빠~'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사실 발리를 다녀왔던 이유는 사회에서 희미해져가는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일종의 동아줄과 같은 것이었고 책을 쓰는 게 궁극적 목표이었는데, 이거 참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일을 시작하며 소홀해졌단 말이지.


하지만 사실은 나는 아직도 내가 부끄럽다. 내 한없이 부족한 표현력과 글짓기 실력이, 정말 내가 하고픈 말을 완벽하게 전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봄. 오히려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이 생각들을 100%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솔직히 글은 그게 아니다. 적어놓고 나중에 꺼내보면 그 때의 내 생각을 톺아보긴 좋지만 '아 근데 이게 아닌데 쫌 왜곡된 거 아닌가' 싶은 맘이 들어 셀프꾸중을 하게 된다.


물론 가끔 '아 나 쫌 관심받고 싶다 역시 나는 본투비 관종인가' 싶은 마음이 뾰족하게 튀어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띄엄띄엄 남겨진 내 커리어의 궤적들을 뒤적이면서, 부끄럽다 나는 이렇게 잘난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달변가가 아닌데 싶은 생각에 뒷목부터 벌개지며 그 생각을 멈춘다.


사실 하려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최근에 방황하는 커리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연들과, 네트워킹과, 웨비나들을 보면서,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따금 연락해 '강연해주실  있나요?' 라고 물어봐주는 고마운 분들의 마음을 고사하면서 들었던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다.



특히 이 글은 '막막한 커리어로 흔들리지만 잘해보고 싶은 주니어들께' 올림.


배우겠다는 마음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훌륭한 사람이다

'000 출신의 000이 알려주는 비밀', '커리어 성장의 A to Z를 알려드립니다' 등 수많은 강연이 쏟아진다. 진짜 나는 요즘 친구들이 기특한게 (라떼는) 이런 강연을 들을 생각도 안했을 뿐더러 맨날 '아 넘 힘들어ㅠ회사 진짜 언제까지 이렇게 다녀야해ㅠ'하고 퇴근 후 맥주가 일상이었는데. 퇴근하고 본인의 성장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이들을 보면 나이와 직급을 막론하고 모두가 존경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가진 것 자체만으로 당신은 이미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장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이건 좀 꼰대같은 소리 같긴 한데... 진짜 성장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울고 불고 이 악물고 견디다보면, 지나고 보면 진짜 다 사라져 있다. 물론 내가 막 죽을 것 같은데, 지나가는 차에 치이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면 그건 그만두는 게 맞고. 하지만 나의 부족함과 치부가 드러났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본투비 부족한 거 절대 아니다. 정말 좋은 레슨런이라고 생각하고 나라는 인격체가 수정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계속 마음을 다 잡는다. 물론 이 얘기를 쓰는 나도 여전히 피드백을 받기 전 또는 피드백 받은 후 심호흡 3번 정도는 해야 한다. 그래도 10번에 비해 많이 줄었으니까 한 3년 지나면 심호흡... 필요 없을지도..?


일은 나 혼자 만든 게 아닌 것

살면서 '와 진짜 이렇게 미친X랑 다시는 얽히지 말아야지' 싶을 정도로 최악의 직장상사를 만났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좋은 동료들이 있었고, 그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칼을 빼들어 준 좋은 임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강의는 그 PO 혼자서, 그 개발자 혼자서 만들어 낸 게 아니다. 함께 해준 동료들과, 그것을 지지하고 최종 책임을 짊어진 대표의 오롯한 고독함과, 그들의 바쁜 일상을 곁에서 지원해 준 그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그 분들의 의도가 그렇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나는 함께 이 모든 일을 해내어 준 이들을 위한 고마움 때문이라도 나의 개인 커리어 브랜딩을 위해 활용하진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되내인다.


PR인이 영화를 어떻게 만드냐며 코웃음 쳤지만 그걸 해냈던 우리 팀


그 때의 경험을 빗대 1년을 꼬박 투자해 만들어 낸 다큐. 마음 찡한 다큐. 나는 잔소리랑 생색 담당이라 기여도 2%, 98%는 좋은 팀원과 프로젝트의 합

(워리걸의 주절주절 추가..이게 내가 잘한 거라고 고생한 거라고 기록 남기고 싶은 거도 맞는데 혼자한 거 절대 아니고 같이해준 분들에 대한 샷아웃라고 생각해주심 감사)


진짜 고수는 의외로 설명을 못한다

최근에 어떤 어르신이 '나는 솔직히 말 못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제일 좋아' 라고 하는 말에 너무 격하게 동의했다. 옆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말 잘하고 일도 잘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했을 때 어르신 왈,


그런 친구들은 보통 말이 행동을 앞서

마음 속에 탑재되어 있는 본인만의 노하우를 완벽하게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어렵고 죽을 때까지 전문가라는 워딩을 내가 가져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있을거다. 그래서 섣부르지 않게 돌다리를 두드려야지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물론 정말 업계에서 묵묵히 소처럼 밭갈고 일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낸 전문가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모두의 귀감을 사는 전문가는 없다. 적어도 여러분이 갈망하는 10~15년차의 미들급 이상 시니어 이하 역시 흔들리며 성장하고 있는, 여러분과 같은 동료이기 때문에 어떤 선망의 대상으로 보기보단, '아 그래 저런 케이스도 있겠구나' 정도의 케이스 스터디로만 참고하면 좋겠다.


결론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고 무럭무럭 자라면 ㅇㅋ인거다. 기죽을 필요도,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유명해지려고 기쓰는 것도 조금 덜 해도 괜찮다.


그런 의미에서 부족해도 항상 잘한다 멋지다 최고다 외쳐주는 나의 친구들, 동료들, 지인들

모두 고마워요! 싸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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