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업로드 한 뒤, 무려 세 달만에 다시 글을 쓰고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쩐지 그동안은 글을 쓸 수도, 쓰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난 후 그 여운이 너무도 길어, 다시 돌아온 일상에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행복했던 감정만을 곱씹으며 어째서 돌아온 현실에서는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그리고 조금씩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달이 훌쩍 지난 오늘.
오래전 방영했던 'tvn 꽃보다 청춘'시리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페루 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그들의 여행은 내가 네팔에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어느덧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더듬어 네팔 여행 3번째 에피소드를 기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반짝거렸던 3주의 시간.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그 기억을 되살려본다.
새로운 숙소에서 여유를 즐기며 저녁 식사를 고민하던 중 근처에 한식 레스토랑 겸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당의 이름은 0(zero) Gallery.
가게 내부는 실제 갤러리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나는 호숫가가 보이는 바깥 자리에 앉아 가만히 경치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하얀 개가 나타나 가게 끄트머리에 살짝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초나 흘렀을까, 갑작스레 엄청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우박이려니 생각했지만, 한국인 사장님께서 우박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나를 안쪽 자리로 안내해주셨다.
하늘은 금방 어두워졌고, 슬레이트 지붕 위로 떨어지는 우박은 엄청난 소음을 내었다.
어둡고 추워진 날씨 탓인지, 무서운 소음 때문인지 나는 새삼 낯선 땅에 홀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모든 게 무섭고 외로워졌다.
그 순간, 네팔인 직원이 내게 차를 건넸다.
까만 빛깔의 달고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문득 찾아온 나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아마 이런 것들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종종 찾아오는 순간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해소되곤 한다.
생각지 못한 것들에서 오는 따뜻함.
차를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곧 주문한 식사가 나왔고,
배불리 먹고 난 뒤 우박이 잠잠해졌음을 깨달았다.
우산이 없던 나는 또다시 날씨가 나빠지기 전에 숙소까지 뛰어가기로 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깜깜한 저녁이었다.
혹시나 또다시 비라도 쏟아질까 하는 마음에 슬리퍼 바람으로 뜀박질을 하는데
조금 전 느꼈던 걱정과 두려움은 어딜 가고 웃음이 비질비질 새어 나왔다.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동네의 끝자락에서 우박을 피해 슬리퍼를 신고 뛰고 있는 내 모습이
어딘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달리기를 멈추고 자리에 서 비에 젖은 발을 사진에 담았다.
그날 밤 숙소 테라스에 앉아 포카라의 야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조금 추운 느낌이 들어 따뜻한 물로 씻고 싶었지만, 네팔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해가 없을 땐 따뜻한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겁이 많은 나는 결국 다시 일어나 작은 전등을 하나 켜고 나서야 어렵사리 잠들 수 있었다.
그날 꿈에는 하얀 설산이 펼쳐진 히말라야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