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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Dec 05. 2023

내 멋대로 유럽(0)

프롤로그

언제까지고 이십 대 일 줄만 알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최근에야 제대로 깨달았다.


만 나이를 적용해도 더 이상 이십 대라고 주장할 수 없는 때가 오고야 말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은 시간이 점차 지나가고 있었다. 


딱 일 년 전 이 맘 때 나는 결혼을 했다. 


어렸을 적부터 다녔던 성당의 잔디밭에서 햇살 좋은 가을날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아직 더 긴 인생이 남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감히 예측해 본다면 지난해 결혼식은 아마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의 정점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여전히 젊다. 그러나 더 이상 어리지는 않다.


언제까지나 끝없는 가능성에 둘러싸인, 자유로운 이십 대이고만 싶었던 나는 그렇게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삼십 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또 다른 실체 없는 가능성과 희망에 매달려 나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백수로 돌아가버렸다. 



다 계획이 있는 척했으나, 사실은 조금 무모한 퇴사였다. 


지지부진한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더 좋은 직장을 잡겠다며 남편을 설득하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냥 안온한 백수의 삶을 즐기고만 있었다. 


그렇게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습관처럼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항공권을 검색하다가 놀랄 만큼 저렴한 독일행 항공권을 발견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아웃의 왕복 74만 원.


이럴 수 있나? 유럽을 이 가격에 다녀올 수 있다고?


당장 2주 뒤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는데, 나는 마치 이십 대 중반에 대책 없이 즉흥 여행을 즐기던 때로 돌아가 버린 듯 덜컥 항공권을 예매해 버렸다. 



사실 예전처럼 가슴이 뛰거나 설레지 않았다. 오히려 막상 티켓을 구입하고 나니 갑자기 후회가 밀려들었다. 


괜찮은 걸까,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너무 철 없이 굴었나. 


그래도 이미 카드 결제는 완료됐고, 저렴한 티켓은 취소 수수료가 어마어마했기에 선택은 되돌릴 수 없었다. 


늘어지는 백수 생활에 몸과 마음 모두 탄력을 잃어가던 나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만한 핑계가 없었다. 



작은 배낭과 20인치 캐리어에 열흘 치 짐을 욱여넣고 천사 같은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그렇게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이 글을 쓰다 보니 새삼스럽게 나의 방종과 남편의 이해심이 모두 놀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열흘 간의 유럽 여행은 조금의 후회도 없는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


소중한 시간과 그 속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글자를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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