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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Aug 06. 2021

5. 무

당신 안에 무를 창조하는 것은 명상의 목표이다.

무는 단지 텅 빔이 될 수 있거나, 아니면 거대한 가득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부정적이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텅 빈 무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서양은 늘 무를 부정적인 말로 여겼다. 따라서 이것에 대하여 공포를 만들어 냈다. 동양은 이것의 긍정적인 면 또한 알고 있었다. 이것은 인류의 의식에 가장 커다란 기여를 한 것 중의 하나이다. 거울은 어떤 것도 비추지 않고 텅 비어 있지만, 거울은 거기에 있다. 의식은 내용물이 없이 비어 있지만, 의식은 거기에 있다. 이것이 내용물들로 가득 차 내면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을 때, 당신은 의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의식이 내용물들로 가득 찰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의식이 모든 내용물들로부터 비었을 때, 우리는 이것을 무심 또는 명상이라 부른다. 당신 안에 무를 창조하는 것은 명상의 목표이다. 하지만 이 무는 부정적인 생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것은 가득 참, 풍부하게 가득 참이다.


생각이 세상이다. 그래서 부처는 마음을 ‘세상’이라고 부른다. 생각이 일어나는 그 순간, 의식의 호수에 파도가 일며 형상이 솟아오르지만, 그 형상은 순간적이고 덧없을 뿐이다. 곧 이것은 사라져 갈 것이다. 이것은 계속 머무르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이것에 매달리지 말고, 이것이 오고 감을 지켜보아라. 이것이 생겨나는 것을 지켜보고, 사라져 감을 지켜보지만, 그것에 매달리지 말라. 이것이 일어났다 다시 사라져 감 속의 의식을 기억하라. 이것이 우리의 실재이고 우리의 진실이다.


-  오쇼




무를 맞닥뜨리게 되면 공포를 느끼게 된다.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사실 죽음을 맞이할 때라고 한다. 임사체험자들의 공통적인 의견, ‘티벳 사자의 서’를 참고하면 블랙홀처럼 칠흑 같은 무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윤회의 사슬을 따라 도망치듯 환생을 한다. 명상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연습이다. 무가 주는 엄청난 공포, 자신의 실존마저 흔적 없이 빨려 들어갈 듯한 그 두려움 앞에서 행하는 벌거벗기 연습이다. 그것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생각들에 붙들리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는 자’가 되어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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