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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걷는 사람들 Nov 28. 2018

직업으로서의 심리학

#4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글은 사회 및 성격심리학 전공인 필자가 보는 시각에 따라 쓴 글이라 약간의 오류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상담이나 임상심리학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혹시 글 중에 수정하거나 보완될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환영하니 고견을 주셨으면 한다. 


작년 모교인 고등학교에서 '직업으로서의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심리학과 학부나 대학원에 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남자고등학교 교실 2곳에 가득 찰 정도로 관심이 이례적이었다. 강의 중에는 심리학에 대한 소개와 진학 방법, 자격증 소개, 그리고 전공자의 진로와 직업을 설명한 후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이 있었다. 


'돈을 얼마나 버나요?'


모범답안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였다. 전문직종인 의사나 변호사들의 수입도 천차만별인마당에 회사원의 월급을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다. '많이는 못 벌어요'였다.

심리학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진 고등학생에게 비관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솔직한 현실을 알려주고, 그들이 극복해나가야 할 문제 또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을 공부한 이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이 있다. 


1. 심리학과 학부 졸업 후 취업

2. 심리학과 학부와 심리학 대학원 졸업(석사) 후 취업

3. 심리학과 학부와 심리학 대학원 졸업(석사) 및 유학(박사학위) 혹은 국내 박사학위 취득 등 학자 혹은 취업

4. 타 학부 졸업 후 심리학 대학원 진학 후 2번 혹은 3번 선택

5. 2~4번 선택 후 개인사업 혹은 창업


1번 유형의 경우, 심리학을 이용해서 관련 직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인사담당 업무를 하기는 어려워서 사실 학부 졸업만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심리학 관련 직업을 갖기는 어렵다. 기업에 입사 후 HR 담당자가 심리학 전공임을 알고 운 좋게 인사담당부서나 교육담당부서로 배치해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2~5번의 경우에는 대부분 심리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다. 

최소한 심리학을 전공해서 관련 직업을 찾기 위해서는 대학원 졸업, 즉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해야 하고, 상담이나 임상심리학 분야는 자격증까지 취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취업을 하는 경우에는 회사원이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심리학과 관련이 있을지라도 심리학 관련 직업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취업을 하더라도 심리학과 관련이 있거나 심리학을 활용한 기업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보통 일반기업으로 입사하게 되는 경우, 인사담당자나 기업교육 쪽으로 갈 확률이 높기는 하다. 특히, 사회 및 성격심리학, 조직심리학, 산업심리학 분야가 그렇다. HR 부서는 HRM(Human Resourse Management)나 HRD(Human Resourse Development)로 구분되는데 특히 HRD 관련 업무에 많이 진출한다. 사내 교육이나 외부교육, 채용 및 평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급여, 회계를 제외하고 HR와 관련된 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기업에서 심리학 전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곳에서는 지각 심리학, 인지(공학) 심리학 전공자들이 연구원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 TV, 냉장고 등 IT기기나 가전에 이르기까지 HCI(Human-computer interation), UI(User Interface), UX(User experience)를 연구하는 분야에서 디자인 및 개발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그렇다. 

일반기업이나 대기업은 아니지만 심리학을 활용해서 보다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업도 많다. 코칭 펌(coaching firm)이나 인사조직 컨설팅펌도 독립적으로도 HR 영역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일반기업보다는 훨씬 더 전문성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곳이다. 코칭은 일종의 기업용 상담이라고도 할 수 있고, 2000년대 초반 이후 기업에서 많이 도입되어 전문적인 코칭 펌은 꽤 많이 있고 또 발전하는 추세이다. 또 워낙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인사조직 컨설팅 회사도 많이 있다. 또한 심리학 전공자들이 많이 진출하는 분야는 검사 개발 분야이다. 대부분의 심리학 전공자들은 검사와 관련한 기본적인 소양과 함께 통계프로그램에 대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 성인에 이르는 검사와 기업의 채용을 위한 인적성검사에 이르기까지 전문 검사 개발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전문기업에서는 대부분 주 고객이 기업인 B2B 사업모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업의 HR 담당자와 업무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고 이직도 대기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HR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는 것보다는 HR 관련 전문기업에서 경력을 충분히 쌓고 대기업으로 옮기는 커리어 패스(career path)도 상당히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또한 심리학 전공자들이 많이 진출하는 분야는 리서치 업계이다. 심리학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리서치회사에서는 상당히 선호하는 전공이기도 하다. 리서치 회사는 크게 보면 정치여론, 마케팅, 만족도 등의 조사영역이 있고, 사실 영역에 구분 없이 심리학 전공자들이 많이 진출해있다. 상담이나 임상분야만큼의 자격증은 아니지만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자격증도 있고, 최근에 한국심리학회에서 한국조사협회와 공동으로 '석사학위 졸업자 리서치 업계와의 취업연계를 위한 리서치마스터 과정'을 개설할 만큼 리서치 업계서의 심리학 전공자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한편, 3번과 5번은 어떤 기업이나 소속되지 않고 심리학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경우이다. 3번의 경우에는 본인이 학자로서의 길을 걷는 경우이다. 평생 학업을 업으로 하는 학자의 길을 걷겠다면 박사학위를 받으면 된다. 국내에서도 가능하고, 해외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된다. 유학을 가려는 경우에는 학부만 마치고 가는 경우도 있고,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긴 하다.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가는 경우는 아무래도 학계 인맥을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이전에도 그래 왔고, 현재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박사학위를 따더라도 모두가 교수 채용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급적 교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좋다. 그것도 심리학 랭킹에서 순위 내에 있는 곳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면 당연히 더 좋다. 교수가 목적이 아니라면 박사학위만으로도 밥벌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공부에 들인 돈만큼 효율적인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5번의 경우는 상담이나 임상심리학 전공자들이 많이 진출하는 영역이다. 아마 대부분 일반인들은 심리학이라 하면 '상담'을 떠올릴 것이고 앞으로 유망하다고 보는 영역도 '상담'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학부를 심리학으로 전공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물론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하면 더 좋다-대학원에서 상담이나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면 대학원 2년, 수련과정 1~3년, 자격증 취득이라는 경로를 거쳐 상담심리전문가 혹은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다.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해서 바로 상담센터를 개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라 하더라도 수많은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경력을 쌓고, 상담자 본인 역시 수련과정을 끊임없이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상담자들이 목표 중의 하나로 상담센터 개업을 염두에 두는 것을 보면, 확실히 상담센터 개업은 심리학 전공자 특히, 상담이나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이들에게는 최적의 활동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상담센터 운영은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엄연히 말해 사업이며, 본인이 1인 상담자인 경우 자영업이다. 그래서 규모 자체도 영세하고, 마케팅이나 영업적인 측면에서도 서투른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니 사업으로 확장하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보다는 개인의 생활이 가능한 정도로만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의 상담센터는 기업형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지점을 여럿 둔 상담센터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기업형 상담센터가 생기면서 마케팅이나 영업, 홍보 면에서 우월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더욱더 규모가 커지는 추세이다. 물론, 상담센터 내부에는 상담자를 고용하는 형태로 상담자가 상주한다. 그런데, 이런 상담센터의 문제점은 경영자가 상담자가 아니다 보니 상담센터를 사업적으로만 보고, 정작 상담자나 상담 또한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상담자들이 상담자로서의 상담자가 아닌 피고용인, 회사원으로서의 상담자로서 고민을 하고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IT와 상담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있다. 이미 텍스트 상담이나 인공지능(AI) 기반 상담 등과 같은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 또한 꽤 많이 있다. 

최근에 심리학 전공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또 하나 늘었다. 상담, 임상 전공자가 아닌 사회, 성격 전공자들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심리학 논문을 쉽게 분석해서 알려주거나 만화나 웹툰의 형태로 전달하거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하거나 강연에 나서는 이들이다. (심리학의 대중화 글 참조) 콘텐츠의 시대니만큼 좋은 콘텐츠로 승부하면 학술적인 내용 역시 대중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심리학을 전공하면 돈을 많이 버는가?'에 질문에는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case by case)'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대중화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까지 상담자나 심리학 전공자들은 그 관심에 비해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단 심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자들 역시 '합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으고 규모를 키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생활 유지에 그치지 않고 함께 꿈을 그려가고, 키우려는 그런 시도를 하는 심리학 전공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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