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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ny Rain Mar 07. 2024

고양이가 사라졌다-7

소설입니다.

엄마는 아빠가 사망하자, 큰 충격에 빠졌던 듯했다.

어릴 때여서 정확하게 그때의 그 사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엄마의 얼굴은 지금도 명확히 기억한다.

사진으로 찍은 듯 마음속에 새겨진 그때 그 엄마 얼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사람의 얼굴.

엄마는 그런 얼굴로 몇 주를, 몇 달을 보냈다.

그러다가 잠시 어딘가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와서는 문득 해야 할 일이 생각난 듯 집 안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찾았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엄마는 무언가 집중해서 하기 시작했다.

분주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집에서 뭔가를 찾곤 했고, 찾은 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곤 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

집에 있더라도 뭔가를 열심히 기록했고, 온 감각이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에 가 있는 듯했다.

꼬박 1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렇게 보낸 지 1년쯤 되었을 때, 엄마는 돌아왔다.

마치 지옥에서 다시 자기 영혼을 찾아온 사람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내 앞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꼭 안으며 말했다.

"다 끝났어. 다 해결됐어. 걱정했지?"

엄마는 울면서 미소 지었다.

뭐가 끝났는지, 뭐가 해결됐는지는 좀 더 자란 후에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온 집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마치 집 안 곳곳에 있는 숨은 때를 다 벗겨 내기라도 하려는 듯 구석구석 청소했다.

나는 걱정스레 그 모습을 그저 바라봤던 게 기억난다.

그때 그 마음이 기억난다.


엄마는 젊을 때부터 줄곧 쉬지 않고 일해 왔다. 그래서 엄마의 부재는 익숙했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 얼굴 붙이고 살아왔어서, 아빠 엄마 없는 나날을 울적하게 보내야 했다.

그때는 이모가 나를 돌봐주었다.

엄마가 나가면 이모가 들어왔다.

'가여운 것...'

이모는 늘 그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다.

한때는 잠시 할머니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할머니는 잠시도 얼굴을 내 보여주시지 않으려 했다.

그 이유를 엄마에게 들어서 이제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섭섭하진 않았다.

그냥 내가 잘못한 게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래도 스치듯 만날 때면, 최대한 공손히 인사드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셨다.

대신 고모와 고모부가 나를 돌봐주었다.

할머니 집 분위기도 어둑한 장막 속에 갇힌 듯했다.

장남이 사라진 집안의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나는 아빠의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어렸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 테다.

장례 기간 내내 울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지냈다.

그러나 마지막 장지날에는 울었던 기억이다.

무척 가깝게 지내온 사람을 잃었다는 게 어떤 건지, 그제야 실감했다.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수많은 의미를 새기며 살아간다.

그때 나는 그 수많은 의미의 소멸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은 재로 남겨진 사람의 흔적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눈물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마치 메마른 땅에서 갑자기 지하수가 솟구쳐 나오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시 엄마가 내 곁에 돌아왔을 때, 나는 엄마만큼은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짐한다고 해서 어린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겠지만, 어떻게든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엄마는 다시 밥을 해주고, 잠을 재워 주었다.

전처럼 다정했고, 전처럼 친구 같이 대해주었다.

엄마 얼굴에 언뜻언뜻 쓸쓸함이 묻어 보일 때면, 나는 좀 더 웃음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내가 웃으면 함께 웃었다.

엄마가 돌아온 후, 한 달쯤 지나 집 앞에 고양이가 나타났다.

아침마다 집을 나설 때면, 집 앞 담벼락 위에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매일 보이니 눈길이 가게 되었다.

엄마가 다가가서 "요 녀석, 어디서 나타났어?"라고 말하며, 머리에 손을 가져가도 

꿈쩍도 없이 누워 있었다.

보고 있자니 하품도 하고, 어쩐지 지루하다, 지겹다, 싶은 표정을 지었다.

늘 같은 모습으로 아침마다 그 자리를 지켰다.

우리는 작은 마당 한쪽에 작은 집을 마련해 주었다.

사실,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었다.

종이 상자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로 구멍을 뚫고, 겉에 비밀로 감싸 주었다.

고양이는 그렇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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