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야기입니다.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칠 예정...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긴데..."
"안 믿어도 좋은데, 할머니 너무 원망하지 마. 나는 네가 다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으면 좋겠다."
엄마는 콩 하고 꿀방을 먹였던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역시 엄마도 어른이구나, 쳇.'
그렇게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그땐 왜 그렇게 삐뚤어진 생각부터 했던 걸까.
하지만 절대로 엄마를 미워한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면서 걷고 있었던 거야? 무슨 또 재미 난 일이라도 있어?"
엄마는 이야기를 전환하는 데도 선수다.
"그냥, 아무 생각."
"또 또, 토끼처럼 토라진다."
"그런 거 아니야. 별 것도 아니고. 그냥 고양이 생각했어."
"고양이 생각? 맨날 아침에 우리 집 앞에서 졸고 있는 그 고양이?"
"그 녀석은 세상 걱정 없이 사는데, 내가 생각해 줄게 뭐 있겠어. 이런 거야. 사람이 살기 전에 이곳을 지배했던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고양이를 무자비하게 내쫓은 것은 아닐까, 라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고양이가 살기 전에 다른 동물이 살았던 건 아닐까? 결국, 고양이도 그들을 쫓아내서 이곳을 차지하게 된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런 걸까? 고양이 이전의 어떤 동물이, 또 그전에 다른 동물이..."
"결국, 남게 된 건 사람과 고양이이다, 그렇게 되나?"
"근데 강아지들은 사람의 품 속에 편안히 지내잖아. 고양이들은 왜 길거리를 배회하게 된 걸까?"
"그건 아니지. 이 동네에는 길거리 개들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버려진 개도 많아."
"그런데, 사람이 길고양이에게 좀 더 심하게 구는 것 같아서. 마치 유해 동물 대하는 것처럼."
"그래 보이긴 하지만, 고양이로 인해 사라진 약한 동물들도 없지 않으니까."
"글쎄. 참새나, 비둘기도 맘껏 날아다니는데 뭐."
"이 동네는 그렇긴 하지만, 어떤 섬의 희귀한 동물이 고양이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곤 하잖아."
"그런 문제는 들개도 마찬가지일 듯한데."
"그렇긴 해. 몰려다니는 들개들 때문에 무섭다는 이야기를 시골에 사는 친척한테서 듣곤 했지. 결국, 고양이, 개,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사람과 동물의 공존에 관한 문제이려나. 그런데, 이 동네에 길고양이가 많이 보이는 건 일종의 합의에 의해서였어. 그거 모르지?"
"그런 게 있었어?"
"네가 꼬맹이였을 때라 기억이 안 나나 보네. 한때, 길고양이 때문에 동네 사람 간에 의견 차가 있었어. 한쪽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랑 보금자리를 내주며 보살피려고 했었고, 다른 한쪽은 길고양이가 시끄럽고 말썽 피운다며 몰아내려고 했었지. 몰아내자는 쪽이 더 목소리가 커서, 결국 이 동네에서 길고양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어."
"아예 사라졌다고? 어땠길래? 길고양이들이 뭔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거야?"
"특별한 건 없었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서 겪는 일들. 시끄럽게 굴고, 쓰레기 봉지를 뒤져서 지저분하게 하고... 그런 것들. 매일 밤 울어대고 지들끼리 싸워 대는 통에 밤잠을 설치곤 해서, 나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긴 했어. 고양이들은 본능에 의해 영역 다툼을 하거나 발정기 때, 난리법석을 피우곤 하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건 맞는 이야기니까."
"엄마도 찬성했어?"
"하도 내쫓자고 다들 꼬셔 대는 통에... 그런데 말이야, 고양이가 사라지자, 동네 구석구석에 쥐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고양이들이 사라진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고양이를 피해 지하 세계에서 지내던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어. 지하 세계에서 먹이를 찾는 건 한계가 있었겠지. 쥐들은 호시탐탐 지상으로 올라오는 걸 노렸을 거야. 그런데 마침 거대한 천적인 고양이가 사라지자, 이때다 하고 몰려나오기 시작한 거지. 특히 지하층에 사는 사람들은 난리가 났어. 창문을 열어 놓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쥐들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하수구를 통해 들어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때 우리 집도 반지하였잖아."
"기억이 날 듯도 하고..."
"어느 날이었어. 집안일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데, 창문 쪽에서 안방 쪽으로 뭔가 검은 물체가 쓱 지나가는 거야. 뭔가 이질적인 생명체가 나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이 어떤지 그때 처음 느꼈어. 작은 생명체이지만, 그것의 존재감은 엄청났지. 잠시간 몸이 굳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러다, 정신 차리고 후다닥 일어났어. 그때 널 무릎에 안고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지?"
"그때 쥐로 난리가 났던 건 어렴풋이 기억나. 아예 잊을 수 있는 기억은 아니니까."
"어쨌든 그 검은 생명체가 이동한 곳으로 파리채를 손에 들고 가봤더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라. 안방 여기저기를 봤는데, 그건 보이지 않고... 대신 가구 밑에 그 생명체의 것으로 보이는 분변이... 기겁을 하고, 정신을 잃을 뻔했어. 다시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그것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겠더라. 안방에 붙어 있는 별도의 공간에 하수구로 이어지는 구멍이 있었던 거야. 아마 세탁기를 놓는 자리라서 그런 구멍이 있었던 거겠지. 그 구멍을 지키고 얼마나 서 있었을까. 손에는 당연히 파리채를 들고. 내 생각에는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그 검은 생명체, 그러니까 쥐가 그 구멍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미는 게 아니겠어! 생각보다 크더라고. 진짜 까무러칠 뻔했다니까. 너는 그때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으니 볼 수 없었을 거야. 소리치며 파리채를 휘두르니 그 쥐는 다시 구멍 속으로 들어갔어.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구멍 속을 쓱 쳐다보니, 그 아래로 검은 세계만 보이더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마치 깊은 깊은 우물 속을 보는 듯했어. 그 즉시 테이프를 찾아와서 구 구멍을 꽁꽁 막았어. 분명히 단단히 막았다고 생각했지."
"구멍으로 들어간 그 쥐는 어디로 들어온 거야?"
"거실 쪽 창문을 열어 놓았었거든. 창문을 살짝 열어뒀는데,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거야, 글쎄."
"세상에."
"그게 그때 한 번 뿐이었을까?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을 텐데. 그러고는 서둘러 거실로 나가봤더니, 너는 하하 호호 거리며 티브이 보고 있더라. 쥐가 너한테 해라도 끼치면 어쩌나 싶었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월차까지 내서 온 집안을 뒤집어엎었어. 곳곳에 쥐똥이... 그거 치우느라 고생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사방에 철책을 두르듯 방비했지. 네 말대로 끔찍했어. 그게 고양이를 내쫓았기 때문이다, 단정할 순 없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시기가 맞아떨어지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다른 집들도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어. 고양이를 내쫓아서 쥐가 나타난 거다, 다들 생각하는 듯했어.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길고양이를 슬슬 용인하기 시작한 거야. 길거리에 고양이가 보여도 쫓진 않게 된 거지. 그러자, 녀석들은 자연스레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어. 생존력이 강한 녀석들이잖아. 그런데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자 동시에 쥐도 사라졌지 뭐야."
"우리 집에도 더는 쥐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어?"
"고양이들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몇 번 또 고생했어. 테이프로 막아둔 걸 갉아먹고 다시 들어와서 집에서 쫓아내느라, 한바탕 나리가 났었지. 쥐들이 구멍 낸 방충망 쪽으로 유인해서 나가도록 했어. 고양이들이 돌아온 후에는 길가에 출몰하던 쥐도 사라졌어.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쥐냐, 길고양이냐,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누구나 길고양이를 선택할 거야."
"지금은 길고양이의 존재를 다들 무시하고 있는 상황 같아. 쓰레기 봉지를 뒤져서 어지럽히는 것만 빼면, 딱히 불편을 끼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어 보여. 공존이라기보다 용인하고 있다고 할까. 애써 챙겨주려고 먹이를 놓아준다든가,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여전히 길고양이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니, 부딪히지 않으려는 거지.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굳이 공존을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걸 테고. 길고양이로 인한 불편이라고 해봐야 쥐의 창궐보다는 낫다는 걸 깨달았으니, 그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만 있는 것 같아."
"하지만 공존도 고민해 봐야 할 때 아닐까? 어쨌든 개체수가 더 늘어나면, 또다시 내쫓자는 이야기가 나올 거고. 그러면 다시 반복... 그러니까, 그때처럼 분명히 길고양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표출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런데 쉬운 문제는 아닐 것 같아. 무엇보다 쥐의 창궐에 관해서 해결해야지. 낙후된 지역을 다른 지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텐데,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아. 선거 때만 되면, 열심히 하겠다고 뽑아 달라면서 막상 뽑히면 책임지려 하지 않지. 흠, 문제는 결국 사람이겠네."
나는 엄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사람과 길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공존이라. 인식의 차이도 있고, 복잡한 이해관계나 비용 등도 고려해야 하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