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수정 중입니다.
"할머니가 널 얼마나 아끼셨는지 넌 기억하지 못하지? 너를 가졌을 때 할머니는 네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할지 직접 알아보셨어. 처음에 이름 있는 작명가에게서 '지민'이라는 이름을 받아 오셨는데, 굉장히 비싼 금액을 내셨다고 들었어. 그런데도 못 미더우셔서 지인의 소개로 만리동에 있는 한 절에 가셨어. 할머니 종교가 불교는 아니잖아. 그런데도 용하다고 하니 앞뒤 안 보고 가신 거야. 일단 들어보기나 해 보자는 생각이셨던 거지.
그 절에는 이름난 보살님이 계셨어. 들리는 이야기로는 당시 유명인사들이 그분을 그렇게 몰래 찾아왔다고 하더라. 믿거나 말거나, 몰래 찾아왔다고 하니 증명할 길은 없겠지.
할머니 말씀으로는, 절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고 하셨어. 잔뜩 의심을 품고 들어섰는데도, 어쩐지 마음속 깊이 에는 감정을 느끼셨다고.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만춘 보살 앞에 앉았대. 아, 그 보살님은 만춘 보살이라고 불렸다더라. 아무튼. 계속해서 마음에 벽을 허물지 않은 상태로 보살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슬며시 그 말씀이 닫힌 마음의 문으로 파고들었다는 거야.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목소리에서부터 그 울림이 무척 커다랗게 느껴졌대. 하지만 여전히 벽을 단단히 세운 채 이야기를 나누셨대. 그때 받은 이름이 규민이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보살님 말씀은 '규민'이라는 이름으로 짓지 않으면, 네가 알 수 없는 병에서 일어나지 못할 거랬다는 거야. 할머니는 굳이 '지민'이라는 이름을 받아온 걸 보살님 앞에 꺼내놓지 않았는데, '따로 지어 놓은 게 있으신가 본디, '민'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니 그대로 두고 앞자만 바꿉씨다.' 하셨대. 보살님은 단호하셨지. 분명히 큰 병을 안은 채 태어나, 7일이 되기 전 발병하여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게 될 거라는, 마치 악담 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셨다지 뭐야. '그런 소리하지 마슈! 말이라도 그런 소리는 참을 수 없어!' 그렇게 듣기 싫다고 하시곤, 그 절을 뛰쳐나오신 거야.
그런데... 정말 그 일이 일어난 거야. 넌 태어날 때부터 조그마했고, 미숙아에 가까웠어. 태어나고도 병원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지. 너만큼 할머니도 실음실음 앓기 시작하셨어. 아직 출생신고 전이니 이름을 확정한 것도 아닌데, 당신은 본인이 이름을 '지민'으로 정하려고 마음먹어서 이렇게 아픈 거라고 여기셨던 거야. 그게 아니라고, 분명히 '지민'이라는 이름도 나쁜 이름이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끙끙 앓기만 하셨어. 매일 병원에서 밥도 제대로 드시지 않고 신생아였던 네 곁을 지키셨어.
어느 날 병실을 지키시던 할머니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셔서는 어딘가로 가셨어. 어디 가시냐고 물어도 답도 없이 무작정 병원을 나서셨어. 그 길로 만춘 보살을 찾아간 건 말할 것도 없지. 만춘 보살은 할머니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문 밖에서 한참을 만나주길 청하셨대. 만춘 보살은 그렇게 딱 7시간이 흐르자, 문을 열었다지 뭐야. 마당에서 만춘 보살은 다짜고짜 한마디만 하더래.
'당장 짐을 싸서, xx산 암자로 가씨오.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알 꺼씨오. 그리고 행자승이 하라는 대로 하씨오. 군말 없이 어서 가기나 하씨오.'
만춘 보살도 나쁜 마음으로 할머니를 대했던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었다더라. 여하튼 할머니는 집으로 가 짐을 단출하게 싸 들고 xx산에 가셨어. 산 근처에 도착해서 암자까지는 차로 갈 수 없어서 성치 않은 몸으로 산을 타셨고. 그곳엔 곱게 생긴 행자승이 절하고 있더래. 그 모습이 어딘가 기이하면서 아름다워 잠시간 가만히 쳐다만 보셨다더라. 행자승이 절을 마치고 합장한 채, 뒤돌아 보지도 않은 채 말했대. '옆 문으로 들어오십시오.' 행자승의 목소리는 모습만큼이나 가냘프게 들려서 더욱더 기이한 감정이 들었다고 하시더라. 이토록 어린 스님이 이처럼 깊은 산중에 기거한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셨대. 그래서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셨대.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드는 것처럼 몸이 움직여졌고, 암자 옆쪽 문으로 싸가지고 온 짐을 든 채 들어셔셨대. 행자승은 그 순간 절을 멈추고, 할머니와 마주 앉으셨어.
그는 그날 자시부터 삼십삼일 기도 하라고 했대. 그렇게 할머니는 절하고 독경하며, 무려 삼십삼 일간 치성을 드리셨어. 불교에서는 이처럼 치성을 드리는 게 일반적인 것이라서 할머니는 아무런 의문도 없이, 삼십삼 일간 암자에서 치성을 드린 후 산을 내려오셨어. 절을 나서는데, 동자승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얼른 내려가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서 서둘러 내려가셨다는 거야. 그동안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지. 갑자기 나타나셨을 때, 나도 얼마나 울었던지... 할머니는 골병 들어서 삼십삼일의 두 배 넘는 날 동안,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셨지. 그런데 말이야. 할머니가 앓아눕자마자, 네 상태가 급격히 호전돼서 곧 인큐베이터를 벗어날 수 있었어. 게다가 그 백일 후엔 우렁찬 울음도 터뜨렸지. 그때쯤 할머니도 일어나셨어.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널 보겠다고 찾아오지 않으셨어. 병문안을 가서 기쁜 소식을 알려드렸지만, 보러 오시겠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 그보다 나보고 그 암자엘 같이 가보자고 하시는 거야. 내가 꼭 같이 가야 한다면서. 너는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할머니와 암자를 찾아갔어. 그런데 암자가 있었다던 자리엔 낮게 자란 풀만 무성했어. 무언가 있었던 듯 흔적은 있지만, 그 무엇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한 모양새였던 거야. 할머니와 나는 싸가지고 온 간단한 음식과 술을 앞에 놓고 경건히 제를 올렸어. 고개를 숙이고 절할 때 느껴졌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그런 후 할머니와 서둘러 산을 내려가 보살님을 찾아갔어. 그런데 보살님이 계셨다던 그 집에 가봤더니 다른 이가 살고 있었어. 물어보니, 보살님이 살았다는 것도 알지 못하더라고. 우리는 망연자실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는 멍한 표정을 지으셨어.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거야. 그리고 그때 건네 들은 또 다른 조건이 한 가지 더 있었다고 하시더라.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조건이었지. 하늘의 기운으로 되살린 아기에게 하늘의 기운을 전한 이가 가까이하면, 그 기운이 사라져 다시 병운에 빠지게 될 거라는.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어. '우리가 마주할 운은 여기서 끝이로구나. 명절에도 찾아오지 말고, 전화만 하그라. 규민이 잘 보살피고.'"
"...."
"할머니가 우리 집에 실망한 게 있어서 관심을 끊으신 게 아니야. 실은 매달 작지 않은 도움을 주고 계시고. 이젠 너도 다 컸으니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거야. 어릴 때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너도 이젠 이러한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종교니, 미신이니, 그런 걸 떠나서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이야기한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 원망하지 말라고. 실은 매번 인사드릴 때마다 네 안부를 먼저 물으셔. 네가 자기 이름을 싫어한다는 것도 다 아셔. 먼저 말씀하시더라고.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적어도 할머니가 이 세상에 계시는 한, 네 인생을 어른들에게 조금이나마 맡겨주었으면 좋겠어. 더 어른이 되면, 나도 너에게 더는 네 이름을 지키라고 말하지 않을게."
엄마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어낸 이야기가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