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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곱슬머리앤 Nov 23. 2023

여기가 내 냠냠 천국이네!

하원하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주방 앞에 선다. 장을 본 지 좀 되어서, 오늘 저녁거리가 영 변변하지 않다. 냉장실에는 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이 있고 만능구원템인 계란이 있다. 이대로는 좀 부족하다 싶어 냉동실을 뒤적거리다 냉동 새우를 발견한다. 레토르트 미트볼과 냉동 볶음밥을 잠시 만지작 거리다가 마음을 고쳐 먹는다.  오늘 아침에도 더 자고 싶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어린이집에 보냈다. 식빵 한 장으로 얼버무리는 아침이 늘 미안해서 저녁에는 뭐라도 따뜻한 것, 갓 만든 것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냉동 새우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두고, 새송이버섯부터 자른다. 자른 새송이버섯에 부침가루를 고루 묻혀 곱게 풀어놓은 계란옷을 입힌 뒤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린다. 새송이버섯 전이 익어가는 동안 팽이버섯과  해동된 새우를 작게 잘라 남은 계란과 섞는다. 부침가루를 적당히 넣어 반죽 농도를 맞춰 놓고, 다 익은 새송이버섯 전을 꺼낸다. 이번엔 팽이버섯새우전을 한 숟가락씩 올려 굽는다.


노릇노릇 전이 익어가는 동안 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열두 번도 더 주방에 왔다 간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얼른 먹고 싶다고 새끼 제비처럼 입을 벌린다. 엄마가 주방에 서 있을 때 한 입씩 받아먹는 건 뭐든 맛있지. 금방 부쳐낸 전은 또 얼마나 맛있고. 후후 불어 입에 쏙 넣어 주면 새물새물 오물오물.

수선 떤 것에 비해 단출한 밥상이 좀 멋쩍은데도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도 먹는다. 한 손에는 젓가락,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기름이 반들반들 묻은 얼굴로 말한다.


여기가 내 냠냠 천국이네!

아침에는 옷 꿰어 입고 나가기 바쁘고, 저녁에는 얼른 먹고 치우고 자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느라 내려놓지 못한  마음을 이제야 내려놓는다. 차린 것 없는 저녁 밥상이 비로소 양볼에 가득한 행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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