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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gistory Mar 12. 2018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육아는 미친 짓이다.

니가 잘못하는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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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나를 데려다 주는 와이프와 차 안에서 나눈 대화들. 사실 대화라기 보다는 독백에 가까운 이야기들. 사는 일에 대한 굽이굽이 굴곡을 이제는 직접 몸이 흔들리는 것 처럼 체감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내가 와이프에게만 너무 덤덤하고 무겁게 이야기를 꺼내는건가 하는 미안함에 시작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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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 보다 더 미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보니 작은 변화에도 덜컥 다음을 걱정하게 된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여러 시스템과 제도들에 대한 불평등과 불균형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보니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미래만 떠올리기에는 불만족스러운 상황들에 자주 부딪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 년 전에는 ‘나’의 부족함과 무능력함을 질타하며 오히려 고통스러울 정도의 피곤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어왔던 고집이나 혹은 신념이 결국 나 하나 개인이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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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수입)이라는 곡선은 나이라는 육체적, 정신적 흐름과 맞물려서 (어떤 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점진적인 오름세를 이어왔지만 이후의 성장은 아주 미비하거나 혹은 아주 낮은 수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베이비는 벌써 성장을 위한 다양한 경험의 기회(지출)가 수반되어야 하는 때가 오고 있고 반대로 우리네 부모 세대들은 이미 성장이 아닌 생의 후반을, 체감상으로는 느릿하지만, 가끔 나이라는 숫자와 확연하게 달라지는 그분들의 건강 상태를 보면 너무나 빠르게 종점으로 향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고 언젠가 맞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가정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삶의 궤적들을 사회나 국가가 과연 얼만큼 현실적으로 보듬어주고 케어해주는지가 아니, 케어받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날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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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성격상’ 맞지도 않을 뿐더러, 애초부터 누군가가 ‘집에서 살림만 한다’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신혼이라는 이름은 빚(부채)와 함께 시작한다. 그야말로 금수저가 아닌 이상에야 서울에서 20평형대의 아파트를 살 수 없고(없다. 없는게 정상이다.) 전세도 쉽지 않은 우리의 선택은 그래도 서울에 교통이 편한 곳에서의 출발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우리는 2호선과 3호선 언저리에 있는 회사를 다녔고 그래서 중간 지점에 신혼집을 차리자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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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합리적이었지만 부동산-집주인-은행, 이 삼인방은 최소한 내게는 합리적이지 않은 숫자들만 꺼내놓았다. 20대와 30대를 올곧이 일만 하면서 살아왔던 나였지만 통장에 잔고가 집을 사거나 빌릴만큼 갖고 있지 않았기(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삼인방들에게 백기. 물론 국가에서 혹은 금융권에서 전세자금 대출이니 신혼부부 대출이니 생에 첫 어쩌구와 같은 친절하고 아름다운 것만 같은 미사여구를 늘어놓긴 하지만 결국은 빚. 다들 그렇게 시작해라고 먼저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선배가 툭 던지는 이야기였지만 정말 다들 그렇게 시작했고 우리도 그랬고 우리의 후배들도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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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 세대들 중에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부동산에 눈을 떠서 아니면 물려받은 부동산 덕분에 끝없는 부를 이어오는 경우도 있다. 신기한 것은 그 부가 더 큰 부를 낳을 수 있게 하는 기회의 원천이자 훌륭한 도구가 된다는거다. 이미 가지고 있는 토지외 건물은 80년, 90년을 지나 오늘까지도 가치의 숫자는 끝없이 오르고 있다. 한 평이 백평이 되었고, 한 채가 백채가 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단 우리 부모님 새대가 아니라 우리 선배 세대들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서민 안정이니 규제니 하면서 정부는 수 년간 시스템에 대한 개선을 시행했지만 부모님 세대와 선배들에게는 이미 다 지나간 새월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리가 없었다. 아니 필요하면 수천, 수백억 중에 수억의 벌금이나 물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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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후배들 세대는 또 다르다. 우리 세대는 물가상승률의 근처도 못 미치는 1%, 3% 의 연봉인상률을 만나고 있다. 결혼 비용은 집을 포함해서 억단위가 필요하고 적어도 결혼식만 해도 수천이 든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문제는 또 다른 세상이다. 맞벌이를 해도 돈은 부족한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테크트리는 무서운 숫자들과 마주하게 된다. 비단 경제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통념, 정서적인 문제도 육아는 엄마의 몫으로 치부된다.
사회보장제도가 두텁지 않은 우리나라는 독박유아에 엄마들을 몰아넣고 자연스럽게 경단녀를 배출한다. 그들은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면 다시 일자리가 있는 시장으로 뛰어들지만 대부분 경력과 다른 단순 서비스직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다. 일자리 자체는 이제 점점 더 없어지는 추세이고 블루컬러 계층이 자리하던 일자리는 수십년 이내에 어쩌면 수년 이내에 로봇들이 꿰차게 된다. 이미 인근 패스트푸드점만 하더라도 무인 계산기가 떡 하니 버티고 있지 않은가? 경영관점에서는 당장은 비싸겠지만 기술이 보편화되고 범용적인 기술은 결국 우리의 일상까지 침투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비용 절감이라는 효율적인 측면만 다루게 된다. 재앙과도 같은 디스토피아다. 문명화/기계화가 더욱 고도의 지능을 갖추게 되면서 우리 아이들이 서서히 그려보는 이상(꿈)과 20여년 뒤에 누리거나 겪게될 현실(일자리)은 지금과 무척이나 다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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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결론이 되는 답을 내가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될거야 나아질거야’ 막연한 기대는 접어야 한다. 오늘은 최대한 의미있게 살아야 하고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과 판단 보다 공동체적인 시스템을 이룰 수 있는 담론이 필요하다.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시작하고 있다지만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의미와 이유를 구체화해야 하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꺼내야 한다. 이제서야 깨달았지만.



※ 더 많은 이야기 읽기 : sigistory ; Just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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