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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an 06. 2025

13. 아마노 요시타카- 팽창하는 세계

청바지의 뒤포켓- 독자적 세계관




-이미지 출처:구글-





7살이 될 무렵 친할머니가 계신 곳 근처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사촌 형제와 자주 놀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작은 아버지의 자녀인 형제를 양육하고 자영업을 하시는 작은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해 주셨다. 작은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도 뵐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장기 체류하며 일하고 계셨다. 그해 겨울 방학, 사촌 형제는 작은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 아빠를 보러 간다며 좋아했다. 대략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고 형제가 돌아왔다. 나와 오빠에게 동경 디즈니랜드에서 찍은 기념사진과 작은아버지가 사주신 선물들을 보여주었다. 잡화상 같이 다양한 물건이 있었는데 그중 최고의 관심을 끈 것은 단연 게임기였다.



-가정용 콘솔 비디오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 / 이미지 출처:구글-



게임기의 이름은 패밀리 컴퓨터(FAMILY COMPUTER). 텔레비전과 연결해 집안에서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으며 게임팩을 꽂아 원하는 게임을 바꿀 수 있었다. 나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오빠는 달랐다. 사촌 형제가 눈앞에서 보여주는 게임기 시연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게 아닌가! 게임기를 조작하고 싶어 하는 오빠를 따라 평소보다 더 자주 할머니 댁에 갔다. 당시는 일본 문화 개방이 되지 않아 공식 수입원이 없기에 콘텐츠인 게임은 일본어로 된 것을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오빠는 게임을 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가며 일본어를 익혔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게임잡지를 구해 그 안에 있는 공략집을 보며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연구까지 하는 열정을 불태운다.






- TRPG 게임의 레전드 <던전 앤 드래곤> / 이미지 출처 : 구글-




자신의 게임기를 갖게 된 오빠는 다양한 게임을 두루 섭렵했다. 록맨, 스트리트파이터, 소닉 등을 번갈아 가며 자주 하다가 RPG(Role Playing Game) 게임을 하며 판타지 세계관에 입문한다. 이때 알게 된 TRPG (Tabletop(or Table-talk) Role Playing Game)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은 팀을 구성한 멤버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어드밴처 게임이다. 조이스틱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비디오 게임이 아닌 주사위를 굴려 진행하는 보드게임 형식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쉽고 재밌게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임 멤버였던 우리 남매와 사촌 형제는 학년이 올라 갈수록 점차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어려워졌고 오빤 혼자서 할 수 있는 RPG게임을 찾는다. 그런데 이전에 하던 게임보다 어려운지 게임잡지를 더 자주 보았다. 한 번은 뭘 그렇게 볼 게 있나 싶어서 책 내용을 들춰 보았는데, 나는 그만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 파이널 판타지 > (FINAL FANTASY)의 일러스트였다.






- RPG 게임 < 파이널 판타지 > 의 게임 진행 화면 / 이미지 출처: 구글 -


- < 파이널 판타지 > 패키지 일러스트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이미지 출처: 구글 -




분명 게임 화면에서는 작은 레고가 움직이는 듯한 2등신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신비롭고 아름다운 총천연색의 8등신 미남 미녀가 온갖 포즈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닌 원화 캐릭터 일러스트였고 이걸 바탕으로 단순화하여 게임 상에 나타내는 거라 했다. 여태껏 내가 알고 있던 만화와 게임의 딱딱 떨어지는 단순하고 규격화된 느낌의 그림체가 아니었다. 휘갈기듯 가는 선이 미세하게 겹쳐 저 물결이 흐르듯 유연한 동세는 역동적인 자세와 화려한 색채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대체 이런 그림을 누가 그렸을까? 궁금했다! 그의 이름은 아마노 요시타카였다.






- (좌) 젊은 시절과  (우) 근래의 아마노 요시타카 / 이미지출처: 구글-



일본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마노 요시타카는 일찍이 그 특출 난 재능을 인정받은 천재다. 어려서부터 그려온 그림은 15세 때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에 발탁되어 일할 정도로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인다. 태어나 그림을 그리지 않은 순간을 떠올릴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그림은 곧 자신이었다. 만화 산업이 꽃을 피우던 일본 내의 환경과 서구 애니메이션을 선도하는 디즈니 만화는 더없이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만화를 넘어 인간이 창작한 순수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과 자유롭고 풍요로운 근대 유럽의 아르누보 양식을 좋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귀스타프 모로, 알폰스 무하 등의 그림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그림체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일본이 섬나라라는 특수한 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었기에 탄생한 예술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는다. 마네, 고흐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채색 목판화로, 에도시대 서민의 일상과 원초적 욕망의 춘화()그리고 신화 속 요괴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는 거리낌 없이 다양하다. 뚜렷한 색상의 대비와 과감한 구도로 표현하는 이 그림은 그에게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왔다. 아마노는 이것의 고유한 감성에 상상력을 더해 작품 안에서 본인만의 방식으로 녹여냈다. 고전 미술 이외에도 미국의 팝아트와 *사이키델릭에 심취하며 창작의 세계관을 넓혀 나간다.




*우키요에: 일본 에도시대 서민 계층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목판화이다. 주로 여인과 가부키 배우, 명소의 풍경 등 세속적인 주제를 담았으며,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자포니즘(Japonisme)에 영향을 주었다. - 출처: 두산백과-



*사이키델릭: 줄여서 사이키라고도 한다. 그리스어로 ‘정신’이라는 뜻인 ‘psyche’와 ‘눈으로 보이는’ 또는 ‘분명한’이라는 뜻의 ‘d'elsos’를 결합시킨 조어. LSD 등의 환각제를 복용한 뒤 생기는 일시적이고 강렬한 환각적 도취 상태 또는 감각체험을 말하며 그런 상태나 체험을 재현한 그림이나 극채색 포스터, 패션, 음악 등을 가리킨다. 회화에서 비롯된 이러한 현상은 사진, 영화, 음악 등에까지 확대되어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1960년대에 주로 히피족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예술가에 의해서 도입되었다. 패션에서는 일상적인 감각영역을 확대시킨 색다른 무늬나 형광성이 강렬한 색감 사용 등을 중심으로 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72년

 <과학 닌자대 갓챠맨> 캐릭터 디자인-아마노 요시타카 / 이미지 출처: 구글



그를 세계적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의 반열에 올린 것은  단연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의 컨셉 아트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뛰어난 창작자였다. 공상과학 히어로물 < 과학 닌자대 갓챠맨> (국내 방영- 독수리 오 형제). 지구 정복을 꿈꾸는 비밀조직에 맞서 싸우는 5명의 혼성 그룹이다. 조류(독수리, 콘돌, 백조, 제비, 부엉이)의 형상과 특징을 모티브로 캐릭터의 성격과 의상을 만들었다. 새의 깃털과 날개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망토, 민첩한 움직임에 필수인 타이트한 바디슈트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싸이하이 부츠를 매치한 패션 센스는 지금 봐도 감각적이다. 새의 얼굴과 부리를 본떠 만든 헬멧의 투명한 실드는 뮤즈였던 동물의 겉모습을 마지막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 했던 치밀함이 보인다. 이로서 현존하는 가장 우아한 영웅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3년

- < 게롯코 데매탄 >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이미지 출처:구글-




연못에 사는 수중생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세상의 삶과 부조리를 풍자한 애니메이션 < 게롯코 데매탄 > (국내 방영-개구리 왕눈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미소를 잃지 않고 풀피리를 부는 왕눈이는 주인공스러운 멋짐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인 감동을 주었다. 다른 애니메이터 두 명과의 협업 작품으로  아마노 요시타카의 화려한 그림을 먼저 안 사람이라면 너무나 의아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단순 명료한 특징을 잡아낸 그림은 캐릭터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투사한다. 이것은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과 작품에 따라 그림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묘사한 스타일의 완급 조절이 탁월함을 증명한다.






*1975년

-  <타임 보칸> 캐릭터 디자인:아마노 요시타카/ 이미지 출처:구글-


- < 타임 보칸 > 에 등장하는 딱정벌레 모양의 타임머신 / 이미지 출처:구글-



< 타임 보칸 > (국내 방영- 날아라 태극호)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한다는 1975년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소재였다. 타깃층이었던 아이들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맞춘 귀엽고 통통 튀는 캐릭터는 극의 흐름과 잘 융화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타임머신을 곤충(딱정벌레, 메뚜기, 사슴벌레)으로 디자인 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며 프라모델로 재작 된 완구는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작품의 흥행은 이후에  시리즈물이 제작되게 하였다.






*1983년



- SF 판타지 소설 < 뱀파이어 헌터 D > 의 일러스트를 담당한  아마노 요시타카 / 이미지 출처: 구글-




아마노 요시타카의 사람을 홀리는 매혹적인 그림의 시초이며 대중적 인기를 넘어 전설의 시작을 알린 SF 판타지 소설 < 뱀파이어 헌터 D > (Vampire Hunter D). 고딕 양식과 서부시대의 특징을 미래 세계와 조합하고 뱀파이어라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더해 불가사의한 매력을 극대화했다. 이 세계관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활자로 전해지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상상 이상으로 완벽하게 나타낸 일러스트의 공적이 크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애니메이션에서도 그의 일러스트를 모체로 캐릭터 디자인을 작화했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1987년



< 파이널 판타지 II > 의 주인공 '프리오닐' -캐릭터 디자인: 아마노 요시타카 / 이미지 출처:구글



< 파이널 판타지 Ⅵ >의 '티나 브랜포드'- 캐릭터 디자인 : 아마노 요시타카/ 이미지 출처: 구글



-< 파이널 판타지 Ⅸ >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아마노 요시타카 / 이미지 출처: 구글 -



<파이널 판타지>라는 게임이 현재까지도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더 환상적으로 구현한 아마노 요시타카의 상상력이 낳은 캐릭터의 힘이다. 그가 창작한 캐릭터의 모습에 맞춰 게임의 설정과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회화적인 그림은 기존 게임에서 느낄 수 없었던 발상을 깨우는 자극제가 되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나서서 밝게 비추는 등불과 같았다.









고유의 포켓 모양과 자수 스티치를 사용하는 대표적 브랜드 'LEE'와 LEVI'S




다양한 청바지의 뒤포켓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캐릭터는 그 존재 만으로 하나의 독자적 영역을 만든다. 극의 비중과 상관없이 끝없는 이야기를 짓는 힘이 있다. 속해 있는 세상의 일원이면서 자신만의 개별적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이다. 청바지의 뒤포켓은 옷의 일부분인 동시에 별도의 영역이다. 스티치, 워싱, 장식과 자수를 넣는 다양한 표현 방식. 포켓의 모양과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다채로운 느낌은 한 벌의 청바지 안에 또 다른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 팽창하는 세계를 낳는다. 그것은 표현 방식에 따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며 독특한 디자인의 표출 창구로서 청바지가 가지는 고유한 속성이 된다.



아마노 요시타카는 그림을 매개로 이 세상에 없던 캐릭터를 구현하며 자신을 표현했다. 한정된 크기 종이라는 물체에 그의 손은 자유로운 연필, 찬란한 색의 물감, 거침없는 붓과 먹의 농담(淡)을 넘나들며 관람자를 다른 차원으로 초대한다. 오늘도 꿈꾸는 마음속 우주를 확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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