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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Feb 19. 2021

그때 그 사람

-방황하는 내 꿈을 응원 해준 그들을 떠올리며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지난달 유니클로 명동 중앙점이 문을 닫았다. 노 재팬 운동과 코로나 19의 여파는 오픈 첫날만 하루 2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대형매장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국내 진출 성공의 상징과도 같던 매장의 몰락은 의류업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놀라움이었다. 며칠 전 언론을 통해 국내 매장 10개를 이달에 추가로 폐점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의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진출했던 187개의 오프라인 매장이 이제 143개로 줄어든다.




1년 전 유니클로의 첫 폐점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란에는 불매운동의 효과가 나타나는 거라며 '그것 참 고소하다! 이 참에 모조리 철수해라.'라는 식의 조롱 섞인 말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하나둘씩 릴레이 폐점이 이어졌다. 나는 마음이 안 좋았다. 폐점이 이어질수록 일터에서 내쫓기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 내가 착용했던 마지막 명찰과 배지. 업무 중 사용했던 사이즈 칩 그리고 플라스틱 셔츠 핀을 그린 일러스트-




오래전 일이다. 일러스트에 적힌 날짜를 보니 2011년 12월. 내 마지막 매장이었던 유니클로 서울역점에 근무하고 있을 때다. 언제나 함께 하는 물건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렸다. 착용했던 명찰과 브랜드 로고가 있는 배지, 상품을 정리하며 늘 손에 쥐고 다녔던 4색 사이즈 칩. 셔츠 포장에 달려 있지만 옷을 펼쳐 보기에 항상 바닥에 나뒹굴러 다녔던 투명한 셔츠 핀이 그 주인공이다.




집기를 조립해 레이아웃을 만들고 색색의 옷가지를 다양하게 접거나 펼쳐서 볼륨을 맞춘 뒤 가지런히 진열한다. 시간 때 별로 담당하는 구역을 정비하고 포스에서 계산을 하며 고객의 바지 밑단 수선을 도와 드렸다. 신상품이 나오면 마네킨에 적용해 vmd 업무를 본다. 창고에 가서는 당일 입고된 상품을 정리하고 전산재고와 실 재고가 맞는지를 자주 살폈다.




"실례하겠습니다."라는 인사는 유니클로 사내 문화에 깊이 자리한 예의범절을 말한다. 문하나 열 때부터 외쳐야 하는 이 관례가 처음엔 몹시도 어색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회사인 만큼 직원으로서 그 특수성을 이해했고, 잘 짜인 매뉴얼과 체계는 살면서 해보지 않은 낯선 업무에 빠른 적응을 가능하게 하였다. 매일 마주하는 다양한 옷을 보고 만지는 일은 '옷 만드는 세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매장에서의 근무는 즐거웠지만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고3 때 접어야 했던 미대 입시와 그림. 그 안에 이젠 '옷'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되어 혼란스러웠다. 30대를 앞둔 시점에서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내 인생. 삶에 밝고 환한 빛 하나가 필요했다.







- 매장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들을 그린 일러스트. 블로그에 올릴때 기재 한 실명을 가렸다.-



블로그를 개설해 그림과 옷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브랜드의 옷을 입고 현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을 그려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던 < I'm a staff! >. 근무 중 혹은 쉬는 시간이나 퇴근하는 찰나에 허락을 받아 보고 그릴 사진을 찍었다. 실명과 개인 정보가 그대로 올라가 있어 현재는 비공개 상태로 해 두었다. 이제 보니 인터뷰 내용은 또 얼마나 시시콜콜한지. 낯간지러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고 자신의 귀한 시간을 할애 한 동료들.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내 꿈을 응원 해준 참으로 고마운 조력자였다. 복학을  위해 학비를 모으던 휴학생이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 경력을 쌓기 위해 일하거나 스텝부터 입사해 진급하여 점장이 되기 위해 매진하는 등 각자의 목표 아래 모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입는 옷에 담긴 스토리는 내 생각의 환기를 가져왔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을 다잡아 스스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게 했다. 




퇴사 후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 데님(denim)이라는 최종의 목적지를 만날 수 있었다. 세일즈에서 디자인으로 분야가 바뀌었지만, 그 당시 옷을 판매하며 경험한 과정은 옷을 제작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유니클로는 내가 일 한 패션 기업 중 월급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상여금과 퇴직금은 물론 세금 환급에 이르기까지 처음에 약속한 노동의 대가를 투명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 소속되었을 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근로자의 권리는 내가 패션디자인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산산이 부서지고 침해되었다. 법의 테두리를 무시하고 자행되는 불합리한 요구 조건들, 퍽하면 이뤄지는 임금체불과 폭언. 큰 욕심을 부린 적도 없는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은 암울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비난하며 불매하는 회사 '유니클로'를 나는 싫어할 수 없다. 내 인생에 고마운 순간을 만들어준 사람과 장소를 있게 해  감사한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팬데믹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인단말기 키오스크(kiosk)를 비치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늘어났다. 패스트푸드와 생활용품점은 이미 많은 점포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의류 업계는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 체계를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유니클로라는 거대 자본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부진한 매장 판매실적을 감당하기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불가한 부분이라는 걸 안다. 전 매장이 직영점이며 매장에서 근무 후 진급하여 본사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40개가 넘는 점포가 폐점하고 거기에 말단의 직원들은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수 없이 많을 테다. 이 모든 사람을 수용할 자리가 없다. 판매의 최일선에서 브랜드 그 자체였던 스텝들은 한순간에 직장을 잃게 된 것이다. 모두가 개인의 꿈을 가슴에 품고 일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내 동료를 떠올리게 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매서운 한파처럼 몸을 움츠려 들게 하는 실업(業)은 개인과 가정을 이루는 사회 구성원에게 충격과 시련을 안겨 준다. 국내에서 벌어진 불매운동의 취지와 실행 배경은 이해 하지만 어떠한 사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했을 때 연계되는 산업구조는 매우 다양하게 얽혀 있다. 그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중심 산업이 무너지면 타격을 받는다. 연쇄적인 실직을 피하기 어렵다. 나는 이점이 안타깝다.



현재 유니클로가 국내 매장을 철수하며 대량 실업 사태를 가져온 것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의식에 부재를 들 수 있다. 또한 브랜드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주는 고객의 강력한 서포트가 없어 벌어진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여파가 온전히 직원들의 퇴직으로 마무리되는 현상이 참담하다. 부디 회사를 떠날 예정에 처한 그 사람들이 막막하지 않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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