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 mei mi Mar 18. 2021

개모차는 달린다.

- 내게 온 기적을 위해








"견종이 어떻게 되나요?"

"미니핀이요."

"이름은요?"

"미니요."

"(크게 웃으며) 하하하! 너무 성의 없이 지으신 거 아녜요?"



2018년 8월 서울로 이사 오게 되면서 같은 건물의 이웃에게 반려동물 미니의 이름을 소개하며 함께 웃었다. 품종인 미니어처 핀셔(Miniature Pinscher)를 줄임말 '미니핀'에서 딴 이름 '미니'가 너무 고민 없이 지은 것 같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 이름은 품종에서 따온 것이 반, 역대 우리 집 강아지들의 돌림자를 따른 것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우리 집에서 몇 달간 머물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첫째 강아지 몰티즈- 미미. 중학교 1학년 때 작은 아기 강아지로와서 큰 몸집의 성견이 되어 시골로 보내진 둘째 아키다- 미리. 가족이 된 기쁨도 잠시, 너무 이른 헤어짐이 늘 아쉬웠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야반도주 한 거래처에 홀로 버려진 강아지를 아버지가 데리고 오셨다. 잠바 주머니에 담겨 온 작고 가녀린 몸은 먹지 못해 앙상하고 피부병이 심해 검은 털에 하얀 각질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던 두 강아지와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한 마음을 달래는 동시에 미미와 미리의 몫까지 장수하고 살라는 염원을 담아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미니'다.






- (좌) 2019년도 아버지와 함께 한 산책길에서- 가족이  모이면 미니는 더 힘을 내어 걷는다. (우) 2020년도 봄에 벗꽃잎이 깔린 하천의 보도블럭-


- 하천 쪽을 바라보는 미니. 눈이 보이진 않지만 냄새와 소리로 자연을 느낀다. -


- 집 근처 하천에 서식하는  예쁜 새들. 미니는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와 새의 지저귐을 좋아한다. -



올해 21세인 노견 미니는 2018년 오른쪽 앞 발가락 하나가 골절되기 시작해 발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결국 양쪽 앞 발이 휘어지고 변형되는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되었다. 몸은 불편 해 졌지만 미니는 열심히 산책하며 운동하였다.



2020년 3월에 내가 척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집에서 하천까지 미니를 안고 나가는 일이 힘에 부쳤다. 혹시나 안고 가다가 낙상 사고가 벌어질까 염려되어 구입한 것이 유모차다.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쿠션과 담요를 깔아주니 미니는 푹신하고 넓은 바닥을 좋아하며 편하게 앉았다. 유모차는 나와 미니에게 튼튼한 새 허리이자 새 앞발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일부 사람들은 '사람 아기가 탈것에 개를 태웠다'며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 들리도록 안 좋은 소리를 했다.



"아이고~개 팔자가 상팔자네!"

"젊은 여자가 유모차에 개를 넣고 다녀?"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 아기 넣는 유모차에 무슨 짓이야?"


전보다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개모차를 갖고 나가는 산책길엔 따가운 시선과 입방아에 오른다.



미니가 개모차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디면 두 가지 시선으로 나뉜다. 아픈 다리를 보며 안타까워서 건강하라며 응원의 덕담을 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 반면 소수의 사람은 징그럽다는 듯 위아래로 훌고 지나간다. 또 자신의 반려견이 미니 곁에 다가가려 하면 급하게 반려견의 목줄을 틀어 가버렸다. 그리고 뒤돌아서 다시 한번 미니를 위아래로 훌고 갔다. 장애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한마디 말 보다 더 강력한 무언의 제스처가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 미니가 먹는 약과 영양제들. 나는 이것이 미니의 건강을 완벽히 지켜준다고 착각했다.-


- 올해 1월 안과에서. 밝은 내부 조명에 하얀 이불에 둘러 싸여 사진이 잘 나왔다.-




아무렴 어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산책을 즐기면 됐다는 생각이 중요해졌다. 지금 미니가 건강하고 근래에 간 안과에서는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게 치료가 됐다고 확인되었으니 그거면 족했다. 그리고 약과 영양 보조제도 꾸준히 먹고 있으니 앞으로도 미니는 건강하게 살아갈 거라 확신했다. 새해가 되면 각각의 약을 6개월 내지 1년 치 단위로 구비해 놓는다. 1월에 나는 준비한 약을 한대 모아 사진을 찍고 '노견 가족의 새해 준비'라는 이름의 글을 쓰려고 생각 중이었다. 든든하게 챙겨진 미니의 약을 보면서 올해도 건강하게 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교만이고 착각이었다. 이만하면 잘해주고 있다는 나의 허황된 인식은 가장 중요한 정기검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주머니 사정을 알아서 인지 미니는 고맙게도 어려서부터 큰 병치레가 없었다. 서울로 이사 오기 3개월 전 받은 수술로 2018년 5월에 했던 검진이 가장 최근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선 큰 병원으로의  검사를 권유했다. 혹시 병변이 발견된다면 작은 병원에선 대처가 어려울뿐더러 또다시 아이에게 행해질 수많은 검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 주기 위한 배려였다. 만약 염증이라면 우선적으로 약물 치료를 시행할 수 있으니 너무 무서운 생각은 안기로 했다. 그런데 방광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이 최소 6개월에 한 번은 노견의 건강검진을 권고하는 이유가 있다. 병을 크게 키우지 않게 하고 초기에 발견해 적절한 대처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나란 사람은 아이를 잘 돌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정기검진을 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미니의 신체적 고통으로 돌아왔다.



오류, 실수, 착각.. 생명 앞에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사는 이 아이에게 내 무지함이 빚어낸 결과는 이제 생사의 갈림길에 다가왔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필이면 방광목(소변이 요도 쪽으로 나가는 길목) 부분에 발생한 종양은 수술로 적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종양이 커지면서 소변이 배출되는 구멍을 막아 잔뇨감이 생기고 전처럼 시원하게 볼일을 보지 못 했던 것이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변은 이대로 두면 요도 폐색이 와서 스스로 소변을 보지 못 한다. 레이저 관을 통해 막힌 소변길을 뚫어주는 시술이 있지만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법이라 했다. 완전한 치료가 아니며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에 고령의 미니에게는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더 두고 보다가는 신장과 간 기능이 안 좋아져서 수술을 할 수 있는 몸상태를 잃어버린다. 동물병원의 외과 스케줄로 5일 후 예약이 잡혔다. 당일 혈액검사와 ct를 찍은 뒤 마취 가능 여부를 살핀다고 하셨다.



종양을 발견하고 계속 울며 보냈다. 나를 원망하는 게 정상인데 미니는 여전히 밝게 웃고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저 작은 몸속에 커다란 종양이 압박해서 아팠을 텐데 아픈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너무 착하고 순수한 이 생명에게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지혜롭지 못 한 나 자신을 탓 해도 나아질 게 없었다.






나는 스스로 성당에 갔다. 2019년 6월 이후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냉담 상태였다. 내게 정신적 학대와 신체적 상해를 갖게 한 직장 내 괴롭힘의 주역인 전 직장의 사장님과 실장님은 나와 같은 천주교 신자로 특히 실장님은 종교에 탈을 쓴 악마였다. 그래서 그녀가 겉으로 티 없이 독실한 신자 행세를 하며 신실하게 믿는다는 성당이 무섭고 징글징글했다. 사람들은 속아도 하느님께서는 다 보고 알고 계실 텐데 가해자인 그 사람에게 아무런 벌함도 없이 나 홀로 고통받는 삶을 참을 수 없었다. 신께서는 잘못이 없고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전지전능한 그분의 보살핌이 나를 비껴갔음을 느끼며 집에서 기도는 올려도 결코 성당만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내가 내 발로 성당에 찾아가 성모상 앞에서 빌었다.




미니는 21년을 살면서 죄 한번 지은 적 없는 정말로 착한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이런 고통은 너무 가혹하다. 죄가 있다면 안일하게 아이를 챙기지 못 한 내 죄였다. 그걸 말씀드렸다. 제발 미니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바랬다. 내게 미니와 건강히 오래 살 기적을 내려 주십사 간청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미니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그날이 기적이 발현된 순간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나의 십 대 후반과 20대를 지나 30대를 함께한 그 세월 동안 미니가 내게 준 행복의 소중함을. 한때 바쁘다는 핑계로 너를 소홀히 했던 나를 제발 용서 해주기를. 그리고 미니를 지키고 보살필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시길 기도드렸다.






3월 11일 오전에 검사를 마치고 수액을 맞은 뒤 시술에 들어갔다. 감사하게도 레이저 시술은 성공적으로 되었고 미니는 전신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많이 힘들어서 인지 좀처럼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기 넘치던 모습이었는데 병상에 누운 모습에 눈물만 난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하루 한번 10분으로 제되어 많이 안아 줄 수도 없다. 그래도 매일 면회를 갔다. 미니가 좋아하는 연어와 야채를 넣은 죽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늙은 호박을 함께 넣었다. 미니가 소변을 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내 성의를 봐서일까? 미니는 힘겹지만 조금씩이라도 먹어 주었다. 얼른 기운 차려서 집에 가자는 말을 귓가에 속삭였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3월 14일 오후. 입원 3일마다 중간비용을 원무과에 수납해야 하는 날이 왔다. 먼저 완납한 수술비와 비등한 금액의 입원비에 손에 받은 청구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지금 미니가 있는 곳은 중환자실이고 24시간 의료진의 보살핌과 처치가 이뤄진다. 하물며 이름난 병원에 고가의 설비를 갖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그에 합당한 의료 수가가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빈약한 내 통장잔고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 혹시 미니가 지금 누워서 병원비 걱정하느라 맘 편히 쉬고 있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하고 아플 때 좋은 병원에서 편하게 치료받게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모습. 내가 세상을 잘 못 살았다는 증거였다.





힘겨운 마취에서 깨어나 몸을 추스르나 싶었는데 시술 후 생식기에 부종이 생겨 요도를 압박했고, 자가 배뇨를 못 할 뿐 아니라 소변 배출을 위한 카테터를 장착할 수 없어 몸속에 요독이 쌓이기 시작했다. 소변을 빼내기 위해 하루에도 수 차례 방광에 주사기로 소변을 빼는 방광 천자를 받아 미니의 배는 붉게 상기되었다. 급기야 3월 16일 오전 신장 수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난다는 주치의 선생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방광경을 통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시경으로 심하게 부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요도를 찾아 카테터를 장착해 소변을 빨리 빼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광경 시술에도 전신 마취가 필수적이었다. 노쇠한 몸으로 앞서 오랜 시간 전신마취를 한 미니에게 또다시 마취라니... 혹시나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영영 못 깨어나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주치의 선생님 말씀에 다시 한번 수술 마취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방광경은 이전 시술 때보다 마취시간이 30분 내외로 짧다고 하셨고 신장 이외의 다른 신체 수치가 비교적 안정적이라 마취에서 못 깨어나진 않을 거라 말씀하셨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한 시간이 좀 넘어 주치의 선생님께서 대기실 문을 열고 웃으며 말씀하셨다."잘 됐어요. 지금 하길 정말 잘했어요!"




정밀한 내시경을 통해 부종에 감춰진 요도를 찾아 카테터를 장착했고 미니의 몸 안에 쌓여 있던 소변이 호스를 타고 밖으로 내보내지고 있었다. 힘 없이 축 처진 몸은 가쁜 호흡을 내쉬면서도 주변의 소리에 반응하며 의식을 회복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내 욕심으로 괜히 수술을 시켜 미니를 더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생사를 오가는 사투 속에서도 나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 나는 언제나 너의 배려와 사랑 안에 살았음을 바보같이 오늘에야 안다. 너는 언제나 내 곁에 머무는 아늑한 공기와 같아서 특별함을 느낄 새가 없었노라고. 너와의 하루하루가 영원할 것처럼 당연히 여기며  좀 더 아끼고 소중히 보내지 못 한 참회의 눈물이 흐른다.





- 오늘 저녁 병원에서 보내주신 반가운 소식-




매일 오전 10시, 전 날 밤 소식을 병원에서 사진과 함께 메신저로 보내 주신다. 오늘 면회 때 미니에게 늙은 호박과 대추를 넣어 달인 물을 급여해도 되는지 주치의 선생님께 여쭤 보았다. 다행히 허가가 났고 텀블러에 담아 전해 드렸다. 여전히 하루 한번 10분 면회지만, 카테터 장착으로 소변 배출이 원활하여 전보다 편해진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힘 없이 누운 미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계속 말을 건넸다.


"미니야! 정말 장하다! 역시 우리 미니는 못 하는 게 없네! 조금만 더 힘내자. 선생님이 주시는 밥이랑 약이랑 잘 먹고 쉬도 잘 싸고 응가도 잘 싸고 잠도 잘 자야 얼른 기운 차린다. 그래야 우리 집에 빨리 가지! 얼른 집에 가서 언니랑 놀자."


중얼거리는 내 속삭임은 잠들고 싶어 촉촉한 코가 마른 미니를 깨웠다.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내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것 같았다. 어느새 면회가 끝나고 내일 온다는 말과 함께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와 방 정리를 하니 저녁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후에 내가 두고 간 늙은 호박 달인 물을 미니가 조금이지만 스스로 일어나 먹어 선생님께서 대견하다며 소식을 알려 주셨다. 몇 시간 전에 누워 있던 아이가 일어난 모습은 이제 기운을 좀 차리는 듯 싶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미니와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이제 단 몇 달 만이라도 행복한 추억을 남기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온전히 맡겼다. 저 조그마한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술과 마취를 여러 번 겪고 다시 깨어난 것은 신의 가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분의 자비와 은총에 감사하며 베풀어 주신 은혜에 욕심부리지 않고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자 마음먹었다. 반드시 오고야 마는 죽음 앞에 나의 미련으로 인해 미니가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 아름답게 헤어질 준비를 하기로. 그래야 내가 죽어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미니가 슬퍼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다 만날 수 있으리라.



일을 오래 쉬게 되면서 내가 예전에 했던 그 일을 정말 한 사람이 맞는지 조차 희미하다. 스스로 앞날을 꾸릴 주제가 못 된다는 한탄에 빠진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미니가 있는 한편을 보노라면 어두운 생각이 겉 치고 희망이 건재함을 느꼈다. 존재 자체가 그저 빛나는 아름다운 생명체. 개의 형상을 빌어 내게 찾아온 천사.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작고 귀여운 내 동생 미니. 이제는 나보다 나이 든 너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을 붙잡고 싶다. 내 생명을 너와 나눠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너를 힘들게 한다는 걸 알기에 지금 주어진 우리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자. 네가 떠나는 그날이 와도 나는 살면서 너와 나의 삶이 이어짐을 증명하려 한다. 너를 만나 느꼈던 일상의 행복이 기적이었고 귀한 네가 나를 찾아와 가족이 되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단다. 며칠 더 몸을 회복하기 위해 병상에 있어야 하지만 퇴원하고선 네가 좋아하는 하천에 물소리, 풀내음, 새소리 들으러 나가자. 우리의 개모차를 타고서.





작가의 이전글 그때 그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