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나는 불편한 존재다.
가족들과 대화할때 일상 생활속에서 불편하게 느낀것을 끓임없이 말한다. TV를 보다가도 "어?저런 발언은 차별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것 같아. 안그래?"라고 가족들에게 묻는다. 가족끼리 저녁에 편안하게 술을 먹는 자리에서 종종 회사에서 내가 보고 들은 불편함의 파편들을 술안주의 주제로 가져온다. 가족들의 반응은 대개 "참 피곤하게 산다. 그냥 좀 넘어가면 안돼?"였다. 공감을 안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은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봐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불편한것이 많고 불편한 것을 자주 말하는 존재는 타인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 사회에 잘 융화되고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은 사회적인 통념이다. 누군가는 "모난정이 돌 맞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촉석봉정(矗石逢釘)을 예를 들며 사회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미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언니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내가 생각 났다며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준 책이 있었다.
<나만 공감 안되는 거였여?>의 작가 이은호는 스스로 "프로 불편러"라고 부른다.
이 책의 부제는 "혐오와 조롱이 오락이 되는 세상"이다. 그는 11개의 영화 속에 숨겨진 혐오, 조롱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 한다. 과하게 식탐 많고 뚱뚱한 사람을 ‘돼지’로 표현한 <내 안의 그놈>이라는 영화에서 뚱뚱한 사람을 자기 관리를 못한 거라고 표현하는데 저자는 영화에서 이렇게 혐오적인 표현으로 어떤 대상을 일반화 시키는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폄하 하거나 조롱한적이 없다면 성인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시절에 나도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인지하지 못할때는 누군가의 약점을 잡아 괴롭히거나 놀렸던 기억이 있다. 참으로 창피한 과거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타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의 행동 때문에 지금까지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언제부터 불편한것이 많은 존재가 되었을까?
어릴때부터 나는 경험해보고 싶은게 많은 사람이었다. 먹어보고 싶은것도 가보고 싶은곳도 많아서 최대한 많은 양의 경험을 채우는것이 목표인것 처럼 허우적 대며 맥시멀리스트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환경적으로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에는 이런 욕구를 채워주는 부모님 덕분에 접시 가득 물이 차있는 상태처럼 살았다. 그러다 그 모든것이 한번에 무너져 내리는 상태를 경험한것이 고등학교때였다. 세상에 나홀로 남겨진것 같았고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던 그때는 나의 접시에 물이 한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텅빈 상태였다. 이 때부터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채우고 있는 '세상'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 영화, 연극을 보고 사유하며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는데 이 기술을 주로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였다. 글을 쓰면서 '나'와 '세상'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들었고 더 자세히 알기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깊어졌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공감하는 시간을 갖으면서 나는 좀 더 단단해졌다.
초등학교 2학년 조카와 대화하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다. 가끔 저런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있다. 조카에서 물어보면 여지없이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럼, 친구들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접했을까? 라고 물어보는데, TV나 유튜브를 통해 알게되었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왜 어린아이에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언어나 이야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걸까? 그런 콘텐츠들을 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경우 그것을 모방할 수 있으며 꽤 위험한 사고까지 연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만 자극적인 미디어가 유해한 것일까?
어른이라고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른이 되었다고 모두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올바른 판단이란 무엇일까?
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가 시상식 도중 시상자 크리스 록의 농담에 격분해 뺨을 때린 사건이 있었다. 윌스미스는 크리스 록이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의 아내의 병과 관련한 농담을 언급한 것에 대해 견디기 힘들어서 감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 사람에게 사과를 했지만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이사회를 열어 윌스미스에게 10년간 이 시상식 참가가 금지되는 중징계를 내렸다. 당시 이 사건을 트위터에서 본 나는 시상식에서 폭행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윌 스미스에 대해 실망이 매우 컸다. 주변 지인 몇명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 했는데 의외의 반응이 있었다. 시상자의 농담이 과했다며 맞을만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그들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 난 이사건에서 폭력을 가한 윌스미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당연히 상대방의 치부를 농담의 소재로 삼은 시상자의 행동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때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에코비평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괜찮은 주제이고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첫화 녹음을 준비하면서 부담 갖지말고 꾸준히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잘 쌓아가 보자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하고 싶은 일을 주저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에코비평 <그린바이브>를 통해 우리와 비슷한 비판의식을 가진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