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지구도 지킬 수 있을까?
2023년 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년초에 계획했던 충청북도 단양 여행을 지난주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10살 조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조카를 포함한 가족 여행은 "리조트에 있는 아쿠아월드를 방문하는것이 가장 중요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여러번의 가족 여행을 통해서 학습된 것이기 때문에 조카와 함께가는 가족여행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이번 여행도 아무생각 없이 자동차에 몸을 싣고 단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1박 2일 내내 리조트에 묵는 것도 아닌데 여행에서 내가 얻고 싶은 경험이나 목표를 왜 세우지 않았지? 그제서야 단양에 대한 여러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동선을 최소화 하고, 경비를 절약해서 다녀올 수 있는 장소를 가족들과 논의해서 결정했다. 다음부터는 가족여행일지라도 각자가 원하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행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코로나 팬더믹 이후, 실내외 마스크 착용 규제가 완화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여행수요가 증가했다. 자연스럽게 여행을 주제로한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프로그램에서 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행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있는가 반면, 웃음을 주기위한 예능의 소재로 여행이 소비된 프로그램도 있었다. TV 프로그램 외에 여행을 키워드로 만들어진 다양한 콘텐츠들을 찾아 보았다.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여행을 소비하면서 생각해 볼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여행을 주제로한 콘텐츠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주사위를 던져서 떠나는 세계여행을 간다는 컨셉의 여행 버라이이티 프로그램이다. 여행 크리에이터 3명(빠니보틀, 곽튜브,원지)이 지구마블 게임의 플레이어다. 김태호PD가 설계한 <세계여행 브루마블> 게임에서 주사위를 던져 말이 이동한 곳으로 실제로 여행을 가는 세 유투버는 그 어떤 계획도 없이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총 3주간의 여행기간 동안 지구 5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여행하게 된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한 유투버는 하룻밤을 싱가폴 창이공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라오스에 방문한 또다른 유투버는 공항에서 관광지(루앙 프라방)로 이동하기위해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 갔는데 슬리핑버스가 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는 다시 현지 이동수단(툭툭)을 타고 기차역에 갔는데 40분이 늦어져서 마지막 기차를 놓치게된다. 결국 루앙 프라방을 가는 계획은 다음날로 미뤄지고 기차역에서 또다시 툭툭을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이날 라오스에서 이 유투버가 이동한 거리는 총 3,215km 이라고 방송에서 언급했다. 이동에만 들어간 비용은 420,000킵(라오스 돈)이며 한화로 약 32,000원이 나왔다고 한다. 라오스의 물가를 반영하면 이 금액은 한 노동자의 일주일 월급이 훌쩍 넘는다. 계획없는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이는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환경에는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여행을 주제로한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목적이 없고 무계획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방영 되었던 또다른 여행 예능 콘텐츠 중에 <서진이네>는 한 지역에 몇주간 머무르며 한국 음식점을 오픈해서 운영하는 컨셉이다. 한국음식을 해외에 소개하기위해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물며 지역 사람들이나 특징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소개된다. <텐트밖은 유럽>은 네명의 배우가 승용차를 타고 유럽(스페인)을 다니며 캠핑을 하는 컨셉이다. 한 지역에서 최소 하루 정도 머물며 천천히 지역을 둘러본다. 밤에는 함께 텐트를 설치하고 요리해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여행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콘텐츠다. 여행 프로그램들을 비교하다보면 결국 여행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를 포함한 주변 지인들 대부분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여행은 무엇이고 여행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참고] 22년 말 기준으로 월 79.7달러면 라오스에서 노동자 한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http://newsimpact.co.kr/View.aspx?No=2627210)
[참고] 유럽연합이 2019년 4월 제시한 2030년 신차(승용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은 1km당 59g이다. 현재 일반 가솔린 엔진의 자동차는 1km 당 132~143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참고] <KISTI의 과학향기> 제1776호에서는 표준탄소흡수량에 따르면 30년생 소나무 한 그루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은 6.6kg이다.
[참고] 탄소나무 계산기 : https://carbonregistry.forest.go.kr/fcr_web/resources/carbon_calc/html/main.html
2021년 애플TV를 통해 스트리밍 된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락다운(사회적 거리두기)이 되고 30억 명의 인간의 활동이 제한되었던 2020년 3월 이후 1년간 지구와 하늘, 땅, 바다 등 자연이 본래의 생명력과 리듬을 회복되는 광경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코로나19로 락다운이 시행된지 12일 정도 됐을 때 인도의 잘란다르 지역에서 대기오염이 사라져 인근지역 주민들이 히말라야를 볼 수 있게되었다고 한다. 30년 동안 스모그에 가려졌던 산이 모습을 드러냈고, 동네 사람들은 모두 옥상에 올라가 "산이 보인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의 시스템을 작동하는 속도가 느려졌고 그 시간동안 자연의 시스템은 되살아났다. 인간들의 활동이 제한된 이후 차량과 선박의 소음이 사라지자 바다에 사는 고래들은 서로의 언어를 더 잘들을 수 있게 되었고, 아프리카 초원의 엄마 치타는 위험하지 않고 건강한 환경에서 새끼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멈췄을 때 비로소 지구의 하늘과 땅, 바다가 리듬을 되찾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는 인간이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 어느정도의 사회‧경제적 노력이 필요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다큐멘터리이다. 인간의 활동이 제한되자 전 세계의 연간 이산화 탄소 배출량이 6% 넘게 떨어졌다고 한다. 역사상으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인데, 이를 통해 인간의 활동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코로나19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일시적으로 억제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탄소 배출량 뿐만이 아니라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구 온도 상승을 낮출 수 있고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1년이 넘는 인류적 재앙과 경제활동 위축을 겪었음에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었다.
2020년에는 유난히 맑은 하늘을 많이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해 지인들과 하늘을 보며, 아주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된것을 감탄했었다. 인간들의 이동, 활동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인간들이 힐링과 여가생활을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한 것, 편리함을 위해 선택한 활동들이 자연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코로나19팬터믹 기간에 강제적으로 '일시 정지'상태가 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일상'이라는 단어를 두고 두가지 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유해한 활동을 했던 2020년 3월 이전의 삶을 되풀이 할것인가? 아니면 2020년 3월 이후 자연에게 무해했던 그때의 삶을 지향할 것인가?
[참고] 코로나19 과학 리포트 2 / 코로나19팬데믹은 기후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1003/selectBoardArticle.do?nttId=20225&pageIndex=1&searchCnd=&searchWrd=
유럽여행위원회(ETC)에서 발간한 ‘지속가능 관광’ 핸드북에서 가장 강조된 주제는 ‘이동 수단의 탄소 배출량 감소’였다. 지속가능한 여행 산업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 '서스테이너블 트래블 인터내셔널(Sustainable Travel International)'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세계 탄소 배출량 중 약 8%를 차지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항공을 포함한 교통수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UNWTO(세계관광기구)는 지속 가능한 관광을 "현재와 미래의 경제, 사회 및 환경적 영향을 완전히 고려하여 방문객, 산업, 환경 및 호스트 커뮤니티의 요구에 대응하는 관광"으로 정의했다.
여행 플랫폼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킹닷컴, 스카이스캐너, 트립어드바이저, 구글 등은 지속 가능한 여행 연합체 ‘트래벌리스트(Travalyst)’에 합류했다. 트래벌리스트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항공 이용부터 관광까지 여행 전 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배출량과 환경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여행 플랫폼 기업들의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프레임워크가 소비자에게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주기위한 광고나 선전, 홍보수단 등으로만 활용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횡보를 끝까지 잘 지켜봐야 할것이다.
[참고] STI(Sustainable Travel International)에서 제작한 지속가능한 여행 다큐멘터리는 지속가능한 여행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https://sustainabletravel.org/where-next/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의 저자 홀리 터펜는 ‘기후 위기 속에서 여행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면서 ‘지속가능한 여행’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실질적인 정보들을 모아 책으로 펼쳐냈다. 그는 2008년 비행기를 타지 않는 세계여행을 하면서부터 '책임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그린트레블러 여행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다. 또한 그린호텔리어 잡지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지속가능한 여행을 알리기 시작했다.
여행 산업은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며 기후위기를 앞당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어왔다. 2018년 발표된 네이처 <자연기후변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배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여행 산업의 성장이 제조·건설·서비스 산업의 성장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여행 산업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되는 것은 바로 항공 산업이다. 비행기가 기후 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스웨덴의 룬드대학교에서 발표한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로 왕복 여행을 한번 하는 동안 탄소 4톤이 배출된다고 한다. 이는 일년 동안 재활용을 열심히 해서 아낄 수 있는 탄소량의 20배이며, 세계자원연구소(WRI)가 규정한 1인당 연간 탄소 허용치인 2.5톤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치다. 일년 내내 환경을 위해 노력하여도 비행기를 한 번 타면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되는 것이다. 때문에 항공 산업의 그늘과 심각성을 일찌감치 인지한 유럽에서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뜻의 ‘flyskam’ ‘flight-shame’ 캠페인이 시작되기도 했다. 관광지마다 쌓여가는 쓰레기도 문제다. 벌써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이 풀리자마자 국립공원들은 넘쳐나는 쓰레기로 다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고, 멋진 경치는 자동차에 가려졌으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관광객들은 생태계 이곳저곳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여행 기분에 들 떠 휴가기간 동안 플라스틱 생수병을 수십개 쓰고 버리는 건 예삿일이며, 수많은 음식을 남기면서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필요 없는 기념품들을 충동구매하며 자원을 낭비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면서 여행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 홀리 터펜은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여행을 멈추는 대신,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에서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는 책임여행은 ‘여행상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태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책임여행의 중요한 원칙은 여행지 주민의 문화, 경제, 환경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자연스럽게 호텔보다는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교통수단을 피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등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문제점들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각자에게 여행이 자기 삶에 왜 필요한지, 여행을 한다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탄소배출을 최소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의 계획을 세운 후에 여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의 시대에서도 우리가 꼭 여행을 해야 한다면 우리의 여행을 하는 방식이 변화 되어야 '여행'도 지속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