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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Mar 12. 2017

한 밤의 연애 심사

(1) 코스비와의 만남




어느 늦은 밤, 새로운 인연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 나는 연애심사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다소 유쾌해 보이는(코스비 아저씨 같은) 심사위원이 앉아있었다. 나는 멘탈여권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늘 그렇다는 듯 멘탈여권을 펼쳐 그동안의 내 연애 기록을 살펴보았다.

"아니, 뭐 이리 만신창이입니까?"

코스비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나를 힐끗 보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 33살이신데 아직 사랑의 결실은 못 맺으셨고.. 결국 자신에 맞는 이상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새로 누굴 만날 자신도 없으시고.. 아니 이래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럼 어떡하나요? 이제 나이도 적지 않고 새로운 시작이 두려워집니다. 더 이상 상처받고 헤매는 것도 지겹다고요. 그러다 보니 생각만 많아지고 걱정이 앞서다 보면 예전 같은 만남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꽤나 정직한 대답을 토해낸 나는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코스비 아저씨는 그것이 다소 웃기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킥킥거렸다. 나를 능멸하는 듯한 그의 즐거움에 난 다소 화를 냈다.

"이제 즐거워요? 전 외롭고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남들은 잘만 하는 사랑과 연애가 왜 저에게만 이렇게 어려운 건가요?"

코스비 아저씨는 급정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남들에게는 쉽다니요. 이 사람 안 되겠구먼. 당신, 남의 군생활이 어떻게 느껴졌습니까?"

"주마등처럼 스쳐가더군요."

"그들도 실제 그랬을까요?"

난 순간 말문이 막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도피시켰다. 코스비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다.

"쉬운 사랑과 연애는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여행을 떠나려 시작한다면 알아둬야 해요. 앞으로는 더 어렵고 더 고민되고 더 시작이 불편할 겁니다."




심사대는 무척 한가했다.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주변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새로운 여행을 위한 심사는 내게만 길게 적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코스비 아저씨는 키보드를 연신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하나씩 물어보죠. 여전히 마음 설레는 사랑을 기다리는 겁니까?"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누구나 그러지 않나요? 처음 본 순간 어떠한 감정이 생기면서 오묘한 관계가 시작되는 그런 것을 말이에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실 거라면 이미 부모님께 들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그런 사랑도 있는 겁니다."

코스비 아저씨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과거 젊었던 시절의 사랑을 떠올려 봅시다. 그때도 분명 그랬을 겁니다. 마음이 설레고 캠퍼스의 낭만은 당신의 것이었죠.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뭐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당신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죠. 생각보다 우리는 과거보다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조금은 어리석고, 조금은 게으르며 여전히 같은 실수를 하기도 한다. 사랑도 크게 다르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설레고 좋아하는 감정으로 시작하는 사랑을 포기하라는 것인가요?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하고 얼마나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왔는지 체크하는게 사랑입니까? 선생님, 생각보다 속물이시군요."

코스비 아저씨는 또다시 킥킥거리며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오기 직전까지 웃은 그는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내 말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라는 겁니다. 번개가 내려친 것처럼 시작한 사랑은 금방 꺼지기 마련입니다. 감정이란 것은 순간적이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안개가 걷힌 듯 사라집니다. 그때의 상대방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많은 대화가 필요하겠고, 잘 들어주는 능력도 있어야겠죠. 사소한 것을 공유하려 애써야 하고, 당연하다는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당신은 그런 준비가 되었나요? 난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겁니다. 2년이나 3년 뒤에도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당신은 준비가 되었는지, 그것을 고민하며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소개팅도 좋고 어느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해도 좋습니다. 단 여유를 가지고 내가 말한 것들을 고민해보세요.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이 대화는 내가 그를 자주 찾게 된 첫 번째 대화이자 추억의 시작이었다. 난 그렇게 그와 사랑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https://youtu.be/jAqyy-OJr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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