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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Aug 25. 2021

제주에서 만난 안개

(2) 길을 잃었던 양반과의 재회

숙소에 도착한 나는 혼잣말로 반가움을 나타냈다.


다시 보니 반갑구나.


동이 전부인 이곳 숙소에 묵었던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인스타를 통해 아침이 맛나 보이고, 소품 하나하나 신경 쓰신 듯한 디테일이 좋아 묵게 되었던 이곳은 생각보다 더욱 아늑했다. 히노끼 향으로 가득한 방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정원이 창밖으로 가득했고, 사장님 또한 왠지 모르게 따스함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나는 당시에 만족한 마음에 체크아웃 때 읽으려 가져갔던 책 한 권을 방안에 두고 나왔다.


사장님이 왠지 좋아하실 것 같아 책 한 권 두고 갑니다. 덕분에 며칠간 편히 쉬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 책은 김진영 님의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었고, 이렇게 다시 찾아온 것에 스스로 반가움이 가득했다.


어머,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죠?


사장님은 그대로 셨다. 단정한 머리, 야무지게 매듭지어진 앞치마는 오랫동안 뵈지 못했던 친지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죠?


우리는 그렇게 식당 겸 작은 공용공간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히, 사장님은 작년 첫 만남 때 내가 길을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제가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Y 씨 조깅하다가 길을 잃어버렸던 것을 자주 말씀드려요. 다시는 그런 분이 나오면 안 되니까요. ㅎㅎ


나는 당시 숙소에 밤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조깅을 나갔다. 자유롭고 싶다는 허새 가득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두고 나왔던 나는 무작정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평소 오래 달리기라면 자신이 있었던 나는 40분 정도를 뛰어 바다에 도착했고, 방파제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여러 공상을 했다.


당시에도 지금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길 기도했던 것 같다.


문제는 숙소로 돌아올 때였다. 평소 길을 잘 찾는다고 자부하던 나는, 기억을 더듬어 숙소를 향해 자신감 있게 나아갔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이 길이 맞나 싶은 혼란함이 밀려들어왔다. 내게 익숙하던 도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비슷한 풍경들만이 밀려 들어왔다. 핸드폰도 없던 터라 나는 막막했다. 길을 묻고 싶어도 보이는 것은 다소 우울해 보이는 소들과, 내가 못 마땅한지 짖어대는 누렁이들 뿐이었다.


Alex katz, 왠지 모르게 숙소 사장님과 닮았다

그렇게 나는 정처 없이 제주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30분간 떠돌았다. 그리고 발견한 편의점에 들어가서 나는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순수함으로 가득한 여학생이었다.


저기, 제가 길을 잃어서 그런데 혹시 ㅇㅇㅇ 숙소가 어느 방향인지 검색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학생은 당황하며 핸드폰을 꺼내 구글맵을 켰다. 나는 숙소보다 서쪽으로 5km 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제야 안도하며 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혹시 이 숙소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해요?


아르바이트생은 몹시 당황하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죄송해요. 저도 이 동네가 처음이라서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뭐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이 동네가 처음이라고? 그럼 나와 같네.. 근데 이 양반 여기서 왜 일하고 있지..


나는 복잡한 상황을 더 이상 추리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었고, 다시 한번 구글맵을 보여달라고 한 뒤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한창 조식을 마무리 중이시던 사장님이 계신 공용공간으로 갔다.


어머, 식사시간을 잊으신 줄 알았어요. 근데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 네 조깅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서요.


사장님은 빵 터지시며 웃으셨다. 그리고 차려주셨던 전복죽 정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진한 맛으로 느껴졌다. 마치 쇼생크 감옥에서 고된 노동 후 먹는 죽 같았다고 할까? 나는 그렇게 사장님께 '30대 후반의 길을 잃었던 남자'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난 사장님과 나는 왠지 모를 반가움에 그 간의 안부를 물으며 재회를 시작했다.


https://youtu.be/s86BeqeRaXE

차분했던 그 날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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