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와 2리터의 그녀 #6

(6) 망원동 블루스

by 최푸근

수많은 갈대들이 흔들린다. 리터의 심리상태만큼이나 갈대와 바람은 불규칙적으로 요동치곤 한다. 우리는 월드컵경기장 근처 하늘공원에 왔다. 과거 쓰레기 매립장을 바꿔놓은 이 곳에서 한강과 하늘 그리고 갈대는 안정된 콜라보를 이룬다. 과거 망원동 주민이었던 나는 축 쳐진 리터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망원동 주변 가이드를 자청했고, 그렇게 우리 둘은 갈대와 함께 거닐고 있었다.




"와 선배. 여기 진짜 좋네요.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았어요? 연륜이 차면 다 알게 되는 건가요?"

리터의 나이 공격에 나는 어른스럽게 대꾸하지 않았다. 오늘은 많은 조언과 위로보다 그냥 함께 걷고 싶은 날이었다. 수년 전 난 뜬금없이 집에 독립을 선언했다. 제대 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던 시절, 나는 진로를 잡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1년간 자취를 하겠다고 했고, 학교와는 정반대 방향인 망원동에서 첫 혼자살이를 시작했다. 한량 체질인 내게 자취란 꽤나 고즈넉한 시간들이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하늘공원까지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다시 3~4 Km 정도 조깅을 했고, 달리기의 마지막 코스인 한강이 보이는 언덕에서 나는 뜬금없이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만큼 잡히지 않는 내 진로에 대해 스스로 답답함을 풀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 난 다른 누군가를 위해 다시 이곳에 왔다.

"내 어린 시절의 비밀장소야."

지난 면접으로 리터는 한동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곤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방전이 된 느낌이었다. 채용을 하는 기업들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한번 성사된 면접에서는 인성 체크만 받다가 돌아왔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리터에게 가을은 우울한 색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선배. 근데 취업은 다 능력따라 되는 거예요? 자꾸 안 되니 제가 바보 같아서 이런 건가 싶어요."

"커피 한잔 하러 갈까?"


[4년 전, 스터디실]

"뭐?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당황한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우송이는 우리 스터디의 첫 여성 멤버였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쌍꺼풀 없고 키가 큰 그녀는 누가 봐도 이미 완성된 커리어 우먼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말도 똑 부러졌다. 그러나 이상하게 취업은 계속 되질 않았다. 1년 정도 실패를 했을 무렵, 그녀는 회식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다.

"오빠, 나 홍콩 가려고요."

중국어를 전공한 그녀는 한국에서의 취업에 진절머리가 난 듯 그렇게 홍콩으로 갔고, 3개월 뒤 난 그녀의 취업소식을 들었다. 번번이 서류 탈락이며, 면접에서 낙방을 거듭했던 그녀는 단 3개월 만에 글로벌 투자회사로 취직이 된 것이다. 좀 더 빨리 취업이 되고, 누군가 늦게 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지금도 누군가 좀 더 운이 좋았고, 누군가 곧 그 운이 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




[현재, 망원동 카페]

철제 골격이 그대로 보이는 이 카페는 예전 나의 자취방 앞에 있는 곳이다. 길을 지나갈 때마다 '이곳의 커피는 맛이 없을 수 없겠구나'라고 느끼곤 했는데, 지금도 이따금씩 이 커피 명당을 오곤 한다. 이곳에서 리터는 신기한 듯 내 일화를 듣고 있다. 따듯한 커피가 그나마 도움이 된 듯 얼굴도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봐봐. 어쩌면 다 팔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토익점수 순으로 가는 게 취업도 아니고, 서로에게 맞는 기업이나 직무가 있을 거야.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어."

"그럼 나도 쭉 지원하고 기다려야겠네요?"

리터의 힘없는 대꾸에 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군을 자청한 나까지 풀이 죽을 수는 없었다.

"그래. 먼저 기죽는 사람이 기회를 놓치는 거야. 그때 그 눈빛 있잖아. 내가 '나나 박보검이나 한 끝 차이' 라고 말했을 때, 그때 그 눈빛으로 공부해. 그럼 모건 스탠리는 우습고 U.N.도 갈 거야."

"선배. 어디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진짜 돌 맞아요."

냉정한 리터의 평가는 언제나 날 현실로 회귀시킨다.

"근데 선배, 회사생활은 어땠어요? 힘들게 들어간 만큼 만족했어요?"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나의 경험이 모든 기업의 현실은 아니겠지만, 나쁜 기억이 주로 떠오르는 지금에 난 당황했다.


[3년 전, 회사 사무실]

"자, 다들 주말에 언제 나올래?"

금요일 오후마다 나오는 이 질문이 나는 미칠 듯이 싫었다. 경영지원팀으로서 팀장님을 바로 직속으로 모시는 우리는 항상 주말출근이 많았다. 팀장님은 '나는 업무인이다'라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처럼 주말 모두 출근을 했다. 가끔 그의 흔들림 없는 야망에 남자로서 감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 김대리. 주말인데 나왔어? 일 좀 하네 요즘."

"박과장, 고생 많구먼. 일요일인데 어서 들어가야지. 아 그 보고서 다 되었나? 가기 전까지만 줘."

"서부장, 내가 말한 것 말이야. 월요일 오전에 좀 보자고. 수고하게 다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는 2년을 보냈다. 우리 팀은 팀장님의 있을지 모를 지시를 위해 2개 조로 나누어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근무를 했다. 꼭 필요한 업무는 없었지만 그의 지시를 위해 우리는 주말을 반토막 내며 대기를 했던 것이다.

회사를 다닌다는 느낌은 정말 필요한 업무는 나중이고, 윗분들의 비전 없는 지시에 목을 매야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지사를 가진 우리 회사에는 각 지사를 위해 지원이 필요할 때가 많았지만 , 실제로는 상무님의 근거 없는 지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비효율을 집대성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적응을 한다. 누구나 학창 시절 공부 좀 했다는 그들조차 그러한 불합리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6개월 된 딸이 자신을 보면 어색해한다는 과장님과 아내의 수술이 있던 날에 야근을 하던 차장님까지, 그들은 이미 적응이 된 듯 살아가고 있었다. 나에겐 그 적응이 아직 힘겨웠다.




[현재, 망원동]

"좋은 부분도 있고 나쁜 부분도 있어. 지금은 자세히 알 필요도 없는 거야."

나는 회사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은 최대한 리터에게 자제했다. 우리 회사보다는 좋은 기업문화가 있는 곳으로 취업할 거라는 희망으로 그녀와 지내고 싶었다.

"선배는 맨날 음악 듣던데 누구 음악을 그리 듣는 거예요?"

"요즘은 이소라가 좋은 계절이야."

난 덕후의 감성으로 대답했다. 어린 시절 내게 이소라는 그저 '우울한 누님'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이소라라는 가수에게 순수한 진심과 짙은 호소력을 느끼곤 했다. 언젠가 옛 남자 친구가 생각나 더 이상 노래를 못 부르겠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난 이 가수를 좋아하고 싶다고 느꼈다. 이렇게 매정하게 흘러만가는 세월도 가끔은 좋을 때가 있다. 리터는 오래된 지인을 만난 듯 맞장구쳤다.

"오오오. 저도 이소라 좋아해요. 사람들은 다 불완전한 존재인 것 같은데 그녀 역시 그렇기 때문에 노래를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노래로 불완전함을 위로받죠."

난 처음으로 리터에게 취업과는 다른 것에 대한 견해를 듣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고민 많은 시절에 리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린 좀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 사장님이 젊은 누님이셨는데 매일 이소라 노래를 가게에 틀어 놓으셨지. 남자 직원들은 이런 우울한 술집에 누가 맥주를 먹으러 오냐며 놀리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노래 때문에 단골도 많았던 것 같아. 생각해봐.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틀면 사람들이 신나 할까? 아닐걸."

리터는 고대 위인을 듣는 듯 반문했다.

"자자가 누구에요?"

".... 배 안 고프니? 여기 망원동에는 엄청 유명한 곳이 있어. 럭셔리의 끝이지. 갑시다."


해가 지고 날도 추워지면서 우리는 움츠리며 걷게 되었다. 서교동과 망원동을 지나가면 수많은 추억들이 스쳐간다. 소꼬리가 국산임을 강조하시며 벽에 택배영수증을 덕지덕지 붙이셨던 고모가 하던 곰탕집, 원숭이를 닮은 주인이 운영하시던 기타 가게 그리고 초콜릿을 만드시던 여자분과 커피를 만들던 남자분이 함께 운영하시던 카페 등 지금은 사라진 그곳의 장소에서 예전의 나를 발견한다.

"자, 소개합니다. 망원동의 자랑 국숫집!"

"오오. 국수"

"뭐야. 별로 안 놀라잖아. 난 스테이크, 랍스터 그런 것을 기대할 줄 알았는데.."

리터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선배, 그런 거 안 먹게 생겼어요."

"아냐. 나도 가끔 먹어.."

리터는 듣지 않고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개업 당시 이곳은 부부가 운영을 하셨다. 진한 멸치육수에 매콤한 장을 더해 먹으면 숙취는 증발하듯 사라지곤 했다. 지금은 규모가 제법 커져서 종업원도 많고 가게도 커졌다. 하지만 맛은 그 느낌 그대로다.

"와, 진짜 맛있네요."

난 개선장군처럼 대답했다.

"봐봐. 추운 날에 꼭 생각나. 이 집 국수."

예전 사장님은 '육수는 정직해서 공들인 만큼 맛이 나온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몇 번은 귀찮음에, 때로는 실수로 맛없는 육수로 국수를 말면 금세 손님들이 느끼는 것에 항상 조심스럽다며 일을 어려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육수처럼 리터도 공을 들이다 보면 누군가 알아줄 거라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 번쯤 후루룩 국수 넘어가듯, 우리 인생도 그러길 바랬다.

"선배, 소주 한잔 할래요? 똑."

입안에서 혀로 똑소리를 내며 검지를 튕기는 리터를 보며 나는 웃음 지었다. 우리의 소소한 망원동 여행은 그렇게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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