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시대를 파고드는 플랜엠, 김기룡 대표
기업의 트렌드가 ESG 경영이 된 지 오래다. 비재무적인 요소인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가치를 추구해야 고객에게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투자 가치 또한 상승한다. 최근에는 개인이 일상에서 ESG를 앞장서 실천하고 있어 ESG는 기업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기업의 공익재단 설립, 사회공헌활동, 사회적가치 추구 프로젝트 등 ESG 경영을 지휘하는 회사가 플랜엠이다. 플랜엠과 자회사 한국사회가치평가를 창업한 김기룡 대표를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기룡 대표의 명함에는 그의 미션이 적혀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조직이 그들만의 미션을 갖는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 미션을 만들어가는 저만의 미션을 함께 꿈꾸고 싶습니다.”
현시대의 기업은 공공 인프라 건설, 기술이전, 환경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등 삶의 질 향상에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즉, 사회적가치 창출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필요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대표의 미션은 사회, 문화, 환경 등 모든 영역에서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플랜엠은 김 대표의 이러한 미션을 수행하는 컨설팅 전문기업으로 기업의 사회적가치 활동을 돕는다. 단순히 컨설팅만 하는 건 아니다.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 영역으로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사회공헌활동을 교육하고 평가하는 사업도 함께한다. 세상의 많은 조직이 더 많은 소셜 임팩트를 효과적으로 창출하게 하는 것이 플랜엠의 모토다.
사회적가치와 윤리 신념을 도입한 사회책임투자가 세계 자본시장에 보편화돼 있다. 한국의 기업도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가치 창출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김 대표는 기업의 사회공헌 개념이 약했던 2010년에 사회공헌사업에 관심을 두고 플랜엠을 창업했다. 주로 대기업을 이해관계자로 두고 있고, 사회공헌을 시작하는 기업, 10년 이상 사회공헌 성과를 내는 기업 등 여러 기업에 전략 컨설팅, 공헌사업 기획, CSR 프로그램 평가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의 의뢰로 문화재 보호 활동에 기업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정부와 기업 간의 국제교류 협력 사업 등 플랜엠이 추진하는 사업은 다양하다.
김 대표는 창업의 꿈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회 가치를 높이고 혁신하는 일에 의미를 두고 연구 의뢰, 컨설팅 업무 경험을 쌓으면서 임팩트 업계 유력한 선배 권유로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졸업 후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정부 예산을 받아 업무를 했는데, 기업의 기부금으로 사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기업 지원으로 운영한 프로그램 결과가 윤택한 것을 경험했죠.”
“어려서부터 돈을 버는 일보다 의미 있게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며 재미도 있었죠. 사회복지사는 기관에서 여러 일을 합니다. 저는 자원개발 일을 도맡았는데 재미와 흥미가 붙었어요. 장기적으로 컨설팅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일의 결과로 얻는 성취감이 컸습니다. 그 중독성 있는 성취감으로 돈을 잘 쓰는 일에 집중했죠.”
김기룡 대표는 현재 직원 30명을 책임지는 주식회사 대표이기 때문에 돈 버는 일도 중요해졌다. 그러나 일의 과정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 추구하는 본질과 잘 맞는다고 한다.
“창업과 경영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학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저는 성장하면서 얻은 경험이 컨설팅에 도움이 됐어요. 여러 사회 문제에 주목하다 보니 예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 보이면서 다양한 의미를 조합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컨설팅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융합’입니다. 저는 융합적인 방법론을 삶의 경험으로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대표는 삶의 경험을 토대로 정보를 융합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제안 능력으로 SK, 포스코, 두산, 넷마블 등 굵직한 기업의 공익재단 설립, 사회서비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유능한 컨설턴트의 자질로 다양한 정보를 융합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사회적경제 섹터에서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많은 창업가가 활동한다. 장학사업, 복지사업, 문화사업 등이 있는데 ESG 경영이 화두이기에 컨설턴트는 환경을 알아야 하며 사회 문제의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
“제가 기업 대표이며 전문가로서 기획한다는 생각 자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나는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모으고 단기간 학습하여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유능한 컨설턴트의 역할입니다. 리서치하는 과정은 누구나 잘할 수 있지만,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많은 정보를 어떻게 엮을 것인가는 컨설턴트의 융합 능력, 창의성에서 발현됩니다.”
과거 컨설팅 회사가 돈을 많이 번 이유는 클라이언트가 정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과거의 방식으로 컨설팅할 수는 없다. 많은 정보가 오픈돼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서치 능력은 기본이다. 김 대표는 다양한 정보를 분석, 통섭해 클라이언트가 놓친 부분을 파고들어 “오래도록 조사했는데 왜 그 부분은 못 봤을까요?” 하는 평가를 들을 때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부터 정치 모듈을 함께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기업이 즉각적 이해관계에서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플랜엠과 함께 한국사회가치평가라는 자회사도 운영 중이다. 플랜엠은 공익을 주제로 컨설팅하고, 한국사회가치평가는 SK 재단인 사회적가치연구원과 연동해 기업의 사회성과를 평가한다. 한국사회가치평가의 데이터에 따라 해당 기업의 사회성과 지표가 만들어지고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미국은 자산가들이 패밀리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활동을 한다. 그곳에 플랜엠과 같은 회사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 외 개인 자본가가 돈을 사회에 값지게 쓰도록 연결하는 일을 플랜엠이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반영되지 않는 환경 논리를 제기하는 사회복지사가 없으면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까? 한편으론 사회적경제의 주체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기업의 존재 가치가 절대 낮지 않음에도 현재의 시장 구조에서 높은 가치에 걸맞은 보상을 얻기가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이는 시장 외에 또 다른 시장,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 더 큰 보상을 받는 시장이 존재해야 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사회 가치가 거래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 대표의 주요 관심사는 기업문화에 있다. 직접적 클라이언트는 대기업이 많지만 협력업체로 비영리재단이 많다. 요즘은 강의자료 끝에 “건강한 조직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넣는다. 사회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하므로 직원들이 좀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을 행복하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조직에서 그 구성원이 불행하다면 자가당착이다. 김 대표는 행복지수, 저출산 문제 등을 개선하겠다는 기업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업무 강도는 고려하지 않는 것을 적잖이 봐왔다.
“ESG의 급성장으로 비영리 조직에 많은 기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위기도 발생합니다. ESG 안에는 근로자의 노동인권 주제를 많이 강조하는데 노동인권을 지원하는 곳에서 노동환경이 최악이고 권위적인 모습인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기업문화가 바뀌길 바라며 플랜엠의 기업문화부터 예민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김 대표 집안에는 연대 동문이 많았다. 그는 청소년기에 교회 성가대 대회 장소로 연대에 처음 가봤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미션스쿨이란 부분도 그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지금 연세대는 장애인이 학교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는 캠퍼스로 이름나 있지만 그가 학부생일 때는 경사로 없는 건물이 많았다. 그는 장애인 관련 동아리 활동으로 휠체어 장애인 학우가 도움받지 않고 강의실에 갈 수 있도록 램프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 활동을 했다. 축제 기간에 서명을 받았고 냉소적인 시선도 없지 않았지만, 점차 학교에서 장애인 수학 시설이 확충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누군가의 적은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그가 사회 변혁의 길을 가는 데 중요한 경험이 됐다. 사회복지학과의 40명 동기와 돈독하게 지냈고 과 내 학회 활동에서 복지사회를 연구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당시 김 대표를 가르친 많은 선배가 관련 분야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다.
“제가 가장 애착하는 곳은 과방이었어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죠. 으리으리한 연희관보다 아기자기한 성암관을 좋아했고 청송대 산책을 즐겼습니다. 연세대는 제게 좋은 사람들이란 자원을 베풀었습니다. 창업 초기에 격려하고 도와주신 분도 동문 선배였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이끌어주신 분도 모두 학과 직속 선배였어요. 유력한 조직에서 선배들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시고 현장의 동문 리더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파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첫 번째 직장을 무겁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 출발의 시작점을 네임드에서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먼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다양한 길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내가 똑똑해야 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이 일하느냐가 중요하죠. 첫 번째 커리어를 한정적인 곳에서 시작해 경쟁하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선택해 보세요.”
_글 황교진 / 연세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