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없이 전 세계에서 간편 결제, GLN 김경호 대표
GLN은 하나은행에서 파생된 글로벌 결제 중개회사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글로벌 결제 중개사는 비자와 마스터카드 같은 회사로 해외에서 자신의 신용카드를 쓸 수 있도록 중개한다. 세계는 점차 플라스틱 카드가 없어지고 모바일결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이 국내에 사용되고 있지만, 해외에서도 카드나 환전의 번거로움 없이 모바일결제를 쉽게 사용할 수 없을까?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글로벌 선두 주자가 GLN이다.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 GLN의 김경호 대표는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의 탑티어 핀테크 기업”을 비전으로 두고 있다.
모발일결제는 기존 플라스틱 카드보다 편할뿐더러 안전하다. 자신의 큐알코드로 전 세계에서 편하게 쓸 수 있으려면 신뢰도 높은 금융사가 나서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여러 해외 금융사와 파트너십을 맺어야 하고 결제 시스템이 가능하도록 판을 짜야 한다. 결제 파트너를 일일이 만나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효율성을 확보하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누군가는 이 일을 선제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앞장선 곳이 GLN이다. 마치 독일의 스타얼라이언스가 전 세계 메이저 항공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여행객에게 쏠쏠한 마일리지 혜택을 주는 것처럼 GLN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금융회사를 고객으로 환전이나 플라스틱 카드 없이 현장 결제, 출금, 송금 서비스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와 글로벌 모두 이 일을 하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우리가 개척자죠. 글로벌에 알리페이플러스가 있지만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경쟁자입니다. KEB외환은행의 FX(Foreign-Exchange Trading) 역량을 흡수한 하나은행이 신뢰성을 무기로 이 일을 선두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GLN은 하나은행에서 인큐베이티팅하다 스핀오프해 글로벌 모바일결제 시스템 1세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을 비롯해 태국, 일본, 대만, 괌 등 세계 10개 국가에서 환전 없는 국내 계좌 직접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서비스는 QR결제로 해외 가맹점에서 QR코드로 결제할 수 있게 한다. 특히 QR결제가 보편화된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선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해외여행 덕후들 사이에서 환전 없이 결제 수수료를 줄이는 방법으로 GLN 앱에 대한 찬사가 퍼지고 있다.
2016년 시작한 GLN은 2021년 7월, 하나은행 자회사로 독립했고, 카카오페이, KB 디지털 플랫폼 펀드 등에서 투자금을 받으며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 국내외 여러 금융사와 맺은 제휴로 이용자도 빠르게 늘어났다. GLN은 올해 2월, 토스와 제휴를 맺고 토스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거래 금액이 2023년 8월 기준 200억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인력 역시 분사 직후 30여 명으로 시작해 70여 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의 디지털 금융 본부장을 거친 김경호 대표는 지난 3월 GLN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테헤란로의 사무실은 신선한 스타트업 분위기로 대표와 직원들 모두 캐주얼한 차림에 자유로운 기운이 만연하다. 인터뷰에서는 대표 호칭을 쓰지만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출퇴근도 탄력적이다. 김 대표의 이름은 ‘케네스(Kenneth)’로 직원들은 그를 ‘켄’이라 부른다. 대표 책상도 따로 임원 방을 두지 않고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거리감 없이 일한다.
세계 금융시장을 상대로 글로벌 결제 그룹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는 하나은행에서만 30년을 근무했다. GLN의 초기에는 하나은행 본사 단독 주주였으나 현재는 KB국민은행, 대구은행, 카카오페이, 토스 등과 함께 일본과 대만 은행도 GLN에 투자하는 파트너사로 협력하고 있다. 급성장하는 회사답게 김 대표의 인터뷰 곁 직원들 또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활기와 생동감이 넘쳐 있다.
GLN의 아이템을 생각한 회사가 있을지라도 이 일을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은행이 먼저 착안해서 선제적으로 착수한 데는 특유의 공격적 행보도 있지만, 그 중심에 김 대표와 같은 도전하는 창의적 리더가 있기 때문이다.
“GLN 시스템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모바일 금융을 사용하다가 해외에서 결제하고 싶을 때 여러 나라를 방문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5%의 해외 결제를 위해 95%의 국내 결제에 확장성을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죠. 몹시 소모적입니다. 누군가는 이 소모적인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 전 세계 금융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일에 과감하게 투신해야 했죠.”
국민 전체가 신용카드를 쓰고 있고, 여러 카드사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해외에서 결제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자나 마스터와 제휴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 방식으로는 해외에서는 결제되지 않는 곳이 있으니 불편함이 따른다. 김 대표는 디지털 금융의 부장 시절부터 모바일결제를 글로벌로 확장하는 아이디어에 수긍했다. 실무 부장으로 이 일에 애정을 가지고 현실화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실무의 규모는 예상보다 컸다. GLN처럼 작고 빨리 움직이는 회사만이 가능했다. 이 비즈니스의 본질은 신뢰할 만한 중개사가 연결해 주는 것이므로 신용성이 중요했다. 듣보잡에게 함부로 센터 자리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국내에서 가장 큰 FX 거래를 해온 KEB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네트워크 자산 보유 금융사로 우뚝 선 곳이 하나은행이다. 스타트업 체질이면서 하나은행이라는 규모의 신뢰성이 보장된 GLN이 글로벌 결제 중개사로 개척해 갈 수 있었다. 세계 모든 은행을 연결해 어느 곳에서든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접근은 하나은행이 2016년 말에 일찍 시도했다. 당시로는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김 대표는 이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뛰어들었다.
“GLN은 고객의 지급 결제 경험을 해외에서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환전에 비해 편리하고 수수료도 적어서 경제적입니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 편안하고 카드 불법 복제 범죄로부터도 안전하죠. 게다가 모바일결제는 지출 현황을 즉시 확인할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쉽게 결제를 닫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플라스틱 신용카드 강국이다. 환경 이슈와 함께 플라스틱 카드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플라스틱이 모바일로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중국과 동남아는 신용카드 구간을 거치지 않고 현금에서 모바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실물 신용카드 결제를 많이 쓰고 있지만 전자 결제 시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는 은행일수록 철저히 보안, 관리한다. 글로벌 금융의 새로운 판을 짜고 있는 GLN의 장래는 밝다.
1994년 연대를 졸업한 김 대표의 첫 직장이 하나은행이다. 한 직장에 오래 있었지만 김 대표는 금융계 임원의 전형적인 모습과 거리가 있다. 자신이 선망받는 부서에 있어도 새로운 일에 자원하며 다양한 업무에 도전했다.
그가 재학 당시 상경대 1층에 매킨토시룸이 있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었고 레이저프린터도 쓸 수 있었다. 매킨토시 프로그램에 엑셀이 있었지만, 이 낯선 신문물에 관심을 가진 이가 적었다. 그는 호기심에 엑셀을 공부했고, 전산과인 룸메이트와 교류하며 컴퓨터에 관심이 커져 관련 수업도 들었다. 그렇게 학창 생활한 뒤 은행에 입사했더니 직원 중에 그만큼 컴퓨터에 친숙한 이가 없었다. 명동 지점에 PC가 있었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키보드를 두드리니 동료들이 신기하게 볼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은행에서 컴퓨터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인터넷 뱅킹이 만들어져 담당자를 모집할 때 그는 인재들이 모인 영업1부에 있었지만, 자리를 떨치고 지원했다. 2000년 8월 전자금융 업무를 시작한 것이 지금 GLN 대표가 되는 시발점이었다.
“호기심이 많았어요. 새로운 일을 알아보는 데 흥미가 있었고, 일반 은행원과 달리 인터넷, 모바일 일에 스스럼없이 자원했어요. 은행은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일이 많습니다. 인터넷도 잘 알아야 하고, 모바일 업무를 위해 스마트폰을 미리 써보고 분석해야 하죠. 가상화폐 산업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며 연구를 쉬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떴을 때 김 대표는 그쪽의 전문가를 만나 연구하는 데 열정을 품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접근해 보고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다. 결코 익숙한 루틴에 맞춰 은행 업무를 해오지 않았다. 새로운 일의 관계자와 만나 대화하는 것을 즐겼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기 전에 전문가와 만나 공부했고, 금융 혁신 관련 주제가 나오면 참고 문헌을 펴 들었다.
“대표를 맡은 지 8개월이 흘렀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 책임하에 일을 진행하는 것이 나와 잘 맞고 재밌습니다. 걱정과 책임은 크지만, 직원들의 동의를 끌어내며 새로운 일을 만들어 가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지난 9월 송금 서비스를 오픈한 것을 가장 기쁘게 여긴다. 지급 결제만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ATM기에서 돈을 찾을 수 있고, 해외송금 서비스까지 가능해졌다.
“GLN이 유니콘기업으로 나스닥에 상장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요원한 길이지만 충분히 이뤄낼 거라는 믿음이 있죠. 우리를 믿고 투자하는 파트너사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믿음이 현실이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김 대표는 인형공장 사장이 꿈이었다. 집에서는 법대에 가라고 했는데 공장 사장이 되고 싶은 그는 경영학과를 택했다. 자동차 제조에 관심을 둔 그는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며 금융업에 뿌리를 내렸다.
“입학 후 아카라카 오리엔테이션이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꿈에도 그리던 자유로움이 가득했죠. 특히 어학당에서 공부하던 일본인 형과 만나 기타 치고 노래하며 낭만적으로 교제한 시간도 잊지 못합니다. 상경대 매킨토시룸은 제 인생을 윤택하게 해 준 곳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경험을 누리는 데는 연대만큼 좋은 학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존경하는 연세인으로 최초의 서양식 천문학과를 개설한 이원철 박사를 꼽았다. 일제강점기 미국에 유학해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소행성을 발견해 우리 민족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준 학자다. 미국 한복판에서 서양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위대한 과학자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천문학 불모지인 고국 연세대에 돌아와 천문대 망원경을 설치해 지도했다. 교육을 통해 학문적인 열정을 쏟았고 만년에는 집과 토지 등 자신의 전 재산을 YMCA에 기부하여 마지막까지 사회봉사를 몸소 실천했다.
소행성에 이름을 붙인 이원철 박사처럼 한국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효시에 김경호와 GLN 이름이 빛나기를 기대한다.
_글 황교진 / 연세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