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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Dec 28. 2023

내 약함과 아픔은 선물이자 삶의 기쁨

상처를 축복으로 여긴 ‘미시즈 헤븐’ 이효진 소장의 삶과 믿음

인생의 깊고 처절한 고통을 겪은 사람 중에 낮은 자존감과 상처로 얼룩져 자신의 아픔에 매몰돼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평생 남아 없어지지 않는 흉터를 극복하고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살며 존재 자체가 ‘희망 전도사’인 이가 있다.      


예인건축연구소 이효진 소장은 생후 18개월에 연탄아궁이에서 펄펄 끓던 주전자를 엎는 사고로 얼굴과 손에 중화상을 입었다. 안면 화상 경험자인 여성이 외모 지상주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이다. 숱한 고난의 파도를 넘은 이 소장은 숙명여대와 중앙대 건설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한국인테리어디자인대전 대상을 받은 디자이너가 됐다. 그녀의 인생을 디자인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쁜 가정을 이루어 연년생 남매를 양육하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직원 70명을 둔 예인건축연구소 대표다. 《네 약함을 자랑하라》(2009), 《네 약함이 축복이라》(2015)에 이어 세 번째 책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엄마》(2017)를 쓴 후 육아와 일에 전념하느라 대중들 앞에 서지 않던 이효진 소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림 받는 아이, 땅만 보며 걷던 고난의 성장기

'미스 해븐' 새 이름을 얻은 후 밝은 표정의 이효진 소장

지금은 얼굴 3도 화상의 상처를 극복하고 인테리어 회사 CEO로, 행복한 가정의 아내와 두 아이 엄마로 즐겁게 살아가지만, 이 소장이 겪은 생후 18개월 사고 이후의 삶은 처절했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미스 헤븐’의 새 이름을 얻고 자신의 상처와 고난을 믿음 안에서 재해석하기까지, 이 소장의 성장기부터 들어본다.     


“세 살 때였어요. 엄마가 저를 주무시던 아빠 옆에 재워놓고, 빨래하던 중이었는데 제가 혼자 깨어 방 밖으로 기어나가다가 아궁이에서 끓고 있던 주전자를 엎었어요. 강원도 시골집의 구조가 문제였죠. 얼굴과 왼손에 3도 화상을 입었어요.”   

  

서울의 화상 전문병원 응급실로 바로 갔다면 어땠을까?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는 일주일을 못 버티고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 통보했다. 엄마는 자책감에 가슴이 무너졌고, 아빠도 아기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지하지 못한 순간을 한스러워했다. 아기 효진은 골든타임에 제대로 화상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일주일간 방치되다시피 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파충류다. 괴물이다. 귀신 같다’고 놀리던 아이들 때문에 늘 땅만 보고 다녔어요. 학교 선생님조차도 아이들의 놀림에서 저를 보호해 주지 않았죠. 엄마는 제가 스무 살 되면 수술받고 나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엄마의 말을 믿고 스무 살 이후 나아진 얼굴의 저를 만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견뎠어요. 저 때문에 애쓰고 아파하시는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효진이 중화상을 겪기 전 엄마는 무속 신앙을 열심히 믿었다고 한다. 그러다 딸의 사고로 크게 자책하며 가난한 심령이 되면서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효진의 사고로 엄마가 교회에 나간 뒤 순차적으로 온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화상은 하나님이 가족 구원으로 불러주신 초대장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대신 다쳤어야 했다, 엄마 피부를 다 주고 싶다”며 자책하던 엄마는 기도의 힘으로 딸을 키웠다. 스무 살에 수술하면 회복된다는 것은 엄마의 희망이자, 자존감 낮은 딸에게 견딜 힘을 주려는 엄마의 심정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무료로 화상 수술을 해준다는 의료진을 만나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수술 결과가 처참했어요. 전보다 더 심한 모습의 얼굴이 되고 말았죠.”     


그 수술은 예민한 사춘기 효진의 희망을 꺾어놓았다. 계속 수술을 받아야 조금씩 나아지는데 의료보험 적용 전 미용 카테고리의 화상 수술은 큰 비용이 드는 데다 수술 결과에 대한 불신도 깊어져 병원을 멀리했다. 수술 실패 후 좌절한 엄마를 위해 효진은 공부를 택했다.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해부터 바로 전교 우등의 성적이 나왔고 엄마는 무척 대견스러워했다. 명문고에 진학했고 자신처럼 고통받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를 꿈꾸었다. 그런데 대학입시가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면서 적응하는 데 실패해 실내디자인 전공을 선택했다. 열심히 돈 벌어서 수술을 시켜주려는 엄마가 가게 일을 하시면 효진은 엄마 곁에서 가게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데 관심이 많았다.     


“의대 진학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제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도록 대입 시험제도를 바꿔주신 거로 생각해요. 미술학원 근처도 가보지 못한 제가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예인’건축연구소 소장이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밝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해석하지만, 효진은 숙명여대 입학 후 안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고는 자신의 청춘을 부정하며 절망했다. 성장기 내내 벌레 취급에 버림받은 심정으로, 가치 없는 존재라는 내면의 소리를 견뎌 온 대학생 효진은 외모 지상주의가 심한 여대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폭식증과 드라마 중독에 빠져 살다가, 엄마 때문에 억지로 믿던 하나님을 향한 배신감에 수면제 100알을 삼키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다행히 동생이 발견하고 위세척을 받아 죽음에서 깨어났다.      


이런 딸의 모습을 본 엄마는 “너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하셨다. 한 번 죽음을 선택해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곤 하지만, 엄마의 그 말에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절망의 유혹은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서 다시 덮쳐왔다.          


엄마의 유언으로 예수를 믿다

숙명여대 졸업식에서 부모님과

실내건축을 공부하며 힘겹게 살던 중 동생으로부터 엄마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이유인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고로 떠나셨다니…. 눈물을 참으며 살아온 그녀는 대성통곡하며 강원도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딸에게 삶의 전부를 바치다시피 하며 살아온 엄마의 장례를 치르자 이제 자신도 바로 엄마를 따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엄마가 다닌 교회의 사모님이 다가와 말씀해 주셨다.      

“효진아, 엄마는 네가 예수 믿고 살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어.” 사모님의 말씀은 곧 엄마의 유언이었다. 다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다. “화상은 저와 예수님을 막았는데 엄마는 저와 예수님을 연결하셨어요.”    

 

효진은 엄마의 유언을 지키려고 교회를 찾아갔다. 2002년 당시 효진이 절박한 심정으로 찾은 교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오빠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다며 추천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음을 돌이켜 나간 그 예배의 목사님 설교에서 “오늘 예배에 오신 분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분이 계십니까?” 물으셨다. 갑자기 성전 강단이 어두워지고 효진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듯했다. 하나님이 효진에게 질문하시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나님 저예요.’ 이어서 목사님은 “그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밀알이고 그 밀알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라고 선포했다.  

    

그 말씀은 효진에게 엄마의 죽음을 해석해 주었다. 엄마의 죽음은 효진의 가족을 믿음으로 초청하려는 순교였다. 아빠는 엄마를 잃으시고 상실감에 힘들어하셨다. 두 분은 화목한 부부였다. 아빠는 엄마의 소천 후 복음을 받아들였다. 남동생 부부도 아빠를 모시고 살면서 모두 예수를 믿었다. 언니, 형부, 조카도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조 목사님이 꿈과 희망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셨는데 제 인생에 가장 필요한 말씀이었어요.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제 삶의 때에 맞는 말씀을 들려주셨죠. 그때 꿈에 대한 설교를 듣고는 창업의 꿈을 갖고 예인건축연구소를 열었어요.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엄마의 죽음을 깨달은 뒤 저는 예배를 통해 살아났죠. 그 주일부터 눈물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없었어요.”      

     


사랑의 음성, “너는 하나님 나라의 미스 헤븐”

예인건축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는 모습

엄마의 유언으로 드린 예배의 비포와 에프터가 완전히 달라진 효진은,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말씀치유집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성령님을 만났다.


“너는 진정한 하늘 미인 ‘미스 헤븐Miss heaven’이야, 라는 성령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었어요. 세상의 눈으로는 예쁜 얼굴로 비치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예쁜 ‘하늘 미인’이라는 말씀이 심령에 울려왔죠. 제 깊은 내면의 상처를 딛고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향할 힘을 부여받았죠.”      


효진은 화상으로 얼굴을 잃었지만, 대신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얻었다. 그때부터 땅끝까지 전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과 아이디어로 디자인하는 ‘최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여인’으로 살기로!      


예배로 살아난 효진에게 하나님은 계속 영감을 쏟아부으셨다. 종이에 디자인 스케치를 하면 영감이 떠올랐다. 영감 없이 디자인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 효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효진은 디자인을 하면서 항상 기도한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도록, 제 디자인을 밝은 천국 가정으로 써 주세요.”      


대기업 건설사 담당자 앞에서 경쟁 프리젠테이션(피티)을 할 때도 이 기도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소장의 피티는 클라이언트인 대기업 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생기업 대표인 이 소장은 경험 많은 회사들과 경쟁 피티에 들러리로 들어갔다가 당당히 입찰을 따냈다. 성령 체험 이후 사업에서도 하나님은 기름을 부으셨다. 내성적이던 이 소장에게 하나님은 어린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함께하신 용감한 모습으로 발표하게 하셨다. 대기업 임원들 앞에서 한 이 소장의 피티는 하나님과의 합작품이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피했던 소심한 아이로 자란 이 소장은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미인이자 피티의 여왕으로 성장했다.    

      


배우자 기도를 시작하고 만난 ‘용호’ 씨

2008년 4월 26일이었다. 퇴근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져 집 앞 교회에 들러 한 시간 가까이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은 배우자 모습을 보여주셨다. “커다란 뱃머리에 서서 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형제 모습을 봤어요. 하나님이 제게 결혼을 허락하시는구나, 깨달았죠. 결혼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한 저에게 하나님은 배우자 기도를 명하셨어요.”     


이 소장은 주변에 결혼 기도를 부탁했다. 바라는 것의 실상을 믿도록 하신 하나님이고 기도하라고 명하셨기에 당당하게 나누었다. 아기를 잉태하면 태명을 짓듯이 그녀는 미래의 배우자에게 ‘용호’라는 애칭을 붙였다. 하나님이 이 소장에게 주신 배우자 이미지가 용감한 호랑이 같은 믿음의 용사였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용호 씨에게 편지도 썼고, 간증 방송에서 영상 편지도 전했다.      


그러자 전 세계 온 사방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짜 용호 씨인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대전에 살던 남편은 교회의 권장 도서인 이 소장의 책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져 만나자는 연락을 전해왔다. 남편은 자신이 감동받은 책 저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서 메일을 보내왔지만, 하나님은 여섯 살 연하의 남편이 그 용호 씨임을 바로 알아차리게 해주셨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받던 이 소장은 김필겸 형제와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했고 시댁 부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룬 이효진 소장


믿음으로 양육하고 있는 연년생 남매

딸 예린이, 아들 주원이는 지금 초등학교 6학년과 5학년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아이를 양육한 이야기를 세 번째 책으로 썼다. 일하면서도 매일 아이들과 큐티를 하며 책을 읽었고 밤에는 꼭 자기 손으로 기도하며 아이들을 재웠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다 목이 뒤로 젖혀진 채로 잠드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마음 씀씀이가 깊은 예린이가 엄마에게 목베개를 선물할 정도였다. 15,000권이나 되는 책을 읽힌 이 소장의 육아는 ‘큐티 육아, ‘책 육아’였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에게 밥은 꼭 먹이듯이 이 소장은 말씀과 독서를 밥 먹이듯이 먹이며 키웠다.      


첫째 딸이 5학년이 되자 엄마를 밀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의 사춘기 초입 아이처럼 자기 방문을 닫고 친구만 좋아했다. 서운했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딸의 머리를   손으로 말리면서 계속 스킨십하며 최대한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어요. 딸은  이전의 천사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동생을  이해해 주는 누나가 되어 수학 숙제도 돌봐주는 착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고는 감동이 됐어요. 하나님이 도우실 거라 믿고 기다린 결과죠.”  


회사가 커지고 업무가 많아져도  소장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은 절대 놓지 않았다.  소장은 어렸을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아 남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주원이가 다섯  때였어요. 여느 때와 같이 기도하며 재우려는  아이가 ‘엄마, 엄마는 정말 잘생겼어라며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하는 거예요.  내면의 상처가 터치돼  아이를 안고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주원이가 또 고백했다. “엄마, 지구는 정말 아름다워, 왜 지구가 아름다운지 알아? 엄마가 있기 때문이야.” 아들에게 엄마 때문에 지구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이 소장은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고통스러웠던 과거로부터 말끔히 치유되었다. 하나님은 아이를 통해 과거의 아픔까지 위로하셨다.


세상의 시선은 가혹해도 이 소장은 아무렇지 않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나니 상처를 안 받는다. 안면 화상을 안고 살아가는 자신이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의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한 존재다. 우울함, 무기력감, 절망감, 의욕 상실은 현재의 이 소장에게 없다. 그런 인간적 슬픔은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예배의 감동을 통해, 가정을 통해, 공동체의 온전한 사랑을 통해 계속 완전한 하나님 사랑, 예수 동행으로 치유받고 있기 때문이다.


_글 황교진 / 신앙계 2024년 1월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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