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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Nov 11. 2020

상처가 되는 거리



우리는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줄 마음은 없었지만 주게 되고,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두 손 안에 들려있다. 손에 든 것을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지만 거미줄처럼 달라붙어 어쩔 수 없이 온 몸에 문질러 닦는다. 나쁜 말은, 무신경한 행동은 그렇게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누구로부터 가장 많이 상처받을까? 길을 걷다 어깨를 부딪힌 사람? 지하철에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사람? 불친절한 커피숍 직원? 옆 자리 동료? 나만 갈구는 선배? 때때로 이들에게 상처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가까운 사람에게 많은 상처를 받는다. 가족, 절친, 연인 그리고 다른 이름의 많은 관계들 속에서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상처는 불쾌하지만 비교적 금방 잊혀진다. 나를 언뜻 알고 있는 사람이 주는 상처는 '자기가 나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저런 소리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면서 불쾌하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주는 상처는 어떤가. 불쾌함 보다는 정곡을 찔려 자존심이 상할 때가 훨씬 많다. 내가 가진 생각을 그대로 읽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기도한다. 다정한 위로를 바랐건만 따가운 충고만 돌아와 안 그래도 쓰린 속이 더 쓰려진다. 혹은 가족끼리의 무신경한 터치도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도 벌써 서른이 넘었는데 엄마는 아직도 내 이마를 자주 때린다. 그것도 엄청 세게. 보통은 내가 뭔가 실수를 하거나 엄마를 어느곳에 데리고 갔다가 헛걸음하게 만들거나 했을 때인데 정말 쩍! 소리 나게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때리고서 개구지게 웃는다. 엄마도 미안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냥 멋쩍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난 그 앞에서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인상 한 번 찌푸리고 만다. 내가 이마를 맞고 서러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 엄마는 모른다. 내가 늘 화장실로 가버리거나 다른 일을 하는척 자리를 옮겼으니까. 아파서 우는 건 절대 아니고 (물론 아프긴 하지만) 서러움이랄까, 이정도 실수는 가족이니까 봐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랄까. 그런 것들이 몰려와 얼굴이 뜨거워진다.


상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자주, 쉽게 주고 받게 된다. 주려하지 않았어도 주게되고 받고싶지 않아도 받게되는. 몸의 주인들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말 몇 마디로 상처를 부지런히 옮기고있다. 당연히 자주 만날 수록, 많은 대화를 나눌 수록, 가까이 붙어 살 수록 상처를 주고 받는 빈도가 더 커진다.


나는 괜찮아. 나는 주변사람들과 아무런 문제 없어. 모두가 행복하고 아무도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혹시나 있다면 자기 주변사람에게 한 번 질문해보길 바란다. "내가 혹시 너한테 상처준 적 있을까?" "나 때문에 당황하거나 기분 안 좋았던 일이 있었니?" 라고. 그리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본인이 말 하는 '주변 사람'이라는 게 어디까지인지. 그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과연 신경써서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항상 생각하자. 나도 누군가에겐 천하의 못된X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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