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초 Mar 24. 2022

나는 가끔 불편한 사람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재밌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으로 통한다. 고민을 잘 들어주기도 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 속을 시원하게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가끔,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원인은 간단하다. 나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과 오늘의 컨디션과 고민들을 전혀 공유하지 않은 채로 그걸 혼자 감당한다. 그러다보니 매우 예민하고 지친 상태가 되는데 그것 또한 말하지 않고 꾹 참는다. 그렇다고 그게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을까? 아니다. 말하지 않을 뿐이지 내 부정적인 기운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 부정적인 기운을 모두 감당해야한다. 이럴 땐 모두가 날 내버려 둔다. 차마 왜 그러냐고 물을 수 조차 없는 것 같다. 말수가 확 줄어들고 웃지 않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누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줄까.


이런 모습은 내가 일을 할 때도 나타난다.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을 하는 나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난 재밌고 말을 잘 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언니다. 하지만 가끔, 역시나 불편한 존재가 되곤 한다. 문제는 내가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을 때 나보다 어린 동생들은 절대로 먼저 이 분위기를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연장자인 내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을 했고 나이도 가장 많은 사람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딴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제아무리 활발한 사람도 선뜻 분위기를 풀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 때문에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일일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 부정적인 감정들을 입 밖으로 내지만 않으면, 조용히 그냥 내 할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면 딱히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모두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걸 온전히 느끼면서 '왜 내 눈치를 보는 거지? 나는 지금 몸이 너무 아프고, 이럴 때마저 쉬지 못하고 나와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거지 같을 뿐이야. 너희는 너희대로 평소처럼 웃고 떠들어도 돼.' 라고 생각했다. 물건을 다루는 손길이 점점 거칠어지고 일터의 공기는 갈수록 무거워져만 간다.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퇴근을 할 때면 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해진다. 하지만 그들을 붙잡고 내가 이러이러해서 오늘 이랬다, 미안하다. 라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걸 하지 못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입을 꾹 다물고 혼자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불편한 채로 모두를 보내고 다음날이 밝으면 나는 다시 평소대로 돌아가 있다. 물론 어떨 땐 그 불편한 상태로 사나흘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난 특정인에게 화가 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일은 1년에 한 번씩 꼭 일어났는데 얼마 전 일을 계기로 나는 이런 점을 완전히 고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일터엔 나와 함께 오래도록 일했고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한 명 있다. 사는 방식이나 자란 환경은 많이 다르지만 워낙 밝고 낙천적인 성격의 동생이 나를 많이 따르고 좋아해줬다. 그 애는 1년에 한 번씩 있는 나의 그 '짓'에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어제까지만해도 같이 깔깔대며 놀던 언니가 오늘 출근 했더니 입을 다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을 한다?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났을까. 한 두 살 차이도 아니고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다보니 그 애는 나를 마냥 편하게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럴 때마다 그냥 꾹 참고 내 기분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엔 이 친구가 일을 하다 말고 갑자기 사라졌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지 5분만에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ㅇㅇ가 너랑 같이 있는 게 너무 숨 막히고 힘들어서 일을 못 하겠대. 그래서 집에 보냈어. 왜 그런 거야?" 사장님 역시 내가 일 년에 한 번 꼴로 꼭 그 '짓'을 한다는 걸 알고 계셨기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런데 난 99%의 미안함과 1%의 억울함 때문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 애는 내가 자기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이 돼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냥 그날의 내 몸 상태 때문에 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하필 바쁜 날이었고 아플 때 쉴 수 없는 내 처지가 불쌍하고 한심해서 우울감이 잔뜩 내려앉은 상태였다. 이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불편한 기운으로만 내뿜은 내가 백 번 천 번 잘못한 게 맞다. 그렇지만 내 욕심으로는, 한 번만 왜 그러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다. 그랬다면 내가 이러이러해서 이렇다라고 말을 했을텐데. 그러면서 내가 지금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티 내고 있구나 라며 반성했을텐데. 물론 이건 내 욕심이다.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께 짧게나마 내가 왜 그러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뒤 바로 그 애한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그 애는 내 사과를 받아줬고 갑자기 일 하다 말고 뛰쳐나와 미안하다고 되려 사과했다. 그리고 난 그 애뿐만 아니라 함께 일 하는 다른 동생들에게도 사과를 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고맙게도 모두가 이해해주었다. 


내가 누군가를 숨 막힐 정도로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한 번은 들어야 했던 말이다. 주변 사람들을 가끔 불편하게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지만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괜찮겠지. 내가 이렇게 해도 다음날이면 멀쩡해지니까 괜찮겠지. 너무 이기적이고 오만했다. 360일 좋은 사람이었다가 5일 동안 미치도록 불편한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은 주변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더이상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불편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주변인들의 이해가 아닌 나의 변화, 나의 의지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은 내 장점이나 강점을 더 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편안한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한다. 엄마에게 편안한 딸, 동생에게 편안한 언니, 동료들에게 편안한 선배.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의학과에 전화를 걸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