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은 관내 6개 교구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 성 학대 의혹을 18개월 동안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배심은 1947년부터 70여 년에 걸친 교구 내부 자료를 검토했고, 성 학대 피해자와 목격자를 면담했다. 지난 14일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가해 성직자는 300명이며, 피해 아동은 1000명이 넘는다. 관련 기록이 사라졌거나 피해 사실 고백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어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14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끔찍한 성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한 사제는 다섯 자매를 성적으로 학대했다.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해 있던 7세 소녀를 강간한 사례도 있었다. 한 성직자는 어린 소녀를 임신시키고 낙태하게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신부직을 유지했다.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CNN은 페이스북에 "Can Catholic be saved?"라는 제목 글을 올렸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천주교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정도 되겠다.
이처럼 천주교 사제들의 많은 성범죄 사실들이 오랫동안 감추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가톨릭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과 소녀를 강간한 성직자들은 교단으로부터 수십 년 동안 대부분 보호받았다. 조사 보고서에 나온 일부는 승진까지 했다. 조직적인 은폐로 오랜 시간이 흘러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 성직자가 사망했거나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가 어려운 사건이 다수라고 한다.
바티칸 교황청은 미 펜실베이니아 성직자의 아동 성 학대 관련 보고서에 대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직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딱 두 가지뿐"이라며 "부끄럽고 슬프다(shame and sorrow)"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톨릭 사제들의 성범죄와 교단의 은폐에 대하여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27일에는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를 지낸 비가노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제들의 성폭력 사건을 알고도 은퍠하는 데 가담하였다며 사퇴를 촉구하였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폭력 사건과 은폐의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범죄와 은폐는 미국뿐만 아니라 칠레 호주 아일랜드 등에서도 발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동하는 한 신부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범죄와 은폐와 관련된 뉴스를 대할 때 떠오르는 영화가 한편 있다.
2015년에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이다.
이 영화는 천주교 보스턴 교구에 소속된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과 교단의 은폐를 추적 보도한 신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기자들의 활동을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미국 보스턴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다룬다. 보스턴은 미국에서도 아일랜드 계 이민자들과 로마 가톨릭의 세력이 강한 도시이다. 보스턴 지역 가톨릭 신부들의 추악한 성폭력 범죄 사실은 1976년 존 거갠 신부가 경찰에 아동 성희롱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처음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거갠 신부의 범행을 확인하고도 언론에 비밀로 부치고는 곧바로 거갠 신부를 석방했다.
세월이 흘러 25년 뒤인 2001년에 보스턴 글로브에 신임 편집국장으로 마티 바론 기자가 부임한다. 바론은 뉴욕타임스 출신이었다. 당시에는 보스턴 글로브 신문을 뉴욕타임스가 소유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마티 바론 국장이 지역사회 지도자들에게 부임 인사를 하러 가톨릭 교구장인 버나드 로 추기경을 찾아간다. 그러자 로 추기경은 성경책을 한 권 선물하며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얼마 후 바론 국장은 가톨릭 신부 성범죄 사건을 수임한 미첼 가라베디안 변호사가 쓴 신문 칼럼을 읽는다. 칼럼은 로 추기경이 거갠 신부의 아동 성추행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바론 국장은 탐사보도팀인 ‘스포트라이트’ 팀에게 취재를 지시했다. 영화의 내용은 ‘스포트라이트’ 팀 소속 기자들이 많은 신부들의 성추행과 교단의 조직적인 은폐사실을 확인하여 보도하는 과정을 담았다.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이 25년이나 지난 사건을 파헤치지 않았다면 보스턴 교구 신부들의 추악한 성범죄와 교단의 조직적인 은폐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진실을 드러내 사회를 정화시키는 언론인들의 끈질긴 노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자들이 밤을 새며 끈질기게 추적해야만 드러날 정도로 사제들의 성범죄가 치밀하고 끈질기게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피해자의 변호사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 기자들은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신부들의 성추행 사실을 취재한다. 아동성애자 신부들을 상대로 재활 교화 활동을 벌이는 전직 신부를 만나 신부들의 성추행에 대한 끔찍한 사실도 듣는다.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은 최종적으로 보스턴에만 90명의 성추행 신부가 있음을 파악한다. 이는 보스턴 전체 신부들의 6%에 해당되는 수치였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그중 87명의 신부 명 단을 작성한 다음 이들 87명의 신부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실을 확인한다.
2001년 9.11 테러 사태가 발생한 직후에는 가톨릭 신부들의 성추행 탐사취재들 중단하라는 압력이 밀어닥친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취재를 계속한다. 그 결과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교단이 성추행 신부들에게 휴가를 주거나 피정을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은폐했던 사실을 확인한다.
가해자를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는 것, 그리고 범죄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교단 전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 권력이 되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서 CNN이 붙인 제목처럼 "가톨릭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 대목이다.
보스턴 글로브는 신부들의 성추행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기록 공개를 요구하는 법정 소송에서 승소한다.
결국 보스턴 신부들의 성추행 만행은 2002년 초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보스턴 글로브에는 전국에서 신부들의 성폭력, 아동성애 등에 대한 신고가 쇄도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다음 해인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가톨릭 사제들의 성폭력과 교단의 조직적인 은폐를 폭로한 기자들의 영웅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끔찍한 많은 피해자들을 드러낸 기자들이 영웅대접받기를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25년 동안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지 못한 언론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스포트라이트'는 천주교를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성폭력과 강간이라는 성범죄가 사회에서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은폐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기자들은 25년 전 어린 시절 신부의 성폭력을 당한 어른이 된 필 살비노를 상대로 취재한다. 25년 전에 어렸을 때 왜 신부들의 성폭력에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요즘 한국사람들 중에도 피해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자 어른이 된 살비노는 이렇게 되묻는다.
"하느님한테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해요? (How do you say no to God, right?)"
결손가정의 어린이 살비노에게 신부는 하느님과 동격인 존재였다. 절대 권력자이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이가 신부의 요구에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제 정신이 아니다.
위 질문에서 '하느님'을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성범죄 피해자들은 다른 주어로 바꾸어 되물을 수 있다.
"의원님한테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해요?"
"선생님한테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해요?"
"사장님한테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해요?"
"선배님한테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해요?" 등등...
살비노는 덧붙인다.
"성폭력은 육체적인 학대가 아닌 영적인 학대(spiritual abuse)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을 성폭행한 성직자는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까지도 앗아갑니다. 그래서 당신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자가 됩니다. 그것으로도 해소가 안되면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처럼 죽지 않고 버틴 사람들을 생존자라고 부릅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남은 인생 동안 얼마나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지를 이보다 진실되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뇌리에 와 닿게 표현한 대사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강간 같은 성범죄는 대개는 잘 아는 사람들이 저지른다고 한다. 살비노처럼 잘 아는 사람, 믿고 의지하는 사람, 즉 선생님 사장님 선배님 대가들에게 당한 사람들은 누구든 죽음의 문턱을 드나드는 격심한 고통과 절망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신부들의 성범죄 사실을 보스턴 사회의 많은 지도층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결같이 모른 척 은폐하였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보스턴 교구 책임자인 로 추기경은 신부들의 성폭행에 관한 사실들을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거갠 신부가 10년 동안 120여 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 추기경은 그 신부를 수사당국에 고발하지 않고 다른 성당으로 보직 이동했을 뿐이었다. 보스턴의 로 추기경은 은폐 사실이 드러나자 보스턴 주교직을 사임했다. 로 추기경은 그러나 로마교황청으로 영전한다.
가톨릭 교단이 내부의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오랫동안 은폐하고 가해자를 숨겨주고 보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권위에 손상을 입는 것이 두려웠을까? 오랜 관행이었을까?
뿐만 아니라 보스턴의 학교들, 법원이나 경찰 등 사법기관들, 언론들이 모두 가톨릭 사제들의 성범죄 사실을 모른 척 묵인해왔다.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을까?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자세는 50년 전 미국 보스턴 사회와 다른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다. 영화 평론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올라온 평점은 97%에 달한다. 미국 가톨릭 교단에서도 긍정적이 반응을 보였다. 영화의 내용이 사실이며, 가톨릭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들이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도 이 영화가 반가톨릭 영화는 절대로 아니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영화는 반 가톨릭 영화도 아니고, 기자들의 영웅담을 미화하기 위하여 제작된 영화는 더욱 아니다.
이 영화는 성범죄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남기는가, 또 성범죄가 얼마나 끈질기게 은폐되고 있는가를 드러낸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