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찰라와 킬몽거, 그리고 갱스터랩과 켄드릭 라마
최근에 차를 타고 가다가 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DJ가 영화 ‘블랙팬서’의 OST인 ‘All the stars(별들이 쏟아지네)’를 틀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했던 필자도 차에서 다시금 이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도 대단하게 평가했던 흑인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랩과 여자 가수 SZA의 미성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곡이다. 유튜브에 올라있는 영상 또한 대단히 아름답다.
https://www.youtube.com/watch?v=JQbjS0_ZfJ0
그런데 방송에서는 노래가 시작하고 켄드릭 라마의 랩이 시작되기 직전에 노래가 중단되었다. 3분 54초짜리 노래에서 1분도 채 나오지 않고 끊어졌다. 그리고 DJ가 다른 노래를 틀었다. 켄드릭 라마의 영어 랩 가사를 알아듯든 못알아듯든 노래를 끝까지 듣고 싶었던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웠다. 아마도 켄드릭 라마의 랩이 시작되면 퍽(Fuck you), 마더 퍽(Motherfuck), 시트(shit) 같은 영어의 비속어가 나오기 때문에, 자칫 방송 윤리규정에 위반될까 봐 중단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블랙 팬서’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미국의 디즈니 사가 제작했다.
영화도, OST도 19금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랩에는 비속어가 당연히 들어간다. 미국의 경우 흑인 랩에는 ‘퍽’, ‘마더 퍽’, ‘시트’, ‘니거’... 등의 비속어들은 기본으로 들어간다. 흑인들의 힙합 뮤직이 세계 음악의 대세로 떠오른 지가 30년이 넘었는데도 이 정도의 비속어가 두려워 방송을 피한다면 시대착오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도 ‘블랙팬서’의 OST ‘All the stars’ 속 켄드릭 라마의 랩 내용은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한다. 켄드릭 라마가 하는 랩의 원문을 살펴보면 욕설을 퍼붓는 대상은 범죄꾼들인 듯 하다. 범죄를 자랑하는 갱스터 래퍼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듯 하다.
영화 ‘블랙 팬서’를 보면서 악역인 킬몽거(Killmonger)가 분노에 넘치는 대사를 말할 때 마치 흑인 랩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매우 리드미컬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킬몽거가 래퍼라면 미국이라는 나라와 경찰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갱스터래퍼가 아닐까?
갱스터랩은 1980년대 중반에 미국 LA의 흑인 거주지인 사우스웨스트 지역에서 나타났다. 랩의 내용은 총기를 휴대하고 마약을 판매하는 갱들의 일상과 이를 무자비하게 단속하는 백인 경찰들에 대한 증오를 담고 있다.
1988년 Ice-T와 닥터 드레 등이 함께한 힙합 그룹 N.W.A. 의 ‘Fuck tha Police’는 갱스터랩의 가장 대표적인 곡이다. 이 곡은 미국에서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경찰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공산주의 몰락기에 접어든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Fuck tha Police’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하나의 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켄드릭 라마는 같은 LA 출신이면서도 랩에서는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켄드릭 라마이다. 최근에는 퓰리처 상도 수상하였다. 오바마가 대통령 당선 직후 흑인들을 향해 “이제 그만 징징대고 성실하게 일하라”고 말한 것과도 어느 정도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한 이유도 흑인이 만들었으면서도 저항적인 메시지가 아닌 건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게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블랙 팬서'에서 킬몽거가 와칸다 왕국의 과학과 자원을 차지하여 세상을 향해 보복하려 하지만 결국은 선한 티찰라가 승리하여 평화와 선행을 실행하게 된다.
뻔한 내용이지만 그 뻔한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성격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백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승자가 패자를 상대로 하는 선전작업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블랙 팬서’는 100% 흑인들이 만든 영화다. 미국에서는 이 영화 이전에도 흑인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아주 많았다. 대부분의 경우 감독이나 각본은 백인들이 담당했다. 하지만 ‘블랙 팬서’에서는 배우들은 물론 감독, 각본, OST까지 모두 흑인들이 하였다. 디즈니 사는 이 영화에 2억 달러나 투자하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흑인 티찰라가 흑인 강경파 킬몽거를 물리치고 세상을 향해 평화와 봉사와 건설을 이야기한다. 흑인들이 어떤 두꺼운 콤플렉스의 표피를 벗어던지고 나온 것 같다. 흑인들 스스로가 역사적인 피해의식을 떨치고 일어서자고 다짐하는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블랙팬서’는 4주 만에 1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기록적인 흥행이었다. 마블 히어로가 나오는 블록버스터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메시지에 호응하는 관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아카데미상 수상식은 이렇다 할 작품이 없어 역대 아카데미상 수상식 가운데 가장 맥 빠진 수상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들 가운데에는 내년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는 ‘블랙 팬서’가 석권할 것이라고 때 이른 예상을 펼치는 사람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