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思悼)는 사도세자(1735~1762)와 아버지 영조(英祖)의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2015년에 개봉되었다. 영조의 후계자였던 세자가 왜 아버지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서 죽는 비극을 맞이했는가를 다룬 영화이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42세에 본 늦둥이였다. 영조는 얼마나 왕자를 사랑했는지 왕자가 겨우 세 살 때 세자에 책봉하였다. 조선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실제로는 궁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였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기록에서도 정신이상자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유아인이 연기한 사도세자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담고 있다. 영화는 픽션이다. 영화로만 보면 된다.
영화에서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본성이 좌절된다.
어릴 때에는 생모로부터 강제로 떨어져 홀로 손가락을 빨면서 자야만 했다.
자라면서는 글을 읽기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세자로서 아버지의 수렴청정을 받는 동안에는 뭔가 개혁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하면 사사건건 아버지에 의해 부정되고 무시당한다.
자신을 귀여워만 하던 아버지에 질책을 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사도세자는 좌절하여 사술에 빠져든다.
급기야는 아버지 영조에게 칼을 들이대려 한다.
결국 왕권을 보존해야 하는 아버지 영조는 역모를 시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사도세자를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그렇다고 세자를 역모 혐의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영조는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게 된다. 세자는 7일 만에 사망한다. 27세의 나이였다.
영화는 얼핏 젊은 개혁가가 늙은 기득권 수호자에 참담하게 몰락하는 것을 그린 듯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영조의 질책을 차분히 듣다 보면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걱정과 불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조에게는 늘 양반 세력의 역모가 끊이지 않는다. 그를 몰아내려 하다 붙잡힌 사람은 국문을 당하면서도 “무수리의 아들”이 왕이 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고함친다. 사도세자는 이러한 자리를 피하지만, 이는 영조의 왕권이 처했던 엄연한 정치적 위기이고 현실이다. 영조의 입장에서 보면 신하들이 기득권 세력이고, 왕의 권력은 오히려 취약하다. 영조가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가며 사직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정치적 파벌 간의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다. 영조가 파벌 해소를 명분으로 취했던 탕평책도 사실은 파벌 간의 이해,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안정시켜주는 일에 불과하다.
사도세자는 이에 도전한다. 얼핏 과감한 개혁지향이다. 하지만 영조의 입장에서 보면 자칫하면 양반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왕권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또 세자는 강고한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 틈바구니에서 취약한 왕권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좋은지를 고민하지 않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수준이다.
둘째, 영조는 조선의 국왕이 양반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은 공부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공부는 성리학 공부였다. 영조는 세자가 그림을 좋아하는 것을 나무란다. 영조를 비난할 일만도 아니다. 영조의 입장에서는 그림 잘 그리는 왕은 신하들의 비웃음만 살뿐이다. 신하들로부터 무능하고 자질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왕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래서 영조는 공부를 게을리하는 아들에게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나무란다.
영조의 입에서 나온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말에서 영화 ‘사도’는 21세기 한국과 바로 통한다. 현대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공부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 대기업 입사시험에 이르기까지 21세기 한국에서는 ‘공부만이 살 길’이다.
영화에서는 궁중 내에서 숨이 막힐 듯한 가부장적 질서가 압도한다. 영조는 아들의 훈육에만 엄하게 구는 것이 아니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귀를 씻고, 문지방에 불을 피우게 하고 뛰어넘는다. 젊은 여인을 중전으로 삼고, 아녀자들의 집안싸움에까지 끼어든다. 21세기에도 있는 좀스러운 가장, 꽉 막힌 아버지의 전형이다. 가정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영조가 주장한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는 21세기에도 사회 전반을 압도하는 가부장 질서와는 무관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가 정조(正祖, 1752~1800)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고 나서 아버지가 용을 그린 부채를 들고 어머니의 회갑 잔치에 나아가 춤을 춘다. 그러나 예나 지금 21세기에나 로맨티시즘이 복권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슴속에 수줍게 감추고 사모할 뿐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사도’를 통해 21세기 한국을 생각하게 만든 것이 이준익 감독의 의도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