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태영 Jun 19. 2018

영화 '특종:량첸 살인기'의 언론에 대한 예언적 통찰

영화 '특종; 량첸 살인기'는 2015년에 개봉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담은 영화이다. 한국의 언론은 그동안 영화에서 주요 소재로 다뤄져 왔다. 때로는 권력과 결탁한 부패집단으로, 때로는 부패한 권력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집단 혹은 개인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노덕 감독의 영화  '특종; 량첸 살인기'는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은 놀라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인공 허무혁 기자(조정석)는 부인의 이혼 요구에 시달린다. 허 기자는 근무하는 TV 방송 뉴스에서 광고주를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가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때마침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살고 있는 곳을 안다는 제보전화를 받게 된다.

큰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사에는 여러 가지 허위제보들이 쇄도하게 마련이다. 제보의 대부분의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허 기자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제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하지만 허 기자는 확인을 소홀히 한다.

해고의 위기에 처한 허 기자는 살인범과 접촉했다고 일단 허위 특종을 저질러버리고 만다.



허 기자의 허위 특종으로 인해 TV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하게 되고 광고주들도 접촉해 온다. 허 기자 개인적으로도 해고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차장으로까지 승진한다. 허 기자는 자신의 특종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중국인 작가가 쓴  '량첸 살인기'를 연극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일 뿐이다. 범인의 메모라고 주장했던 것도 사실은 배우가 '량첸 살인기'에 나오는 대사를 외우기 위해 적어놓은 것이다. 허 기자는 자신이 거짓 보도를 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나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다. 허 기자는 차장 승진과 명성 획득이라는 개인적인 이득을 포기할 수 없어, 자신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은폐한다. 심지어는 허위 제보자에게 임막음 용으로 거액의 뇌물을 전달한다.  


그 사이 진짜 범인은 허 기자를 이용해 또 다른 범행을 꾸민다. 멀쩡한 사람을 유인하여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하려 한다. 범인이 자살한 것처럼 꾸며 완전범죄를 노린다. 이게 다 허 기자가  '량첸 살인기'에 나오는 한 대목을  범인의 메모라고 거짓 특종 보도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범인은 막바지에는 허 기자의 부인까지 유괴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허 기자는 부인을 찾아내 구해낸다. 범인과 격투를 벌이다가 범인의 흉기를 빼앗아 범인을 살해한다.

자!... 그러면 연쇄살인범은 죽었으니 해피엔딩인가? 정의는 실현됐는가?


영화에서는 허 기자도 결국 자신의 거짓 보도 때문에 왜곡된 현실을 인정하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부인이 낳은 딸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도 보지 않고 찢어버리는 태도가 그러한 심중을 대변하는 듯하다. 허 기자의 거짓 특종보도 때문에 연쇄살인범이 의인으로 둔갑했지만, 어쨌든 진범은 죽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억울하게 범인에 의해 살해당할뻔한 사람은 자신을 구해준 허 기자를 범인으로 알고 있다.

허 기자는 범인을 살해한 피 묻은 흉기를 신문지 위에 펼쳐놓고 고민한다. 아무도 모르게 갖다 버릴 것 같다.


여기서 관객들은 허 기자의 안이한 현실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하나는, 딸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찢어버린다고 부인의 불륜에 대한 허 기자의 의심과 불신이 영영 사라지게 될까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허 기자는 거짓 보도로 방송국에서 승진했고, 이를 은폐하느라 거짓 보도의 산을 쌓아 올렸다. 그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살해당할 뻔했으며, 부인도 살해당할 뻔했으며, 허 기자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 허 기자가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윤리는 애초에 포기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자신의 엄청난 과오를 영원히 은폐하도록 허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영화 막바지에 허 기자는 보도국 백 국장(이미숙)에게 자신의 특종보도가 사실이 아님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백 국장은 "우리도 허 기자의 보도가 진실 이리고 믿고 보도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제지한다. 그리고 백 국장은 "대중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명대사를 터뜨린다.

영화를 연출한 노덕 감독은 2015년에 이미 시청률을 높이기 위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보도의 선정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것 같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적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탐정:더 비기닝'이 판타지로 보였던  3가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