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에 가면 대개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게 된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기념물이다. 맨해튼의 남부에 있는 배터리 공원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리버티 섬을 왕복하는 페리선이 20분마다 한 척씩 다닌다. 관광객을 가득 실은 페리선은 리버티 섬과 20세기 초에 미국에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심사하던 세관이 있었던 엘리스 섬을 들러서 다시 배터리 공원으로 돌아온다.
배를 타러 갈 때 한국전쟁 기념물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대도시를 다니더라도 시내에서 6.25 전쟁을 기념하는 동상이나 기념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현재 지구 위에 건설된 인류문명의 수도라고 할 수 있을 뉴욕시에서도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에 한국전쟁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들뜬 기분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가려던 한국 관광객들이라면 흠칫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념물의 이름은 ‘유니버설 솔저(Universal Soldier)’이다. 한국전 참전용사위원회에서 1991년에 세웠다. 동상의 디자인은 공모를 실시했다. 100여 명이 출품한 작품들 가운데 영국 출신의 저명한 조각가인 맥 아담스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맥 아담스는 작품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는 조각가이다.
다른 곳에 위치한 한국전쟁 기념물들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것들이 많다. 그런데 맥 아담스의 ‘유니버설 솔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세워진 때문인지 묵직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높이 4.5m가량의 이 작품은 커다란 검은색 화강암의 가운데를 병사 모양으로 파내어 도려냈다. 상실과 죽음에 대한 은유라고 한다. 작가 맥 아담스는 존 실킨의 시 ‘허공에 새겨진 빈자리’에 나오는 “그는 허공에 빈자리를 남겼습니다. 갑자기 그가 그리워졌습니다. 허공에 빈자리가 생긴 이유도 모른 채 그가 그리웠습니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기단에는 한국과 미국, 영국, 터키, 태국 등 유엔군에 참가한 22개국의 국기가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둥근 형태의 바닥에는 6.25 전쟁 참전국 수인 22개로 나뉜 구역에 나라별 참전 병사들의 사망, 부상, 실종자 숫자가 각각 새겨져 있다. 매년 7월 26일 오전 10시에는 햇빛이 그리스 구역에 떨어져 조그만 불꽃 모양을 만들어낸다. 휴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병사 형태의 빈 공간을 통해 멀리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반대 편에서는 본다면 미국에서 가장 번영하는 뉴욕 월가의 마천루들이 배경이다. 마치 자유와 번영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바닥에 새겨진 참전 병사들의 나라별 희생자 숫자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 사망 58,127 부상 175,743 실종 174,244
오스트레일리아 -- 사망 339 부상 1,216 실종 29
벨기에 -- 사망 107 부상 345 실종 5
캐나다 -- 사망 291 부상 1,072 실종 21
콜롬비아 -- 사망 140 부상 452 실종 65
덴마크
에티오피아 -- 사망 120 부상 536
프랑스 -- 사망 288 부상 818 실종 18
그리스 -- 사망 194 부상 610 실종 2
인도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 사망 2 부상 5
네덜란드 -- 사망 120 부상 645 실종 3
뉴질랜드 -- 사망 42 부상 81
노르웨이 -- 사망 2
필리핀 -- 사망 92 부상 299 실종 57
남아프리카공화국 -- 사망 20 실종 16
스웨덴
태국 -- 사망 114 부상 794 실종 5
터키 -- 사망 721 부상 1,475 실종 175
영국 -- 사망 909 부상 3,497 실종 141
미국 -- 사망 54,246 부상 103,248 실종 8,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