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I시대를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ESG 개념도 아직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데, DE&I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작금의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싶다. 특히 단일민족으로 좁은 땅에 형성되어 오랜 세월 다민족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에서는 DE&I 개념 적용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점차 인구소멸 시대에 접어들며 우리 사회도 다민족 국가로의 전환이 예상되고 있고, 이미 지역 식당에서는 외국인 서버들을 흔하게 보는 시대가 되었다. DE&I에 대한 개념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실천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ESG 영역 중 대부분 ‘E(Environment)’ 영역인 친환경 이슈를 다뤘지만 이제는 ‘S(Social)’ 영역까지 실천 범위가 다양해지며 DE&I의 중요성이 급부상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ESG로 전 세계적 대전환을 지향하는 시점에서, ‘S’영역에서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라는 다양한 개념들로 인권향상을 위한 여러 노력들이 시행되고 있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참 아름다운 말들의 조합이다. DE&I, 지속가능한 발전, 포용력, 다양성 등등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좋은 말들을 실제 MICE 현장에 접목할 때에는 개념과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성이라 해서 모두 친환경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며, 포용성을 내포한다하여 모두 시혜의식을 베푸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어설픈 배려는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으며, 진정성을 갖고 상대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여 DE&I를 실천해야 탈이 없을 것이다.
*출처 : Flickr, MPI
세계적인 행사인 칸라이언즈(칸국제광고제)의 경우 다양성 측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 심사위원 비율을 늘리고 출품작마다 DE&I 자료를 제출하도록 권장하고 있어 출품하는 작품들도 DE&I를 고려한 인권향상에 관련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DE&I를 적용한 행사가 늘어나며 세계 최대 규모의 회의 및 이벤트 산업 협회 MPI(Meeting Professionals International)에서는 이미 DE&I 이벤트 체크리스트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베뉴 접근성을 높이고 환경적 정비를 위해 이동성을 고려하고, 기도실을 제공하며 포괄적 간판 및 주차/교통편을 안내하는 체크포인트가 있다. 종교적 규범에 따른 식음료 준비를 위한 준비, 등록에 대한 배려를 위한 수화통역, 보조견 도움, 대명사 활용을 권장한다. 마케팅 시 모든 자료에 대한 접근성 강화(이미지 설명, 언어 호환), 다양한 이미지 활용, 행사 프로그래밍 시 연사 선정에 있어 광범위한 성별, 인종,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Plus), 지위, 국가 출신, 지역 등을 고려한 지표들을 만들었다.
*출처 : 부산국제 어린이청소년 영화제
부산은 이미 제22회 세계한민족 여성 네트워크 대회, 부산국제 어린이청소년 영화제, 2023부산세계장애인대회 및 연계행사-제24회 장애인한바다축제 등을 개최하며 DE&I 개념을 적용, 실천하고 있다. 부산이 글로벌 MICE 도시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부산형 DE&I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매뉴얼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DE&I는 MICE 산업에 왜 필요할까? 그 당위성과 중요성을 먼저 알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다양성의 경우, 각기각색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MICE 행사에서는 국적, 인종, 종교가 다른 참가자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MICE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환경을 조성하여 MICE 참가의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MICE 산업의 특성상 특정한 주제로 특정된 참가자들이 모여 논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의 틀을 깨어 다양성을 존중하면 해당 주제산업의 혁신적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둘째, 모든 참가자에게 참가에 대한 평등한 참여기회를 제공하여 MICE 참가자들이 좀 더 폭넓게 참가할 수 있어 다양성을 가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그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는 곧 MICE 행사를 치러내는 도시의 혁신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해당 콘텐츠의 발전과 MICE 성과로 인해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 폭넓은 관점으로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셋째, 포용적 참여의 경우, 모든 참가자가 MICE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의견과 경험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여 서로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되었을 때 시너지가 나는 것이다. 이는 행사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통해 더 깊이 있고 심도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목적지를 만들어주며, 도시가 MICE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한편, 2015년 스페셜 아티스트 페스티벌(발달장애 예술인을 위한 비즈니스 행사)를 기획하며 겪은 에피소드는 DE&I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았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예술가가 작품을 판매하고자 하여 "작가님, 작품이 정말 너무 멋져요. 저희 행사에서 좀 더 비싸게 책정하여 판매하려구요."라고 호기롭게 말씀드렸다가 일침을 맞은 일화가 있다. "아니요. 저는 정가에 판매하게 해주세요. 장애인이라고 더 비싸게 팔아주시는 거 기분 나쁩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대해주는 것이 저희에겐 차별하지 않는 거에요."
DE&I 개념이나 MICE에 대한 적용, 필요성을 알고 어떤 매뉴얼을 만들어 지킬 수 있는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신과 나는 다르다’라고 선을 긋고 시작하는 배려는 상대에게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같은 인격체로, 동등한 입장에서, 차이가 나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잘못된 배려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배려를 받아야하는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MICE 행사 기획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다양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경험도 많지 않다. 뿌리 깊은 유교사상이 민족적 정서로 자리잡은 대한민국, 그런데다 보수적 성향이 다소 강한 부산에서는 더더욱 DE&I에 대한 태도부터 잘 형성해야 할 것이다. 부산사람으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생활하며 느낀 바가 많았다. 특히 글로벌 MICE 행사를 경험하며 ‘Lady First’부터 몸에 베어있느냐 베어있지 않느냐로 구분되는 현 상황에서 DE&I를 적용한 MICE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에서 DE&I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는 정도로만 접근하면 이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문화(Inter-Cultural Communication)교육과 함께 서로 너무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은 인종 차이의 갭을 줄이는 전략, 성별 차이를 줄이는 전략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교육이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실천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DE&I를 지금 바로 당장 실천할 수는 없다. 너무 큰 갭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간극을 좁혀야 하고, 단계별 적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DE&I에 대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며,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MICE 도시 부산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반영한 MICE 행사 운영, 매뉴얼로 관리하여 익숙해졌을 때 부산에서 이러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MICE 참가 만족도도 하락할 것이며, 유치경쟁에서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갑자기 해외에서 통용되는 DE&I 적용은 어려울 것이지만 부산의 DE&I에 대한 정서적 간극이 크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가벼운 변화부터 시도하기를 바란다. 부산 MICE 산업이 더욱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MICE 업계의 지속적인 지지와 협력을 부탁한다.
* 해당 글은 부산관광공사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기고(2024년 2월)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