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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 Jun 29. 2021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올해 초 있었던 일을 끄집어 내며

커서가 깜박거리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건지. 내가 전생에 지은 죄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다. 면접때 잘 대답하지 못했던 내가 미웠다. 그때 이렇게 대답했더라면 나는 합격했을까 자책했다. 그래도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최종에서 떨어졌다. 다시 나는 준비생 신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15일은 모 방송사 최종면접이었다. 일찍 가서 긴장에 좋다는 차를 한 잔 마셨다. 평소보다 늦게 불안장애 약을 먹었다. 면접이 시작되자 떨리진 않았다. 그러나 반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질문을 날리니 그 다음질문도 제대로 대답할 리는 없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준비한 대답을 짜냈다. 면접장을 나오고 남은 것은 모든 전형에서 내 점수가 최종면접 점수를 넘길 바라는 것이었다.


면접 후 발표까지 16일이 걸렸다. 잠이 안왔다. 휴대폰 진동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는 짧은 진동은 문자고 긴 진동은 카톡인 것을 알아버렸다. 발표가 난다는 3시에서 6시 사이는 특히 더 심했다. 다 끝났다는 허무감과 불안, 그리고 혹시나 하는 설렘이 나를 압도했다. 지망생이 모인다는 카페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혹시나 누군가 먼저 연락을 받았다는 글이 올라오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불안과 설렘이 잦아들 때 즈음, 짧은 진동이 울렸다. 불합격 이었다. 마음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딱 견딜만큼 힘들었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들었다. 나는 왜 PD가 하고싶을까. 그것도 방송국 PD가 왜 하고 싶을까. 나는 이 고민을 붙잡고 내면을 헤맸다. 한참을 헤멘 끝에 나는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보다 근본적인 감정을.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두려웠다. 정규직이 아닌 삶이 두려웠다. 비정규직과 파견직 그리고 프리랜서를 오가는 생활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글과 시험을 두고 기약없이 공부하는 삶이 두려웠다. 정답이 없는 공부를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두려웠다.


유학시절, 나는 자유로웠다. 나는 내 삶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만의 길을 간다면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생겼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주었다. 나이가 주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웠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니, 나는 모든 곳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부모님과 나의 나이, 저만치 앞서가는 친구들의 모습,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사회, 그리고 부모님 세대보다 더 나아질 수 없는 불안감까지. 다시 사회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걱정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 속에서 그 어떤 것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NYU TISCH 스쿨 졸업연설에서 말했다. "당신은 그냥 꿈을 쫒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수많은 불안 속에 있어도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1년 전의 나보다는 나아졌다는 점이다. 나는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다시 시작이다. 내가 온통 얻어맞아서 곤죽이 되어도, 글쓰기에 있는 힘껏 부딪혀 볼 셈이다. 그러고 나서 서른이 되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나는 평생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을 얻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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