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뮤지션 신곡 <전쟁터>를 듣고
악동뮤지션이 새 앨범을 냈다. 제목부터 너무나도 ‘악뮤’ 스러운 앨범이다. 첫 곡 <전쟁터>를 들었다. 노래의 중간지점, 이선희 씨가 노래를 시작한다. ‘내 어깨 위로~’… 또렷이 들리는 그녀의 음에는 힘이 있다. 노래로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다. 그 힘은 바로 첫 음에 있다. 문득 내가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이 떠올랐다.
피아노를 오래 쳤다. 처음은 6살 때였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사람 손?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들면서 였다. 오른쪽에서 뒷줄에 앉아있던 나는 친구들이 손을 들지 않는 것을 보았다. 피아노의 ‘도’ 도 모르는 내게 무엇인가 도전의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 지하 음악실 골방에 갇혀서 손가락 연습을 해야 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이것이 스무 살 때의 ‘모르면 마셔야지’와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아이에게 성인의 ‘진득함’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많은 아이들이 피아노와 나 밖에 없는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다. 6살부터 13살까지 골방에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음표를 보며 지루한 클래식을 연습했다. 연주 실력은 늘어나는 것 같지 않고, 옆방의 누군가는 나보다 피아노를 더 잘 치는 것 같았다.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피아노를 체르니 40이 끝나는 순간 그만두자고 정했다.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두기로 한 달이었다. 우연찮게 나는 학교에서 ‘마법의 성’ 악보를 구했다. 컴퓨터로 노래를 들었을 때, 이런 노래는 어떻게 연주하는 건지 궁금한 정도였다. 그런 내게 그 악보는 일종의 ‘악마의 열매’ 같은 것이었다. 한데, 그 악보는 생각보다 쉬웠다. 신기했다. 내 손에서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게. 지난 골방에서 연습하던 성과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는 예정대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대신, 내가 연주하고 싶은 악보를 다운로드하여 나 스스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체르니 40을 연주하던 때와는 달랐다. 그런 음악을 연주하면 나 스스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슬픈 선율이면 내 마음도 덩달아 슬퍼졌고, 클라이맥스에선 벅찬 감정이 들었다. 그러한 감정을 손끝 마디마디로 전달하자, 음에 강약이 생겼다. 표현하는 방법, 음에 진심을 담는 방법을 ‘마법의 성’이 가르쳐주었다.
그러기를 16년, 지금 나는 행복하다. 음악에 진심을 담는 노력 끝에, 첫 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어서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만나게 될 때면 그 마음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음에 담긴 마음가짐, 자신의 삶을 증명해내듯 그 음은 또렷하고 단단하다.
내 음악에 경지가 있다면 나는 그 발치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첫 음이 가지는 힘은 또렷이 기억한다. 길을 가던 사람을 멈춰 세우는 마법, 술을 마시다가도 같이 노래를 하게 만드는 기적은 첫 음에 있다. 록 페스티벌의 사람들의 소위 ‘앓는 소리’ 도 그러한 첫 음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나는 오랜만에 그런 힘을 마주한 것 같다. 악동뮤지션의 새 앨범의 노래, <전쟁터> 엔 그런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