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에필로그>를 듣고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이상하게 지치고 힘이 빠진다. 사람이 적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서 충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광기를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나에겐 마주 앉아 오래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겁다. 그러기에 여럿이서 자주 모이는 성향의 친구들은 자연스레 멀어진 지 오래다. 내게 남은 친구들은 몇 되지 않는다. 서로의 일상과 코로나에 휩쓸려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의 거리가 멀어지는 게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마음에서 나는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다. 연락을 할 용기가 날 때는 내 마음이 상대방 하나를 오롯이 향해있을 때다. 연락이 주도권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그 주도권을 포기한다. 우리 사이에 그런 걸 잴 시간이 있다면 조금 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서다. 보통 내가 말한 때보다 늦게 약속이 잡히거나 나중에 보자는 말이 익숙하다. 몇 번 들어도 아쉽게 느껴진다. 동시에 즐겁다. 만일 우리가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궁금하다. 근황뿐만 아니라, 삶과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중 한 명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열대야로 막 접어들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모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벌써 햇수로 12년. 아마 걔도 나를 꽤나 징그럽게 생각할 것이다. 연락을 하며 새삼 우리가 같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얘기했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냐고. 그러자 그는 뜻밖에 대답을 내놨다.
"나는 서른이 너무 기대돼. 나는 얼마나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까?"
이 말은 나를 뒤흔들었다. 내가 본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한다. 나도 비슷하다. 시작되지 않는 커리어,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 역시 스스로 불안을 느끼며 살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안은 그의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그의 작은 체구 뒤에 비친 그림자가 유난히 크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불안에 몸서리치지 않는 삶. 이것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가 어른이 되는 이유가 아닐까.
여기서 나는 그 친구와 아이유를 겹쳐보았던 것 같다. 내 마음에 아무 의문이 없어서 이다음으로 간다는 말. 이렇게나 미련이 남는 세월이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가장 작게 느껴졌던 시절을 온몸으로 돌파해 나가서 일게다. 93년에 태어나서 기쁜 일이 있다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유의 지난날이 남아 있어일 것이다. 같이 고민하고 방황했던 시절에 적어도 혼자라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씩씩하게 말할 수 있는 내 친구의 모습이 아이유의 노래를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짧은 농담과 대화로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이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나는 이 우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싶다. 그도 기억하고 있을까. 7년 전, 대학 기숙사에서 우울함에 빠져 있을 때 함께 있어주던 것을. 그때 평범하게 잊힐 우정을 얘기했던 내게 오래도록 연락하자고 얘기해주었던 것을. <에필로그>에서는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아이유는 그동안 불특정 다수를 향해 노래했다. 내 노래가 위로가 되는지, 나랑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대답을 듣지만 어느 하나 명확하지 않다. 남은 건 그저 나와 함께 행복해서 좋았는지에 대한 물음뿐이다. 아마 이 노래가 나가고 아이유는 그렇다는 물음을 찾아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이 아이유의 <에필로그>를 통해 나는 인생에 다음 페이지에 행복하게 마침표를 찍을 준비가 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이십 대에 이긴 것은 불안과 불확실성이고, 얻은 것은 자유다. 내게 아이유의 <에필로그>는 이렇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