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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 Sep 02. 2021

9월

윤종신의 <9월> 을 듣고

그을린 여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은데

https://youtu.be/kn2GWoKrux8

<9월 겉절이>
<9월> 묵은지


그런 노래가 있다. 온도, 바람, 분위기, 공기의 냄새가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노래 말이다. 그런 노래는 특별해서 그날의 기억을 불러온다. 행여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면 더 좋다. 그럴 땐 숨겨뒀던 와인이나 맥주를 조심스레 꺼내어 둔다. 이 모든 게 그날의 기억을 완벽하게 불러내진 않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게 윤종신의 <9월> 은 그런 노래다. 이 노래는 꼭 여름의 공기가 가을로 바뀌는 9월에 들어야 제철이다.


<9월> 은 겉절이와 묵은지가 있다. 맛의 깊이나 장단은 없다. 이것은 오로지 식감의 차이다. 좋아하는 취향이 있다면 꺼내어 들어주면 된다. 내게 <9월> 겉절이는 원곡이다. 2001년 7월에 발매한 9집 ‘그늘’ 앨범에 수록되어있다. 노래엔 아직 윤종신의 미성이 남아있다. <9월> 묵은지는 Just Piano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버전이다. 여기선 재즈풍의 편곡과 함께 2001년과 2014년 사이 변화된 윤종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날 느낀 기분에 따라 맞춰 들으면 된다.


<9월> 은 계속해서 특정 연도의 9월로 계속해서 회귀한다. 나의 경우, 처음 들었던 2014년은 온통 우울했던 것 같다. 짝사랑을 하긴 했지만,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2015년엔 군대 훈련소에 있었다. 노래가 듣고 싶고, 정신교육은 지루했다. 군용 수첩을 꺼내 천천히 <9월> 가사를 써 내려갔다. 시간도 잘 가고,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수첩 하나를 온통 노래 가사로 채우다 보면 정신교육은 끝나 있었다.


세상은 그리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런 순간들이 존재하기에 한 번쯤 살아봄직 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추억을 담아둘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게 좋아하는 노래라서 더 좋다. 그 노래는 1년마다 빈 추억 통을 들고 찾아온다. 나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슴께까지 차올랐던 것들을 쏟아내고 나면, 다시 1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에겐 그게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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