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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ga Oct 13. 2020

밥 먹는 이야기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아이가 생기고 첫 몇 년 간, 회사일과 육아 외 주제에 쓸 에너지는 없었다. 하지만 고맙고 슬프게도, 아이는 정말 빠르게 자란다. 어느 주말, 훌쩍 큰 아이가 혼자 노는 (길지 않은) 여유의 시간에 멍 때리다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찾아온 심심함.


나 스스로에게 붙인 태그 중 하나는,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비록 뛰어나지도 못하며 끝도 보지 못하는 불연소 기질이지만. 아무튼 분류상으론 대략 그쪽 선 안에 선다고 믿는다. 그래서 취미 생활이라면, 당연히 제조하는 분야일 것이라 생각했고. 기왕이면, 모니터와 휴대폰을 벗어난, 손에 쥐어지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어른이 된 이후 줄곧 밥벌이의 이유로 - 주 5일 이상 하루 종일 - 스크린에 갇혀 보낸 억울함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만져지는 것, 물리적인 것의 동경이 있다.


그런데 취미라는 게 참 사치스럽고 허망한 일이라. 상상을 해 봤다. 목공을 연마하여 탁자를 만들었다고 치자. 하나는 억지로 집에 들이더라도 (여기서 이미 아내에게 혼나고.) 2번째부터는 어디다 버릴까. 금속 공예를 배운다면? 내 왼쪽 귀걸이 새 걸로 바꾸고, 아내도 하나 만들어 바치고. 다음엔 어머니 드려야 하나. 그 다음 물건은? 관심 가기로는 건축 설계에까지 닿았다. 이건 금방 상상을 멈췄다. 비록 취미 목공으로 진짜 목수가 된 옛 동료도 있으나, 현실적으론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취미 생활이란 꽤 소비 지향적인 일이다. 아마 스스로 쓰기에도 어설픈 제작물이 쌓여갈 것이 빤한데, 이를 어떻게 처치하느냐가 답 없게 느껴졌다.  만들어낸 제품의 쓰임이 생산을 따르지 못하면, 자연스레 몇 번 깨작대다가 그만두겠지.


그러던 중, 떠오른 것이 바로 음식 만들기였다. 내가 비록 미식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좋아하니까. 먹는 것을 즐기고 꽤나 게걸스럽게 복스럽게 먹으니까 썩 어울리는 주제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끈질기게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더라도, 먹어 치울 수 있는 끼니는 내 평생만큼 남아있다. 몸을 쓸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만들 수 있고 또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가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함께 먹어 치워줄 서포터까지 집에 둘이나 더 있다.


음식 만들기 취미의 매력은 또 있다. 음식의 종류는 수없이 많으니, 지루할 틈 없이 매번 새로운 걸 시도해볼 수 있고. 세상에 수많은 식재료와 요리법들을 찾고 배우고 하는 맛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행하는 것 이상으로 잡지식 채우는 것을 즐기며, 늘 새로운 것에 미혹되는 체질이라 이 또한 상당히 끌리는 장점이었다.


내 사람들에게 확실히 쓸모 있을 거라는 기대도 좋았다. 친구들 초대해서 먹일 수 있고. 자라는 아이에게 아빠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남길 수 있고. 좀 부족함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즐겁고 부담 없이 소비해줄 수 있으니까. 언젠가 쓸쓸한 노부부가 되어 남더라도, 하루하루 무얼 해 먹을까 함께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이쯤 오니, 생각할수록 묘안이라는 자기 확신이 굳어져갔다.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책을 사모으고 유튜브를 헤매고 도구를 탐하며, 밥 먹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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