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원의 [도시와 라이프]
아무리 '핫 플레이스'로 불리는 서울 연남동이라지만 이 먼 곳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가려면 무려 22분(카카오맵 기준)이 걸리는 작은 카페 이야기다. 10명 정도 들어서면 가득 찰 만한 작은 공간은 카페 주변에까지 활력을 퍼뜨리고 있다. 커피가 특별해서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커피 맛이 뛰어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이곳의 특별한 점으로 공간의 매력을 꼽고 싶다.
커피냅 로스터스의 공간은 평범하지 않다. 카페 바닥이 평평하지 않다. 빨간 벽돌로 봉긋 쌓아올려 마치 언덕처럼 꾸며놨다. 사람들은 이 '언덕'에 자유롭게 걸터앉아 평상시에는 흔히 해볼 수 없는 경험을 즐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걸터앉기 좋아 보이게 설계된 창가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앉는다. 이같이 정형화되지 않은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에는 힘이 있다. 환경심리학에서는 '사회구심력이 강한(sociopetal) 공간'이라고 부른다. 이용자들의 마음을 풀어놔 자유로운 활동을 불러일으키고 같은 공간에 있는 주변 사람들과 서로 친숙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강단이나 교회 예배당같이 한쪽 방향으로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회원심력이 강한(sociofugal) 공간'과 대조적이다. 사실 좁은 공간에 의자를 억지로 끼워 넣다 보면 의도치 않게 사회원심력이 강한 공간으로 꾸며질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자유도'가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풀어져야 마땅할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공간을 만들어 금세 문을 닫으며 눈물을 흘리는 임차인들을 종종 봤다. 사실 면적이 작은 공간은 자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이용자의 활동이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커피냅 로스터스는 작은 면적의 한계를 창의적 방식으로 극복해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이들이 즐기는 독특한 공간적 경험은 '찰칵' 소리와 함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수많은 이에게 공유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또 다른 이들을 이 공간으로 불러온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카페명을 검색해 나오는 사진들을 보라.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요즘 많은 사람, 특히 젊은 '밀레니얼'(1980~2000년대생)들은 기꺼이 공간을 소비하려 한다.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는 창고임에도 뜬 게 아니라 창고였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창고였기 때문에 가능한 2층 높이에 견줄 만한 높은 천장, 그리고 운동장처럼 쫙 펼쳐진 널찍한 공간을 어디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정형화된 아파트에서 살아온 밀레니얼에게는 이 독특한 공간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놀이다.
홍대 앞에 있는 라이즈 호텔은 용적률을 일부 포기하고 2층 높이 층고로 로비를 만들었다. 투명 유리를 통해 보이는 높은 층고의 내부 모습은 경쾌한 개방감과 화려함을 외부에 한껏 자랑한다. 그리고 이 로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베이커리인 타르틴을 불러와 대중의 끌림을 더했다. 로비 공간의 매력에 승부수를 던지는 기존 대형 호텔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부티크 호텔들도 비슷한 노력을 기울인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해 밀레니얼을 끌어들이고, 거리와 맞닿은 전면부를 활용해 이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외부에 드러낸다. 그런 노력이 공간의 트렌디함을 돋보이게 한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도시공간은 그 공간을 경험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도시여행자'를 부른다.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꾸려진 이들, 도시여행자들의 등장은 공간을 소비하는 시대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사람을 유혹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구심력이 강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이들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