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시티
밀레니얼 세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취향을 가진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우리 도시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기에 적합한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여행하듯 찾아다닌다. 많은 운영자들은 밀레니얼의 카메라에 선택받기 위해 자신의 상업공간을 꾸미게 되고, 이는 그 주변 도시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주거공간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밀레니얼은 도시를 사랑한다. 편의점, 카페, 공원, 운동장, 피트니스클럽, 도서관, 서점, 미술관, 박물관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과 더불어 사람들과 어울림 등은 이들에게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꼭 직접적인 교류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내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잔을 들면, 커뮤니티에 들어와 있다는 손에 잡히는 감각을 느낀다"는 한 밀레니얼의 말을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기사, '부유한 밀레니얼은 넓은 집보다는 도심에 근접한 집을 구매한다'는 이런 점을 잘 포착했다. 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들에게 집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도심과 가까워야 하고, 넓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이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히 수선이 끝나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몸만 들어가면 되는 집이다.
넓지 않아도 상관없고,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을 즐길 수 있는 도심에 근접해야 하며, 집수리나 인테리어 따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집. 이런 집은 서울 시내에서도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적당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셰어하우스가 그중 하나다. 오피스텔과 같이 화장실과 작은 부엌이 원룸 안에 배치돼 있고 침대 같은 기본 시설까지 완비된 개인실을 이용하는 동시에 카페처럼 꾸며진 화려한 공유 공간을 남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셰어하우스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 셰어하우스는 호텔처럼 청소나 조식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셰어하우스가 호텔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처럼, 호텔은 밀레니얼의 수요에 발맞춰 주거용으로 변신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텔은 셰어하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적으로 머무는 개인 공간은 좁을지 몰라도, 그걸 보완할 수 있는 풍족한 공유 공간(로비)이 있고, 도심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미국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호텔'은 마치 집과 같아 스스로를 '단기 임대 아파트'라고 부른다. 오래 머물기에는 답답한 개인 공간을 집과 같은 분위기로 꾸며 단기 거주용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손더(Sonder)나 리릭(Lyric) 등의 객실은 거실과 부엌, 베란다를 제공한다. 호텔처럼 하루만 빌려 쓸 수도 있지만, 집처럼 2년 동안 임차해 쓸 수도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행하듯 도시를 경험하는 '노마드' 스타일의 밀레니얼에게는 몸만 들어가면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 호텔이 주거용으로도 적격인 셈이다.
거주 공간을 숙박용으로 사용하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여러 동네를 경험하며 살고 있는 미국 뉴욕의 밀레니얼 부부 사례를 영국의 가디언에서 읽고 놀랐던 것이 이미 4년 전인 2016년의 일이다. 집은 에어비앤비에 의해 여행용으로 사용되고, 호텔은 이제 집처럼 디자인돼 주거용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공간'은 주거시설인가, 숙박시설인가. 집을 호텔처럼, 호텔을 집처럼 이용하다 보면 현재의 도시계획법의 틈새에 빠지는 사례들도 생길 수 있다. 우리 도시 앞에 놓인 이런 도전과제를 바라보던 와중에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법의 틈새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던 타다가 국회가 만든 '타다 금지법'에 의해 좌절됐다. 이런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우리 도시는 밀레니얼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타다 금지법을 떠올리면 비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글은 매일경제 주말 칼럼, '도시와 라이프'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