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깨닫게 해준 것
A girl sings from the window during the flash mob, March 13, 2020. Some people have organized a flash mob asking to stand on the balcony and sing or play something, to make people feel united in the quarantine. -- Mairo Cinquetti/NurPhoto via Getty Image
https://www.cnbc.com/2020/03/14/coronavirus-lockdown-italians-are-singing-songs-from-balconies.html
이동제한령으로 외출이 봉쇄된 이탈리아의 주민들은 창문을 활짝 열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받았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텅 빈 거리에서, 창문을 통해 흘러 나온 노래 제목은 ‘Abbracciame(나를 껴안아 주세요)’였다. 이 장면은 뉴스와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으로 확산되며 세계인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 아련한 감각은 어디에서 왔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은 인간의 사회적 측면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이 감염증의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세계적으로 권장되거나 강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인들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발코니를 통해 서로를 드러내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있음'을 외쳤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용어 자체를 ‘물리적 거리두기'라 고쳐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본질적 요소를 잠시도 내려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원격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원격으로 수업을 받는 상황이 늘고 있지만, 사람들은 사회적 교류의 가능성을 내려 놓지 않는다. 화상회의용 프로그램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화면을 공개하고 서로의 모습과 표정을 보며 얕게 나마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려 한다.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일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화상회의로 서로를 보며 함께 밥을 먹기도 한다. 눈으로 서로를 보고 귀로 상대의 기척을 느끼는 행위야 말로 사회적 교류의 첫 걸음이다. 발코니에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노래를 불러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사례에서도 보듯, 시각과 청각은 타인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감각이다.
돌이켜 보면, 공유오피스의 공유공간이 만족스럽다고 느꼈을 때는 바로 다음과 같은 때였다. 퇴근 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공유공간 한쪽에서 10여명의 사람들이 무엇인가의 주제로 발표를 하고 질문과 답변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보였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뭔가를 말하고 주장하고,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박수치고, 질문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바라보다 보니 나는 어느샌가 왜인지 모르게 힘을 얻는 느낌을 받았다. 시각과 청각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이처럼 시각과 청각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시야 말로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다. 평소 명동의 거리가 재미난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 어떻게든 사람들을 매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애쓰는 이들의 표정과 목소리 속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최근 명동 거리는 한동안 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면 눈물이 핑 돈다. 그 이유는 북적거리던 공간의 기억 때문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활기찬 매력을 이미 맛 본 두뇌는 텅 비어버린 공간이라는 강렬한 반전을 경험하며 충격을 받는 것이다. 이와 달리, 백화점처럼 내부에는 사람이 많지만, 바깥에서는 그 북적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물 위주로 조성된 도시에서는 지금과 같은 때에도 이질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런 도시는 이미 인간의 본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반 푼 짜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지금의 극단적 상황은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대화로 인해, 프라이버시란 이름으로 조금씩 분리되고 벽을 쌓으며 무뎌진 감각은, 지금 같은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다시 불쑥 드러났다. 우리는 언젠가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서로의 모습을 시각과 청각으로 좀 더 손쉽게 느낄 수 있는 건물의 형태와 도시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적어도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1층 레벨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끈’인 시각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매일경제 '도시와 라이프'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4550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