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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est cyclist Jun 24. 2019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리뷰

얼마 전 제 모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습니다. 무슨 풋볼 대회에서 우승했대요. 좀 신기했습니다. 저 여고 나왔거든요. 짧은 영상 속에서 애들이 럭비공을 들고 막 뛰다가 던지는데, 학교에 유쾌한 또라이가 여전히 많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공 들고 땡볕 밑에서 뛴 건 저도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인 것같은데, 그걸 멈추지 않고 30대에 축구를 다시 시작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입니다.


김혼비 작가는 <아무튼, 술>로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백일금주 중이라 책 전체를 필사할 기세로 공감하며 읽었는데, 전작이 있다고해서 서점에서 슬쩍 봤습니다. 축구 이야기더라고요. 술은 저에게 늘 대화와 음악, 그리고 밤공기를 더 멋지게 해주는 친구인데, 백일이나 떨어져 있으려니 아주 절절했고, 책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샀죠. 근데 축구는….. 축구라. 반신반의하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자문해보게 됩니다. 내가 정말로 축구가 별로라,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기로’ 했나? 학생 때도 애들이랑 편 갈라서 운동장 뛰어다니는 거 좋아했는데. 정말로 나는 축구가 싫었나? 아니면, 이 책에서 말하는 다채롭고 수많은 ‘귀찮음’ 때문에, 스스로를합리화하며 피한 건 아닌가?


‘김혼비’라는 이름이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필명이에요. 이 책에 나온 모든 인물들과 팀 이름도 가짜입니다. 작가는 여러 팟캐스트에 나서면서도얼굴을 여전히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 밑도 끝도 없이 나쁜 인물로 그려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왜 가명을 썼나 궁금했습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여자가 축구를 하려면 이겨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여기에 실명을 써서 누구인지 알려졌을 때 팀원들이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 분명히 있어서, 가명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남자들의 스포츠로 자리잡은 축구 운동장에 여자가 뛰려면 피곤한 일이 꽤 많습니다. 전 국가대표인 주장에게 축구 룰을 가르치는 남성 시니어 축구회나, 출산 이후 어린 아이를데리고 축구장에 가려고 하면 뒤따라 오는 불편한 시선들. 작가는 “여자에겐 언제나 운동장의 9분의 1쯤만이 허락되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남자애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도나가는 축구랑 야구를 제대로 하는데 여자애들은 왜 그 아류인 피구나 발야구 같은 거나 하고 있는지 따집니다. 그래서 다시 반문하게 됩니다. 나한테 공정한 선택권이 있었나? 정말로 나는 전혀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하기로, 혹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가?


내가 하지 않기로 한 일 중에 몇 가지나 제대로 결정했는지 고민해봅니다. 해보고, 안 해보고 그 두 가지를 다 충분히 해보고 결정한건지 생각해보면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뭐랄까 어색해서, 이런 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안 한 일이 많아요. 이제 그런 일들을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합리화하지 말아야 겠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거, 사실 그 때 돈이 없어서 안 했어. 그거, 사실 내가 잘못하는 거라 실패하면 너무 쪽팔릴 것 같아서 안 했어. 그거,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나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안 했어. 그거, 사실…



Photo by Jeffrey F L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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