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PD수첩>을 연출할 무렵, 누군가 내게 물었다. "어떤 작가님과 일하시나요?", "정재홍 작가님요." "그분, 다 좋은데 좀 무디지 않아요?", "그건 잘못 보신 걸 거예요. 내면의 예민함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겉으로 무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함께 일해보니 작가님이 매우 예민한 분 같더라고요. 예민한 감각을 갖추지 않으면 글에서 그런 일도양단의 예봉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나는 작가 정재홍을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리고 내 사람 보는 눈이 만족스럽기보다 세간의 이런 무딘 시선이 불만족스럽다.
<한겨레>에 성기연 PD 인터뷰가 실린 김에 <PD수첩> "국정원과 언론 장악"편을 봤다. 김태현, 최승호, 이우환 등 엄청난 시련을 겪었던 PD들이 나왔을 때는 무덤덤했지만, 정재홍 작가가 우는 장면에서 함께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동지애였을까? 이제 시사교양을 등지고 꽹과리를 든 딴따라가 되었음에도 엄혹한 시절을 함께 싸워온 데 대한 일말의 감정이 남았던 것일까?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만큼 잘 싸우지 못했다. 그저, 그가 눈물을 흘릴 때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울었다. 세상 무딘 사람들이 도처를 무딘 시선으로 보듯이, 예민한 사람들은 예민함이 무엇인지 서로 잘 이해한다. 나는 그 울음이 얼마나 어렵사리 터져 나온 것인지 잘 알겠기에 함께 울었다. 한 3년 전이었던가, 팀장과 대판 싸우고 프로그램을 그만두네, 마네 하던 찰나에 정재홍 작가는 사소한 불화로 역량 있는 PD가 팀을 떠나게 하기는 아깝다면서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 조직은 어른이 없네. 애들 이겨먹어서 뭐하겠다는 건지.... 임 PD, 예전에 임 PD 같은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윗선과 싸우고 나가서는 뭐 없어. 나가면 끝인데, 그렇다고 해서 임 PD가 나가면 뭐 할 것 있나? 임 PD.... 원하는 것 있으면 나랑 한 번 해봅시다. 내가 공주에 아는 기자가 있는데....." 그는 그렇게 내게 어른이 되어주었다. 4대 강에 얽힌 지역 정치,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LH의 기만적인 임대주택사업으로 1년을 함께 했고, 나는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보면서 감히 프로그램이 아닌, 인생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축구 중계 봐야 한다고 남들은 반나절을 고민해서 하는 파인 커팅을 3시간 만에 끝내지를 않나. PD는 4대 강 똥물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는데, 자전거를 몰고 들로 산으로 라이딩을 나가지를 않나. ("임 PD는 자전거 좋아하오?", "아뇨. 극혐하는데요. 작가님 때문에?") 취재가 위기상황이어서 머리를 싸쥐고 있는데, 친구 석제 형(성석제 작가)과 한가로이 막걸리로 사발 건배하는 모습이 SNS에 올라오지를 않나. 후반 작업으로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통기타 라이브를 곁들인 열창을 녹음해서 공유하지를 않나. "작가님, 자전거 제가 취재 가기 전에 빵꾸낼 거예요! 라이딩하다 확 미끄러지게 바퀴에다 참기름 발라놔야지!" 그러면 들은 체 만 체 허허 웃으시면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막내작가에게) 작가님, 어디 계시우?", "어, 잘 모르겠어요.", "그래, 때 되면 대본은 나오겠지. 안 나오면 성석제 작가님한테 내가 절연하라고 전상서 쓸게요", "PD님! 내일 편집하셔야 되는데 작가님 SNS에 작가님이 통기타 들고 노래 부르는 영상 올라왔어요. 하하하!", "그래, 대본 쓰시려니 스트레스받아 그러시겠지. 노래 부르는 작가님이 무슨 죄가 있나, 그걸 실시간으로 일러주는 주커버그가 죽일 놈이지." 숨 쉴 틈 없는 압박감에 취재 날이면 속옷도 색을 가려 입고, 식사도 한 가지 메뉴만을 고집하는 등, 온갖 징크스에 시달리던 나도 그의 모습처럼 점점 무디고 무디게 물들어갔다. 그래도 회의에서 큰 방향을 짚어나갈 때 의지할 수 있었고, 대본은 때맞춰 나왔으며, 누구보다 내 직감을 믿어주고 취재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주는 작가는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작가님들도 좋았지만, 나는 정재홍 작가가 '특별히' 좋았다. 그와 함께 할 때가 <PD수첩>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몰고 사라지고, 취재 과정에도 무관심해 보여도 믿음을 거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마 왜 그러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크게 보고 넓게 보고 달리 보라. 사소한 팩트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우선 생각하라. 일할 때만큼은 그를 점점 닮아서, <PD수첩> 말기에는 막내작가가 "PD님, 어떻게 취재를 하시면서 이렇게 사소한 팩트도 모르세요?", "몰랐어? 나 방송인이야. TV에 인터뷰하는 내 얼굴만 잘 나오면 되지, 팩트는 작가님이 잘 챙겨주시우.", "어우, PD님 진짜...." 막내작가도 고개를 젓는 무딘 PD가 되었다.
끝없는 예민함을 요구하는 직업, 이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시를 세우지 않고 즐겁게 일해나가는 법, 스태프들을 채근하지 않는 법, 쓸데없이 초조함을 드러내 팀 분위기를 말아먹지 않는 법, 초원의 사자처럼 무료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방송의 맥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취재가 나오면 달라지는 눈빛 등, 가장 기본적인 방송인의 자세를 그에게서 배웠다. 정재홍 작가,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서 서울 명문대에 합격했으나 시대의 불의를 참지 못해 곁길로 들어선 사람. 정상적인 직업을 얻기 힘들어 오로지 '글' 하나에 승부를 걸어야 했던 사람. <PD수첩> 작가는 빚도 함부로 지면 안 된다면서 일평생을 전세로 산 우직한 사람. 자기보다 못한 동창들이 시대와 타협해서 승승장구할 때, 싸구려 금박 훈장도 받지 못하는 작가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사람. 멍청한 머리에 능력도 없으면서, 좋은 학교 나왔다는 자부심으로 사람 무시하기 좋아하는 꼰대 PD들의 '시에미질'을 겪으면서도, 젊은 PD들과 작가들을 한없이 지지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줬던 사람. 그가 바로 정재홍 작가다. 그의 무딤에는 평생의 인내가 묻어 있다. 작가님의 무딤을, 눈물의 의미를, 평생의 인내를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나는 알고 있다고 외치고 싶다. "작가님, 그 속을 그 누가 아무리 몰라준다 해도 미욱한 PD인 제가 압니다." 나는 그에게서 프로그램과 인생을 동시에 배웠다고 했다. 그와 함께 하면서 나는 무딘 성격이 이 예민한 일을 해나감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배웠다. 하지만 미처 그에게서 인생을 다 배우지는 못했다. 내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일생을 한 가지 일에서 몰두해 위업을 쌓을 수 있을까? 나처럼 인정 욕구에 목마르고 허영에 찌든 사람이? 부끄럽다. 결국 나는 정재홍처럼 일할 수는 있게 되었으되, 정재홍처럼 살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