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제작일지 11.
<심야괴담회>의 연출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연출로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한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성과에 비해 낮은 시청률과 그에 따른 압박 (하지만 이는 충분히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으로 이겨낼 성질의 것이었다.), 둘째는 개별 보직자의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와 납득할 수 없는 지시사항의 남발, 셋째는 교양 부서에 처음으로 안착한 예능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몰이해다. 미행과 잠복으로 사람에게 따라붙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천착하던 조직에서 갑자기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려고 할 때는 모 재벌 회장의 말마따나 '아내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할 정도로' 크나큰 어려움이 따른다. 쉽게 말하면 검찰청에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차린 셈이지만, 우리는 로마에 와서 로마법을 따랐어야 했음에도 우리의 방식을 고집하는 관성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 본부의 리더십이 바뀌고, 기본 포맷이 토크쇼인 <심야괴담회>에 하달된 일성이 '취재 강화, 인터뷰 강화'였음은 정말 웃지 못할 소극이다. 게다가 PD를 크리에이터가 아닌 연출 대리인, 혹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하면서 PD로서의 자괴감은 커져만 갔다. 게다가 온갖 지시사항이 하달되는 가운데, 그 지시사항을 잘 이행한 후과를 오롯이 PD가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우리 조직에서 비일비재했던 일들이라 견뎌낼 수 있었다.
연출을 내려놓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이 세 가지 한계보다도 기존의 스태프들을 책임질 수 없어서였다는 점이 더 크다. <심야괴담회>가 반응도 좋았고 유통수익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시청률이 저조하자 팀의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능 시스템의 한계를 다시 시사교양에서 해오던 팀 구성으로 전환해서 운영의 묘를 꾀하자는 말이 나왔다. 한 개의 팀을 복수의 팀으로 재편하면 팀 간의 경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성과가 창출된다는 논리였다. <심야괴담회>의 피라미드 구조식 예능 시스템을 주마다 몇 팀이 순환하는 <PD수첩>식의 시스템으로 개편하게 되면,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예능 작가들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분업화가 파괴되면서 노동강도가 증가하고, 그것을 기존 인원들의 정신력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바뀌어 있었다. 시스템을 바꿔서 잘 되리라는 전망이 보였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팀의 좋은 인원들을 모조리 놓치게 될 공산이 컸다. 아무리 조그만 조직이라도 리더는 리더이고,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안고 가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팀을 이끌고 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심야괴담회>의 윤곽은 내 머릿속에 나왔으되, 그걸 구현해서 지금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준 사람들은 모든 연출진과 작가진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없는 프로그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물러났고, 작가진이 모두 그만두었고, 연출진이 빠졌다. 이제 와서 무엇을 탓할까? 우리의 시행착오도 많았고 그에 따른 몰이해는 더더욱 많았지만, 다 지나고 보면 <심야괴담회>는 그저 조급한 부모 밑에서 너무 때 이르게 태어난 미숙아였을 뿐이다.
아침에 메모장으로 쓰던 파일을 뒤져보다 <심야괴담회> 시즌1이 문을 닫기 몇 달 전에 써두었던 '고별사'라는 파일을 발견했다. 전 스태프들에게 보내려고 했던 고별사는 결국 내 휴대폰 안에서 잠자고 말았다. 마지막 완제를 마치고 단톡방에 띄우려고 했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너무도 허탈한 마음에 단톡방을 나와버렸고 영영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팀에서 동고동락했던) 누가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올려본다. 지금 와서 보면, 신파조의,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의 감상성으로 가득하지만 이 글을 쓸 때는 그만큼 진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마지막 방송이 끝났습니다. <심야괴담회>의 모든 연출진, 작가진 애 많이 쓰셨습니다.
47회를 끝으로 시즌 1이 마무리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고 봅니다. 제 부덕의 소치로 탁월한 역량을 가진 분들을 더 오래 모시지 못함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정권 아래 PD 커리어 중 6년 반의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파업과 유배로만 보냈습니다. 방송이 입고되는 주조정실에서, 마지막 1년은 구로디지털단지 오피스텔에서 해고만 면한 채 목숨만 부지했습니다. 그게 불과 2017년의 일입니다. 주조정실에 있을 때는 건물 건너편에서 피디와 작가들이 회의하는 불 켜진 공간을 성냥팔이 소녀가 화목한 가정을 부러워하듯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고, 구로에 있을 때는 PD 커리어가 끝장났다는 좌절감에 한동안 방송과는 절연하다시피 살았습니다.
그러던 PD가 온갖 매체와 인터뷰도 하고 연예인들과 어울려 타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전사적으로는 <불만제로> 이후 교양의 암흑기를 끊고 파일럿 프로를 론칭해 1년을 끌고 온, 아직은 유일무이한 PD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PD들은 열악한 환경과 씨름하고 작가들은 더 나은 단어를 짜내려고 고심하는 동안, 저는 오롯이 영광을 독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위해 남몰래 땀 흘려주신 은공을 평생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지만 제가 보고 듣고 했던 광경들, 어스름 새벽에 슬리퍼를 끌면서 복도 끝으로 사라지던 연출진들의 뒷모습, 재연 촬영을 나가는 PD들의 두툼한 파카, 새벽까지 울리던 작가들의 단톡방, 불이 꺼지지 않는 편집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약봉지들은 언제고 제게 선연한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미욱하고 허술하고 때로는 원만하지도 못한 PD였지만 저를 이런 PD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고마움을 모르지는 않는 PD였다고, 고마워야 할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누가 어떻게 애를 썼는지도 잘 알고 있는 PD였다고요.
정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가슴 깊이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