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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05. 2020

가을이 오면 다음 봄이 가까워진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뛸까, 말까.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 시간이 새고 에너지가 빠져나갑니다. 의식의 저항에서 빠져나오는 데엔 계속 반복해 습관으로 만들면 편합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리스도 “우리는 우리가 반복한 행동의 결과물이다. 뛰어나다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습관의 유기체인 셈입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는 것처럼, 눈을 뜨면 당연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아침 글쓰기를 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습니다. 매일 같이 하는 일이라 똑같을 것 같지만, 늘, 뭔가가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날은 러닝 쇼츠를 입고, 어떤 날은 음악을 듣고, 어떤 날은 까만 모자를 쓰고 달립니다.

  오늘은 서서 신던 운동화를, 현관 턱 앞에 앉아 신어 봅니다. 발에 꼭 맞는 운동화에 발을 끼워 넣습니다. 벽돌 한 장 높이, 겨우 10센티미터 정도 될까 싶은 낮은 계단턱에도 짧은 다리 작은 제 몸은 편하다 느낍니다.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고, 음악은 뭘 들을까 플레이리스트를 엽니다. 싹쓸이? 아니. 오늘은 조금 더 차분한 것. 그럼 유키 구라모토? 아니 그 마음도 아닙니다.

  히사이시 조의 <나우시카 레퀴엠>이 눈에 들어옵니다. 진혼곡. 노래 중간 부분을 좋아합니다. 다 다라라라 디띵다 다라라라 디리라. 발음이 부정확하게 느껴질 만큼 어린 아가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 슬픈 소리. 마음의 촉수가 뻗어 나옵니다.  

  어제저녁의 대화입니다.

“여보, 그분들 너무 부럽더라.”
“어떤 점이 부러웠어?”
“글쎄, 네 분이신 것도 부럽고,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부럽고.”
“당신은 항상 부러워하더라. 뭐가 그렇게 부러운 게 많아?”
“그런가...? 모, 부러운 걸 부럽다고 말할 수도 있잖아!”
  
  늘 누군가가 부러웠습니다. 여자 말고 덩치가 큰 남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키가 180센티가 넘고 80킬로그램쯤 되는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혹시 세상을 더 실컷 살았을까. 그 생각 끝엔, “저게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하시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저는 딸 넷의 맏이였습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아들로 태어났어야 한다는 말을 길에서, 시장에서, 옆집에서, 친척에게서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저를 치마폭에 감싸며 괜찮다 하셨지만, 그래도 딸이라 좋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얘기는 자기를 부정하게 되는 위험한 말입니다. 어른들도 참... 달리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땀에 녹여 몸 밖으로 흘려보냅니다.

  매일 악수하며 손을 맞잡던 벚나무 작은 잎 삼총사에 갈색 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르익은 가을이 되어 이 잎들이 떨어지면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됩니다. 하지만, 이젠 압니다. 슬프면 울면 되지, 굳이 삼킬 필요도 참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요. 감정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회복이니까요.

  나뭇잎들이 떨어져 수풀 사이로 숨었습니다. 빽빽하게 자란 나뭇잎 덕분에 풍성했던 산책로는 노란색 갈색 낙엽으로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힘 빠진 녹색잎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도드라집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진짜 나무를 보려면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에 보라 했습니다.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그건 곧 다음 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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