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하는 습관 만들기
9월 1일부터 유튜브로 매일 아침 글 쓰는 걸 찍어 올리고 있습니다. 영상을 찍으려면 카메라를 어떤 걸 쓸지, 사운드는 어떻게 할지, 화면 속에서 보이는 배경은 어떻게 할지, 옷은 뭘 입을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장 좋은 수준으로 만들려면 방송국 스태프 정도의 인원과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일의 핵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매일 아침에 글 쓰는 걸 찍어 올리는 이유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글 쓰는 걸 필요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럼, 잠이 덜 깬 무방비 상태에 충실한 쪽이 콘텐츠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하던 대로 일어나자마자 노트를 펴고 만년필로 20분 글쓰기를, 카메라만 켜고 찍어 업로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어요.
생각한 그대로 영상으로 올립니다. 조승연 작가 유튜브에서 구독자 100만 유튜버에게 물었더니,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그대로 계속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합니다. 저도 카메라가 없을 때 하듯 그냥 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세수하지 않은 얼굴은 서로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가능한 한 멀리서 측면을 바라보도록 앵글을 잡고, 책상 주위 제게 영감을 주는 소품들이 잘 드러나도록 배치합니다.
독일 바우하우스 전등이 그려진 오렌지 색 배경의 샛노란 스탠드 이미지 포스터와 노란 무선 주전자, 더리빙 팩토리 노랑 컵 안의 노란 색연필들, 그리고 새로 디자인한 노란 화분, 노란 만년필에, 당근 패턴이 그려진 노란 파자마까지. 좋아하는 샛노랑이 강약 중강 약 리듬감 있게 흐르는 방.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랩탑 웹캡으로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찍어, 앞뒤 2초 정도씩 자르는 최소한의 편집을 거쳐 동영상으로 송출합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에서 화면을 캡처하고, 영상에서 얼굴을 잘라 업로드하는 동안 미리 보기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 사이 텍스트를 입력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며 영상이 제대로 업로드된 것을 확인합니다. 10분도 안 걸립니다.
그렇지만, 무심결에 미리보기용 화면을 캡처하지 않고 스트리밍 영상을 꺼버리면 리스트에서 찾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캡처하는 데에 또 시간이 쓰입니다. 찾다 보면 실시간 스트리밍과 동영상 리스트가 헛갈리고, 그러다 보면 순서가 엉켜 일이라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작업인데도 시간이 훌쩍 흐릅니다.
작은 사건 사고들도 시간을 순식간에 삭제해 버립니다. 하루는 무선 인터넷이 끊겨 영상이 반만 찍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영상이 찍히지 않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랩탑 배터리가 30%만 남아 조마조마하며 찍기도 하고요. 실시간 스트리밍과 동영상이 헛갈려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워 새벽의 귀신 영화 같은 영상이 그대로 송출된 적도 있습니다. 익숙해질 때까진 작업의 순서가 흐르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사소한 디테일들을 잘 챙겨 준비해야 물 흐르듯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를까, 하기로 한 일은 습관이 될 때까지 90일 정도는 계속해 봅니다.
저는 왜 이렇게까지 뭔가를 하고 있는 걸까요? 아무래도 너무 어릴 때,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들이 일어나 송두리 째 사라질 수 있는 게 바로 삶이라는 걸 일찍 깨달은 것 같아요.
얼마 전, 아들이 하는 롤 게임을 보며 그게 왜 재미있느냐 물은 적이 있습니다. 캐릭터가 강해지고,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이 많아지면 신이 난다 대답했습니다. 온라인 캐릭터 레벨을 올리는 것도 재미있지만, 현실 세계의 네 캐릭터를 키워보면 어떻겠느냐 물었습니다. 시간을 많이 들여 강한 캐릭터를 갖게 된다 해도, 온라인 게임은 회사가 없어지거나 유행의 흐름이 달라지면 무용지물이 되지만, 네 캐릭터를 키우면 평생 써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요.
철학박사 김형석 선생은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아무리 40대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40대’ 자리에 ‘10대’나 ‘30대’로도 대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체는 한 번만 삽니다.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가. 제 목표는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습관을 쌓아 기어이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