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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18. 2020

에세이 한 편 쓰기, 100일 도전기

  시작은 6월 6일이었습니다. 35년 전, 2년 남짓 암 투병하다 사별한 동생의 묘를 정리하던 날, 슬픔과 아쉬움과 시원함이 마구 섞여 시고 달고 짜고 맵고 떫은 오미자 원액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듯 한 그 기분을 바로 기록하라는 번개가 쳤습니다.

  그렇잖아도 아침 달리기를 시작한 후, 심장 BPM이 올라가며 혈액이 빨리 순환할 때, 머릿속을 동동 떠다니던 번뜩이던 아이디어들이 운동이 끝남과 동시에  비눗방울처럼 터져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한 달 가까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까웠어요. 기왕이면 매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을 땐 100일까지는 끌고 가야 합니다. 물론 늘 100%만큼 만족스러운 아웃풋을 내긴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하고 있으면 시냅스끼리 스위치를 열어 둔 것이 느껴집니다. 딱 끊고 멈추면 전원이 꺼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손가락 끝이라도 어떻게든 걸쳐두면 연결 할 수 있습니다.

  100일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뭘까 생각했어요. 일단 매일 달리고 싶었습니다. 달리며 채집한 글의 흐름이 더 빠르고, 묘사도 더욱 생생해요. 그러려면, 잘 자고, 무리하지 말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감각을 벼리게 유지하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옆으로 걷는 게처럼 삶의 추를 조금씩 이동하며 방향을 바꿨습니다.

  기록은 공기 중으로 날아갈 에너지 분자들을 모아 물리적 형태로 변환시키는 과정입니다. 그 날 이후로, 겨우 일주일에 한 편 숙제하듯 쓰던 에세이 한 편을, 암탉이 매일 한 개의 알을 낳듯 그렇게 매일 썼습니다. 여름날의 새벽을 들이마시고, 뿌리는 비를 맞으며, 쏟아지는 해를 마주하며 심장 박동을 끌어올려 결과물을 낚았습니다. 그렇게 오늘 100일이 되었고, 정직하게 100개의 에세이가 남았습니다.

  매일매일 에세이를 한 편 쓰는 건 큰 도전이었습니다. 박완서 선생께서는 글을 쓰는 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일을 하고 싶은 건, 하루하루를 촘촘하게 돌이켜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라면서, "도대체 어른들은 왜 그런 거야!"하고 외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어른’이고 싶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 주변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던 분들이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제 책을 읽으며 책과 가깝게 지내실 때 보람 있습니다. 책 속엔 한 사람의 인생만큼 경험과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글을 읽음으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지식을 쌓아갈 때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인 사회에 가까워진다 믿습니다.

  세 번째로는 제 글을 매일 읽어주실 만큼 수용해 주실지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매일 기다려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셔 제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그저 쏟아붓는 건, 생태계 조성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에세이는 ‘일간 정재경’으로 전환하고, 유료 구독자와 소통할 계획입니다. 그분이 단 한 분이라도 작가의 성장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금 정비해 제 글이 필요하신 분들과 보다 깊은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도착하는 ‘일간 정재경’ 에세이 한 편을 읽으실 때, 에너지를 충전해 줄 아로마세러피 오일을 만들었습니다. 식물 추출 오일만 쓰시는 아로마티스트 향기 작가 한서형 님과 콜라보로 제작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아로마 블렌딩입니다. 한 방울 떨어뜨리고, 에세이를 읽으시면 샘물처럼 에너지가 채워질 거예요.

  100일 동안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0일 동안 달리며, 땀 속에 아픔을 녹이며 저 역시 애도의 과정을 보냈습니다. 동생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때, 엄마는 실컷 쓰라 말씀해 주셨고, 동생들 희미해지는 기억이 안타깝다고 써 달라 했습니다. 아픔이 발효해 사랑으로 숙성한 35년 묵은 장. 사랑은 그 무엇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이젠, 장막이 걷힌 느낌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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