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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22. 2021

서디페 전시, 영감여행

서울디자인페스티벌, F103부스, 더리빙팩토리

오늘,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22일부터 26일까지 코엑스 3층 C홀에서 열린다.


전시를 준비하며 하나로 흐르는 메시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게 좋을까. 아카이브를 자료 조사하다 2008년 해비타트의 카탈로그를 만났다. 해비타트는 색상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반면 형태는 미니멀한 무드를 유지해 좋아하는 브랜드다. 콘란 경이 1964년에 설립했고, 현재는 이케아가 인수했다. 콘란 경은 콘란 숍, 힐스, 해비타트 등 여러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었고, 모든 영국인의 집에는 콘란의 가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라이프 스타일에 세운 혁혁한 공으로 1983년 여왕으로부터 기사의 작위를 하사받기도 했다. 아시아엔 유일하게 방콕에 매장이 있었는데, 문을 닫았다.


2008년 해비타트의 카탈로그가 내 감수성과 잘 맞았다. 분홍 포스트잇을 붙여둔 바르셀로나 사진에서 눈길이 멈췄다. 집 안으로 밝고 환한 빛이 스미고 바닥엔 흰색과 노란색 타일이 모자이크처럼 번갈아 가며 깔려 있다. 덕분인가, 벽면의 페인트도 웜 화이트 계열로 느껴지고, 세로로 긴 밝은 하늘색과 빨간 블록 액자에서 미소를 띠게 된다. 흰색 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빨강, 오렌지색, 노란색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다. 벽면엔 오렌지색 스메그 냉장고가 서 있다. 이 사진에서 여행지 뒷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상점이 떠올랐다.


파리에서 메르시를 헤매다 만난 어떤 상점이었다. 오래된 건물 사이를 지나 들어간 상점이었는데, 작은 정원이 있는 중정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 몰딩이 아름다운 아이보리 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면, 바닥, 천정에 온통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바른 듯한 공간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지하와 1층이 연결된 층고 높은 상점이었다. 그 낯설고도 반가웠던 느낌이 떠올랐다. 우연히 만난 곳. 아날로그 시대엔 낭만으로 기억되는 돌발 상황이 있었다. 디지털 세상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낭만이 없어 슬프다. 이 느낌을 담고 싶었다.


여행지에선 낯선 시각으로 사물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된다. 덕분에 영감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난다. 2018년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떠나며 '영감 여행'이라 이름 붙였다. 'Inspiration Trip'이라 칭했는데 텍스트가 길어 'Ins+rip'으로 줄였다. 그때 매일 아침 네덜란드에서 받은 영감을 뉴스레터로 만들어 열흘간 보냈었다. '영감 여행'으로 전시 주제를 정하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내 컬렉션을 열어 소품을 함께 섞어 가며 골목길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난 것 같은 상점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생활용품 브랜드 더리빙팩토리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colorful', 'minimal', 'useful'이다. 주연은 우리 상점의 메시지를 'You can be any color.'로 정리했다. 'any'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승현은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 제품을 그려 자유롭게 색을 칠했다. 접시, 컵, 주전자가 '오즈의 마법사' 속 한 장면처럼 공중에서 춤을 춘다. 슬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색에 대한 이야기를 재해석해 문장으로 풀었다. '노랑'에 대한 슬기의 해석은 '노랑의 활기와 에너지가 당신의 무의식에 긍정과 확신을 더해줄 거예요.'. 모두 창작자로 힘차게 날갯짓하고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우린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어디가 좋을까 서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아마 우린 서로의 이야기가 듣고 싶을 것이다. 벽면에 메모판을 설치하고, 여행 가방에 붙이는 비품 택을 준비했다. 지금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암스테르담이다. 브뢰첸 사이에 햄과 치즈를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고, 마스크 없이 그걸 씹어 먹으며 암스테르담 식물원에 가고 싶다. 고요한 가운데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실내 식물원을 거닐고 싶다. 눈을 감고 나비가 펄럭이는 날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노란 택에 적어 철사 끈으로 돌돌 엮어 매달아 두었다. 벼룩시장을 닮은 마켓도 준비했다. 티가 있는 상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티 마켓'이다.


콘란 경은 2019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화려하고 쓸모 있어 보여도 지나치게 비싸면 그것 역시 좋은 디자인이 아닙니다. 꾸밈없이 소박하고(plain), 단순하며(simple), 실용적인(useful)! 그것이 좋은 디자인의 3대 조건입니다.'라 말했다. 전시에서 만날 좋은 디자인들에 설렌다.


정재경 작가

매일 쓰는 사람


매일 쓰는 사람. 작가.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정화식물 200여 개와 함께 살며 실내 공기를 관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식물이 아낌없이 주는 산소와 초록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의 이로운 점을 글로, 강연으로, 방송으로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집은 식물원』 등이 있다. https://linktr.ee/jaekyung.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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