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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r 27. 2022

네 번째 출간, 우리 집 식물 수업

아이와 함께 그리고 붙이며 다이어리처럼 꾸며 보세요! 


사무실 문 앞 택배 박스가 '턱'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둔탁한 소리였다. 짚이는 구석이 있어 유리 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발신인은 '교보문고'였다. 네 번째 책 ⟪우리 집 식물 수업⟫ 저자 증정본이다. 박스를 들어 테이블 위로 옮기고 칼로 테이프 사이를 가른다. 책이 아기처럼 누워 있다.


두 손으로 들고 무게를 느낀다. 이내 한 손으론 책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아들 얼굴 어루만질 때나 반려묘 별이 등을 쓸어주듯 표지를 만져 본다. 왼손으로 책등을 움켜쥐고 오른쪽 손으로 책장을 넘겨 도르륵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겉표지를 벗겨 표지도 살핀다. 선명한 초록색을 썼다. 면지는 짙은 남색이다. 초록색과 깊은 바다색. 좋아하는 색의 교집합이다. 손에 닿는 새것의 빳빳함, 잉크와 종이 향이 섞인 새 책 냄새. 온몸으로 감각한다.


이 순간엔 늘 고마웠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비눗물에 적신 막대에 맺힌 비눗물이 불어 넣는 숨결을 타고 공중에 오색빛 비눗방울을 퐁퐁 그릴 때와 닮았다. 마감일을 넉넉하게 잡아 기획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게 배려해 준 교보문고 출판사 담당자, 책 쓰는 동안 업무를 도맡아 준 승현, 슬기, 주연, 집안일은 남편이 상당 부분 처리해 주었고, 아들 역시 알아서 밥 챙겨 먹고, 자기 일을 해 집필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 그뿐인가.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일간 정재경 구독자, 엄마, 아빠, 동생들,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또 초록생활 워크숍 올리브, 마샤, 로사, 소네 님, 이름을 한 분 한 분 호명하자고 하면 책 두께만큼 될 것 같다. 미처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고맙고, 또 고맙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책을 쓸 때마다 나는 누에가 된 것 같다. 머리에서 실을 뽑고 뽑고 또 뽑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돌돌 말아 가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고치가 완성되는 듯 분량이 나온다. 그 실을 물레에 풀어 실로 만들고 다시 편직기에 넣고 옷감을 짠다. 드디어 옷감이 되면 재단을 한다. 조각난 옷감을 꿰매 옷을 만든다. 이 과정은 책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 완성된 원고를 풀어 편집을 한다. 글의 순서를 바꾸고, 위치를 잡는다. 디자인해 판을 만든 다음 종이에 인쇄한다. 그걸 재단하고 제본해 책의 형태로 완성한다. 하나만 빼 먹어도 책을 만들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물성을 가진 책이 되어 내 손으로 들어온다.


이런 순간을 네 번 만났다. 네 권의 책을 쓰면 글쓰기가 익숙해지는가. 늘 처음과 같다고 느낀다. 원고 분량 앞에선 언제 다 쓰나 늘 막막하고, 매일 자괴감과 마주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글이 한 문장 나오면 그 기운에 조금 더 속도가 난다. 그 과정을 되풀이하며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닥닥 긁어모아 겨우 고치 분량을 뽑아 내면 마감의 후련함도 잠시. 속이 빠진 듯 허하다. 그래서 '책을 낳는다'라는 표현이 생긴 것 같다. 이렇게 낳은 책들이 잘 키운 자식처럼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 주길 바란다.


책으로 펴낸 '글'이라는 건 읽어주는 대상이 있어야 완성된다. 읽어주는 이 없는 글은 빈 벽에 대고 독백을 하는 것 같다. 독자가 많을수록 완성도 높은 글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베스트셀러는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는 셈이니까. 때로는 읽는 사람 없어도 완성된 글일 수 있지만 그래도 공명할 때 작가로서 존재 가치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책엔 현장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넣었다. 강연 현장에서의 질문들,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 참고 도서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나 가보면 좋을 식물 관련 장소들도 리스트 업했다. 곧 식목일, 아이와 함께 그리고 붙이며 다이어리처럼 꾸미는 책이 되길 바라 본다. 


정재경 작가

매일 쓰는 사람

https://linktr.ee/jaekyung.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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