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에 힘이 솟는

깨끗하게 반짝이는 마음

다음 책은 어떤 책을 써야 하나. 브런치에 쓴 글이 추천작으로 선정된 덕분에, 감사하게도 첫 책을 출간했다. 그 후로 다섯 권을 더 썼다. 여러 가지 일을 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글을 쓰는 일이 제일 어렵다.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시 시작할 땐 경험치는 제로로 수렴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세상의 어떤 일은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는 일도 있는데 작가는 그렇지 않다. 언제나 0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래도 그동안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은, 마감에 가까워질수록 실력이 자란다는 사실이다. 이때의 실력이란 글을 생산해 내는 능력뿐 아니라, 읽고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문맥을 다듬는 능력, 상황판단력, 어떤 글을 넣고 뺄지를 결정하는 시간, 그 모두를 포함한다. 마감에 임박할수록 '이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부지런히 썼다. 마감이 있어야 쓰게 되고, 많이 써야 실력이 나아지므로 스스로 마감을 두고 매일 썼다. '일간 정재경'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원고지 10장씩 썼던 날도 2년 하고 100일이다. 사춘기 아들에게 쓴 편지 809일 원고지 약 4,000매, 장편소설 원고지 1,000매. 그중 소설은 신춘문예에도 두 번 응모했지만 똑 떨어졌다. 여섯 권의 책을 쓰며, 별도로 쓴 글이 1만 4천 여장이다.


모두 습작이라 나중에 정리해야지 생각했는데, 그 나중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시작했던 그곳, 브런치로 돌아왔다. 월요일은 시작하는 의미로, 깨끗하게 반짝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에세이를, 화요일은 웰니스 가이드, 초록생활 칼럼을, 수요일은 소설 빨간 모자를, 목요일은 뭐 해서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 보는 커리어 가드닝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 마감이 되면 초능력을 뿜어 내는 미래의 내가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글을 쓸 때마다 누추해서 부끄러워서, 미성숙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망설여진다. 자기 검열과 비하에서 자유로워지려면 행동하는 것 없다. 지금까지 6권을 쓰면서 그렇게까지 내 글이 마음에 든 적도 없다. 어차피 어떤 글도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평가나 반응에 초연하게, 무소의 뿔처럼 그냥 계속 쓰는 것이다.


윤여정 선생님의 최근 인터뷰에서, "어쩌면 이렇게 쉬워지지 않니. 어쩌면 매번 이렇게 어려워." 하는 말씀을 보았다. 일흔이 넘어도 다른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또 새로 시작인 것이다. 일을 잘못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산들바람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쓰게 태어난 사람은 써야 하고, 그리게 태어난 사람은 그려야 한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기 한계를 깨고 나오는 것. 뒤집어 말하면 자기 한계를 깨고 나오는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정재경 작가 | 8년째 매일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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