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을 넘어 '지속'이 인생의 결을 좌우한다
'작심삼일'은 '꾸준하지 못하다'는 인간의 허약함을 지적하고, 근성이 없다고 매도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갖다 붙인다. 그만큼 한 가지 일을 끈덕지게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어, 그림, 악기, 운동, 글쓰기 등 몸과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영양 가득한 습관 재료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시간이 누적될수록 이들은 우리의 친구가 되지 못한다. 그저 후회로 몸서리치며 재차 도전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만에 하나 함께 도전했던 친구나 가족마저 덩달아 실패하면, 왠지 모를 강한 유대감이 생기고, 이내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래 이건 누가 해도 못하는 거야. 그냥 편하게 사는 거지. 양희은의 말처럼 그러라 그래~'
나도 숱한 결심과 포기의 반복 속에 '작심삼일'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습관과 루틴으로 무럭무럭 자라지 못하는데서 오는 열패감, 그리고 어떤 때는 신포도를 바라보는 여우처럼, 지레 포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일 년 이상 유지하는 존재들이 있다. 영어와 새벽 운동이 그것이다. 인생의 결이 나날이 비루하다고 느낄 때, 나에게 노크해 준 이 둘은 포기의 유혹을 물리친 고마운 놈들이다. 물론 유창한 영어실력도, 프로페셔널한 운동 감각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지친 몸과 성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긴다.
'결심'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영어는 공부와 의무의 대상이 아니라, 놀이로 접근하다 보니 쉬이 지치지 않는다. 대학시절 1년간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다녀온 본전 생각에서 영어를 놓지 않았던 맹목적 의지도 한몫했다. 물론 단어, 숙어, 문법, 문장 구조 등 생소하고 어려운 난적을 숱하게 만나 한계를 느껴도 '뭐 그러려니' 하며 적당히 스트레스를 즐기는 편이다. 회사에서 주된 업무가 영어로 된 업이 아니다 보니, 먹고사는 것과도 거리가 있다. 영어에 관한 한 죽을 때까지 갖고 노는 것.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치매 예방에도 좋고, 공부할 꺼리가 있어서 괜찮을 것 같다.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크게 기죽을 필요가 없고, 나날이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주는 영어 원서 읽기도 최고다.
새벽 운동 역시 작년 건강검진이 계기가 됐다. 정밀 조직 검사까지 받을 만큼 식겁했던 터라 수십 번 결심만 되풀이하다 이제야 새벽 운동이 습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코로나19와 조기출근 효과도 새벽 운동을 강제한 이유기도 하다. 운동 역시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유일하게 대화하는 시간이라 여기니 운동화 끈을 조여매는 데 엄청 힘들지는 않다. 오히려 하루의 시작을 달리기로 시작하니 내 삶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듯한 느낌이다. 조깅과 푸시업 그리고 스쾃을 병행하면서, 내 몸의 점진적인 변화를 느낄 때 울컥하는 희열이 있다. 행여 젊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몇 년째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구석에 처박아 뒀던 옷들을 편하게 입을 때, 혈압이 정상 수치임을 확인했을 때, 밀려오는 효과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편하고 쉬운 것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고, 그 본능을 압도할 동기와 보상이 마련되지 않으면 결심을 유지할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의지박약이나 정신력 부재로 치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강력한 동기와 보상이, 그리고 재미와 의미가 합치될 때 결심은 유지로 이어지는 단단한 동아줄이 된다.
습관을 넘어 루틴으로 이어가기까지 거치는 시행착오는 당연한 과정이다. 그만큼 루틴이 주는 행복을 온몸으로 만끽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충분히 지속 가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결심이 남들이 하는 것을 불나방처럼 덩달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자기만의 습관으로 자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