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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Feb 12. 2024

사번이 두개입니다만?!

이직과 재입사, 흔치 않은 경험이 성장을 이끌다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들 때는 심경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지난 1년 간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이 흘렀다. 일상의 균열은 생의 질서를 새롭게 부여한다. 그리고 그 질서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안착할 수 있게끔 수시로 확인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요한다.


작년 이맘때 이직한 회사에서 여러 가지로 갈팡질팡할 무렵이었다. 괜히 직장을 옮겼다는 후회가 가득할 즈음, 2005년부터 약 17년이란 장기근속을 이어왔던 전 직장에 다시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이른바 재입사다. 이전에 내가 맡은 업무가 공백을 겪고 있었고, 마땅히 그 일을 대체할 인력이 없다는 천행으로 포지션이 열린 것. 재입사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출퇴근 거리와 담당 직무 등 여러모로 옮기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아내와 아이도 뛸 듯이 기뻐했다. 재입사는 그렇게 급물살을 타게 됐고, 사명이 바뀐 회사에 재입사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물론 현직에서 사정을 설명하고 원활하게(?) 퇴사하기까지는 거쳐야 할 여러 관문이 있었다. ‘자발적 퇴사’라는 행정 처리는 문서로 갈음할 수 있었지만, 날 믿고 데려온 본부장님과 면담할 때의 그 송구함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면담 요청 후 침묵과 버무린 힘들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공기 중에 산화하는 찰나, 본부장님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축하의 말을 전했다. 당신이 가려는 회사에서 재입사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그곳에서 절실히 당신을 원한다는 뜻이기에 본인은 괜찮다는 마음이었고,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훈훈하게(?) 면담까지 일사천리로 끝나고, 해당 팀에서 송별회까지 챙겨줘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것이 작년 3월 말경이었다.




재입사 통보 일을 전달받고 첫 출근 전까지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마음 편하게 시간을 축내며 짧은 기간이지만 백수의 자유를 맘껏 누렸다. 그리고 두 근 반 세 근 반 놀라는 심장을 억지로 눌러 앉히며, 새로운 직장으로 향했다. 17년을 다닌 곳.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곳. 나와 함께 6명의 정장을 입은 경력직 입사자들이 옹기종기 대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채용담당자가 근무복을 나눠주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하나 둘 각자의 팀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PC를 지급받고 사번을 부여받았다. 이전에 접속했던 인트라넷은 그대로인데, 이제 내가 입력해야 할 사번은 ‘2023’으로 시작하는 숫자로 바뀌었다. 기존의 ‘2005’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그 기분이 묘하기 그지없었다.


나를 포함해 재입사 인원은 5명. 연구소와 구매본부 인력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팀으로 인사명령이 났고, 경기 지역에서 근무 예정인 나와 달리, 팀원들은 전부 서울사무소에서 근무 중이었다. 이미 팀원들을 알고 있었기에 적응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약 1년 4개월의 공백기는 마치 육아휴직을 다녀온 다른 직원들처럼 아무렇지 않은듯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들은 점점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어려울 때 회사를 그만두더니, 새롭게 인수가 되고 정상화되고 나니 다시 들어왔다는 것. 일부는 ‘배신자’라는 프레임으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거침없이 말들을 쏟아내는 데, 어찌나 부아가 치밀든지 평정심을 찾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당시를 복기하며 글을 쓰지만, 재입사 초기만 하더라도 살얼음을 걷는 듯 자그마한 행동과 말에도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기존에 알던 좋은 팀장님을 만나 비교적 수월하게 업무에 적응했고, 팀원들과 거의 떨어져 지내며 마치 프리랜서처럼 혼자 업무를 하다 보니, 주위의 시선과 간섭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객관화에 있었다.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고, 긍정확언을 통한 만트라를 주저리주저리 읊는가 하면, 이 또한 삶의 배움으로 치환하면서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가차량으로 왕복 3시간에 달하던 출퇴근이 30분 내외로 줄면서 가족과의 저녁시간이 새롭게 생겼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늘 집에 오면 미리 잠자리에 들었던 아들의 백만 불짜리 미소를, 이제는 매일매일 보면서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가끔 외식을 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모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지만 않는다면, 쉽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경험하기 힘든 재입사라는 관문을 통해, 당시 부산했던 마음의 찌꺼기가 수면 아래로 침잠해 있다. 따뜻하게 맞아준 고마운 동료들과 가족의 응원과 지지, 그리고 빌런의 협공을 막아낸 성찰의 노력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일궈낸 성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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