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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Dec 11. 2022

마음도 감처럼 단단해지면 좋을 일이었다

미숙한 어른

엄마는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며 감을 대신 깎아달라고 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파진지는  오래되었다. 설거지나 과일 깎기  집안일을 점점 버거워했다. 나는 딱딱한 감을 돌려가며 껍질을 벗겨냈다. 서투른  손길을 보다 못한 엄마는 결국 나머지 감을 직접 깎았다. 빠르고 정갈하게 손질된 감이 그릇에 담겼다. 나는 서른이 거의  되어가도록 과일 하나 능숙하게 깎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사과나 복숭아 같은 것들은 그래도 제법 깎아내는데 감처럼 딱딱한 과일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단단한 것들은 언제나 침범하기 어렵다. 마음도 감처럼 단단해지면 좋을 일이었다. 하지만 내 것은 언제나 물기가 많고 물렀다. 갑자기 왈칵 쏟아지는 울음도 별일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때가 되면 낙하하기 마련이니까. 그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참아내기가 어려울 뿐. 아무리 경험해봐도 울음을 삼키는 일에는 재주가 없었다. 나는 여리고 여려 어느덧 불을 켜고 잘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색하고 간지러웠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잊고 싶은 기억에 매몰되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지나간 것들이 삶을 침범했다. 그만 생각하기 위해 습관처럼 노력해야 했다. 훌쩍 자라던 밤도 있었지만 대개는 울먹이던 밤이 다수였다. 매번 생의 절기를 통과해내며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처럼 살았다.


L은 언젠가 내게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제법 흉내를 잘 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여리고 무른 것들이 변형이 잘 되는 법이다. 복숭아처럼 무른 마음을 가진 덕분에 나는 뭐든 쉽게 이해하고 쉽게 공감했다. 참 다행이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 퍽 쓸만한 기질이었으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 S와는 유난히 과거를 곱씹는 사이었다. 함께 있을 때면 종종 추억에 잠기는 얼굴이 되곤 했다. 그녀의 이십 대 초반과 나의 그것은 뜨거운 무언가를 함께 나눈 시절이었다. 우리는 가수를 꿈꿔 매주 오디션을 보곤 했다. 번번이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했다. 결과가 과정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데뷔하지 못했고 친구는 무명 가수가 되었지만 우리의 이십 대 초반은 늘 회자되었다.


그리운 것들이 참 많았다. 나는 툭하면 지나간 것들을 회상했다. 마음이 외롭지 않게 지금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며 감을 대신 깎아달라고 했다. 나는 딱딱한 감을 돌려가며 껍질을 벗겨냈다. 마음도 감처럼 단단해지면 좋을 일이었다. 마음도 감처럼 단단해지면. 내 마음도 그러면 좋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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