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하루가 너를 응원해
출근하던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난 공모전에서 입상한 글이 다음 달 <좋은 생각> 매거진에 실릴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다음 달이라고 하면 2023년 1월. 새해 첫 매거진에 실린다니.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한 해 동안 눈에 띄는 어떤 성과도 없다고 느껴져 우울하던 찰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소식이었다.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일 년이었다. 모든 결과가 과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아왔다. 이모티콘 작가가 되지 못했어도,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어도 나의 일 년은 분명 가치 있었다.
수많은 절기를 통과해오며 알게 된 사실. 모든 순간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주인공이라는 것. 이 한 문장을 적는데 목구멍이 뻐근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나는 이 한 문장을 적기 위해 한 해를 살아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 열심히 하면 뭐든 될 거라고 믿던 바보 같던 순간들이 모여 치열한 일 년이 되었다. 치열한 일 년들이 모이면 뭔가가 되더라도 되긴 분명히 될 거라고. 또 그렇게 믿어버리는 바보 같은 나지만 적어도 나의 스물일곱이 헛되진 않았다고, 무엇보다 그렇게 믿었다.
L은 습관처럼 나를 낮추는 내게 그러는 내 모습이 너무 싫다고 말했다. 그런 L을 이해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된 과거의 일은 아니었다. 나 하나가 등을 돌리면 온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그렇게 가여운 존재로 만들 수는 없었다.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나를 더 아껴야 했다. 그것이 과거의 나를 보듬는 지금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며 머리카락만 자란 것이 아니라 분명 무언가 같이 자라긴 자란 모양이었다.
어느덧 눈과 트리의 계절이 왔다. 곧 설렘으로 점철될 연말이 온다. 소외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연말의 공허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생각한다. 눈덩이처럼 굴려왔던 모든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여 단단해진 일 년을. 그리고 꾸준히 써왔던 모든 활자들을. 그러자 조금 이겨낼 수 있을 것도 같다. 든든한 무언가를 등 뒤에 둔 듯 갑자기 견뎌낼 수 있을 것도 같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 해 여름을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낸 게 더 신기한 일일지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요즘의 모든 하루하루를 긍정한다.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님을 절실히 믿는다. 그리고 또 믿어본다. 내일은 무언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를 것 없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대도 언제나 기회는 있다는 것을.